세계 원자재 시장을 쥐고 흔드는 글렌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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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자재 시장을 쥐고 흔드는 글렌코어
  • 김미란 기자
  • 승인 2014.02.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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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 등락에 관계없이 차익거래 수익 창출

2011년 5월19일, 베일에 꽁꽁 싸여있던 기업이 모습을 드러냈다. 40여 년 동안 비공개, 비상장을 고수하던 기업이 런던(80%)과 홍콩(20%)의 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를 한 것. 주인공은 바로 세계 원자재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계 최대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 ‘글렌코어(Glencore)’였다. 시장은 글렌코어가 IPO 이후 어떤 행보를 걷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상장 첫날 글렌코어의 주식거래는 예상보다 부진했다. 런던 증시에서 조건부로 첫 거래를 시작한 글렌코어 주가는 공모가인 530펜스보다 높은 550펜스로 시작했지만 첫날 최종 마감가는 530펜스였다.
당초 글렌코어 공모가는 주당 400펜스대에서 형성됐다. 그러나 급증하는 투자자들 수요에 따라 여러 번 상향 조정됐고 게다가 공모주 청약에 아부다비 국부펀드, 싱가포르 투자청 등 대형 국부펀드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등 큰손이 몰려들면서 상장 첫날 주문이 폭주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이에 첫날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는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게 시장의 평가였다.

신비주의 전략에 원자재 가격 조종 의혹

▲ 2011년 5월19일, 베일에 꽁꽁 싸여있던 글렌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40여 년 동안 비공개, 비상장을 고수하던 글렌코어는 이날 런던(80%)과 홍콩(20%)의 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를 했다.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글렌코어는 줄곧 신비주의 전략을 펼쳐왔다. 주요 트레이더들의 신분도 철저히 숨긴 채 영업을 전개했다. 전세계 40여 개국에 직원을 파견해 원자재 생산국 정계 및 재계로 로비를 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원자재 가격을 조종한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았다.
2011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렌코어가 기업공개를 앞두고 인수주관사 중 하나인 UBS에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해 “글렌코어가 곡물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동시에 러시아에 곡물 수출 금지 부과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FT는 “지난해 8월3일 유리 오그네브 글렌코어 러시아 곡물 법인 대표는 러시아 당국에 러시아 정부는 수출을 금지해야 할 모든 이유를 갖추고 있다며 밀수출 금지를 요청했다”면서 “이틀 후인 5일 러시아 당국은 금수조치를 내렸고 밀 가격은 이틀 만에 15% 급등했다”고 밝혔다. FT는 또 UBS 보고서를 인용해 “글렌코어의 농산물 팀이 러시아 가뭄이 시작되던 지난해 봄과 여름에 매우 시의적절한 보고서를 러시아 농업계로부터 받았다”며 “이 보고서가 밀과 옥수수 매수 포지션을 취하게끔 하는 자기자본거래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논란이 일자 글렌코어는 “전반적인 곡물 거래 포지션의 결과가 혼조세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또 러시아 밀 금수조치로 중동지역에서 미리 체결했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부터 더 비싸게 밀을 매입해야 했다는 점을 들며 “수출 금지가 특별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속살 드러낸 글렌코어의 목적은 ‘사업 확장’
글렌코어는 기업공개 전까지 주주가 485명에 불과할 정도로 폐쇄적 경영 체제를 구축해 왔다. 이는 최고경영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반 글라센버그 CEO는 글렌코어가 기업을 공개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기업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기업공개를 통해 그의 이름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5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글라센버그는 요하네스버그의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에서 회계학과 무역학을 전공했다. 회계법인에서 5년 동안 일한 그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1984년 글렌코어에 입사했다. 이후 홍콩, 베이징 지사장을 거쳐 1991년 글렌코어 석탄부문 사업부 책임자가 됐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2002년 CEO에 올라 현재까지 왕좌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영국의 일간지인 가디언은 “글렌코어는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찬 기업”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랬던 글렌코어가 속살을 드러내니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글렌코어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것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원자재 기업 M&A를 위해서는 특히나 기업 공개가 필수였다. 실제로 글렌코어는 2010년 호주 광산업체인 엑스트라타와 카자흐스탄의 아연 생산업체 카징크 인수에 눈독을 들여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신들의 위상을 내세워 기업공개에 나선 것이다.
글렌코어는 100억 달러를 조달하며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양지로 나왔다. 이는 그해 기업공개를 단행한 기업 중 최대 규모였다. 또 첫날 FTSE 100지수(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100개의 우량주식으로 구성된 지수)에 포함되는 위력을 보여줬다.

