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여파 대선 경선 방식, 당직인선 놓고 시끌
전당대회 과정의 ‘색깔론’ 시비에 반발,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칩거후 복귀한 이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정권교체를 하려면 우파대연합을 이뤄야 하는데, 내가 수구보수 지도부에 함께 있으면 우파대연합을 이룰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탈당 가능성은 부인했다. 그의 대변인 격인 진수희 의원은 “이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는 물론 ‘한나라당발(發)’ 정계개편을 포함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에 복귀한 이재오 최고위원의 돌출행동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20일에는 서울 양평동 수해 현장을 둘러볼 계획이며, 가능하면 현장 관계자들과 함께 복구작업도 진행할 방침이다. 물론 대표를 비롯한 다른 최고위원들과 함께 참석하는 행사가 아니다.
전날 새벽에도 이 최고위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은평구 수해지역 현장을 둘러보다, 결국 시간이 늦어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다. 당 안팎에서 ‘마이웨이식 행보’ ‘돌출 행동’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정작 본인은 “일이 예상보다 길어져 회의에 빠진 것일 뿐”이라고 짧게 답했다. 오후에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김진홍 목사를 만나 현 정국과 한나라당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며, 재보선이 펼쳐지는 성북 을과 부천 소사 유세 현장에도 다녀왔다. 지도부가 지원유세보다는 수해 복구에 신경 쓰라고 지시했지만 독자 행보를 계속한 셈이다. 당무 복귀 첫날인 7월 18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를 예방했다.
당내 갈등으로 비춰질게 뻔한 가운데,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이 최고위원이 돌출 행동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한 측근은 “자신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데 무슨 힘이 나겠느냐”며 “최고위원직에서 탈퇴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100% 참석하지도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당직 인선에서도 이 최고위원은 강재섭 대표에게 중도 소장파를 중용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결국 ‘친박(친 박근혜)’ 인사 위주로 인선이 마무리되자, 다시 한번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는 최고위원직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한나라당이 과거로 회귀했고 특정 주자와 가까운 인맥들이 당을 모두 장악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수해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결국 고심 끝에 마음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격려했고, 정두언 의원은 직접 산사로 찾아와 힘을 보탰다.
측근은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역할에 한계가 있지만, 이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을 위한 자신만의 목표를 세운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도 공정한 게임이 돼야 한다는 게 이 최고위원의 생각”이라며 “목표는 공정한 경선 관리와 당 외연 확대 작업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오, 강재섭 대표와 신경전
당 일각에서는 이 최고위원의 이런 행보에 대해 “대표가 두 명이냐”에서부터 “이 최고위원이 대표 대우냐”까지 온갖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 의에 불참했다. “다른 일정이 있다”는 것이 이 최고위원이 강재섭 대표 측에 통보한 불참사유다. 이 최고위원은 전날 저녁에는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했다가 이날 오전에 뚜렷한 설명 없이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 표는 이날 회의에서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이 최고위원의 불참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최고위원측은 회의 불참에 대해 “오늘 회의는 주요 안건도 없고 간담회 성격이라고 해서 다른 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서 불참한 것 같다”며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이 최고위원의 이날 지원 유세는 강 대표가 보궐선거 지원 유세 자제를 부탁한 상황에서 대표와 한마디 상의 없이 추진됐다는 점이다. 강 대표는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궐선거는 후보중심으로 치르고 당분간 수해복구에 전부 관심을 가지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에대해 이 최고위원측은 “재보선 지원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표와 일정을 상의한 적은 없고, 또 대표와 일정을 상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대선후보 경선방식 놓고 2라운드
그런가하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이 이번에는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을 완전 국민참여제로 하거나, 국민여론 비율을 높이자”고 이 최고의원이 주장하고 나서자, 강 대표가 곧바로 “경선 방식 변경은 없다. 지금 방식대로 한다”고 일축한 것. 이 최고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거론하며 “대선 주자는 국민 참여 경선제로 뽑아야 한다”며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그는 “열린우리당에서 완전 국민참여경선으로 하겠다고 운을 띄웠는데, 우리도 정말 국민이 어떤 형태의 정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 지도자를 원하느냐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당원이 누구를 좋아하느냐를 갖고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전날 단행된 당직 인선에서 ‘친박’진영이 주로 발탁 되는 등 당내 구도가 급격하게 박근혜 전 대표 성향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현재 방식대로 경선을 치를 경우 박 전 대표의 승리 확률이 높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명박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소장파 남경필 의원도 국민 참여 확대를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강재섭 대표는 특정인의 유·불리를 떠나 지금 방식대로 경선을 해야 한다며 경선제도 변경을 반대했다.
강 대표는 “당 혁신위원회가 경선방식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경선 안을 시행해 보지도 않았는데 시기와 룰을 바꾸자고 하는 제안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 대선후보를 뽑는데 국민여론을 50%, 당원과 대의원 의견을 50% 반영하는 데 더 이상 얼마나 나가라는 것이냐”고 일축하고, 당내 갈등에 대해선 “1단계를 넘었지만 끊임없이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묘지 앞의 고요함’보다는 시끌벅적한 것이 정당으로서는 국민 관심도 얻고 좋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재오 최고위원의 당무 복귀로 일단 안정을 되찾은 한나라당은 앞으로 대선후보 선출 방법과 시기를 두고 상당기간 내홍을 겪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인