원자재 트레이딩 시장 형성
글렌코어는 원자재 트레이딩(중개) 기업이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선두가 되길 원하는 기업은 원자재 탐사, 개발, 생산 등의 영역에서 그 열쇠를 찾기 마련인데 글렌코어는 ‘트레이딩’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도전해 넘볼 수 없는 영향력을 확보했다.
글렌코어가 1974년 트레이딩 전문기업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에너지원의 거래가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이에 글렌코어는 유연탄, 액화천연가스 등의 거래를 활성화시키면서 시장을 형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원자재 가격에 등락에 관계없이 차익거래 수익을 창출했다. 그리고 이 수익으로 315억 달러(약 34조 원)에 광산업체 엑스트라타(Xstrata)를 인수, 통합 사업모델을 구축해 경쟁 우위를 선점했다.
글렌코어는 2012년 11월2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엑스트라타 인수를 승인받았다. 합병안은 엑스트라타 주주 78.88%가 엑스트라타 주식 1주당 글렌코어 3.05주의 신주를 교환하고, 이반 글라센버그 글렌코어 최고경영자를 합병회사 CEO로 선임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EC는 이날 성명에서 “글렌코어가 세계최대 아연 제련업체 니르스타(Nyrstar)가 생산한 아연을 유럽경제지역(EEA)에서 판매하는 계약을 종료하고 글렌코어의 니르스타 지분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양사의 합병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진통 끝에 인수합병 성공, ‘원자재 공룡’ 탄생
글렌코어와 엑스트라타의 합병은 한 때 2대주주인 카타르 국부펀드와의 신경전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글라센버그가 “엑스트라타와의 인수합병이 꼭 필요한 거래는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신경전은 엑스트라타 지분 11.7%를 보유한 카타르 국부펀드 산하 카타르홀딩스가 인수가격에 불만을 표하며 시작됐다. 글렌코어가 내놓은 합병조건은 ‘엑스트라타 주식 1주당 글렌코어 주식 2.8주(총 260억 달러)를 맞바꾼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전체 주주의 75%의 동의를 확보했다. 하지만 카타르홀딩스 CEO 등은 이보다 16% 높은 1대 3.25의 교환비를 요구했고 이에 글라센버그는 “카타르 측의 주장과 논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글라센버그가 합병 철회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양사 주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신경전을 거두고 합병 승인을 얻었다.
승인에 앞서 글렌코어와 엑스트라타는 “합병해 자산가치 약 670억 유로(855억 달러), 합계 매출액 2,094억 달러 규모의 새 회사를 연말까지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엑스트라타 주주 상당수는 합병 초안에 엑스트라타 임원 73명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지급하는 조항에 거세게 반발했고 이에 따라 새로 마련한 합병안은 합병계획과 보너스 지급 문제에 대해 주주가 별도로 표결하도록 했다. 주주 투표에서 합병계획은 압도적으로 통과했지만, 보너스 지급안은 부결됐다.
그리고 드디어 2013년 5월 글렌코어는 긴 합병작업 끝에 엑스트라타 간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640억∼670억 달러(약 71조2,500∼74조 6,000억 원) 규모로 평가된 합병을 통해 글렌코어는 전 세계 아연 생산량의 11%를 차지하고 유럽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려 BHP빌리턴, 베일, 리오틴토에 이어 세계 4위 자원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이 합병은 2007년 호주의 리오틴토가 캐나다의 알칸을 38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광산업계 최대 인수합병으로 기록됐다. 이에 회사명도 ‘글렌코어 엑스트라타’로 바뀌었다.

글렌코어는 지금 엑스트라타 잔재 지우기 진행 중
지난해 말, 글렌코어가 회사명에서 ‘엑스트라타’를 뺄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엑스트라타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인수합병 당시 글렌코어와 엑스트라타는 동등한 자격으로 합병절차를 개시했다. 그러나 글라센버그는 이내 엑스트라타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글렌코어는 비용을 14억 달러 삭감하고 엑스트라타 사무실 33곳을 폐쇄했으며, 엑스트라타에서 물려받은 개발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을 보류했다. 이러면서 엑스트라타의 존 본드 회장과 믹 데이비스 최고경영자 등 주요 경영진이 회사를 떠났다. 그래도 엑스트라타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던 글렌코어가 이제 이마저 없애고 완전히 엑스트라타의 흔적을 없애버리기로 한 것이다.
FT는 “회사명 변경은 천연자원 업계에서는 흔한 것”이라면서 “프랑스의 석유회사 토탈은 200년과 2개의 석유회사를 인수한 2003년 사이에는 토탈피나엘프로 알려졌다가 이름을 바꿨고 미국의 셰브런도 2000∼2005년에는 셰브런텍사코로, 영국의 BP도 미국 아모코와 합병한 뒤에는 BP아모코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FT는 “주주 표결을 요구하는 이 같은 회사명 변경은 10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인수를 통해 세계 최고 광산업체로 부상한 한 회사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1999년 설립 후 2002년 런던 주식시장에 상장된 엑스트라타는 호주와 남아프리카 내 글렌코어의 석탄자산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고, 이어 2003년 호주의 구리 아연 광산 회사 MIM 홀딩스를, 2006년에는 캐나다의 팰콘브리지를 각각 인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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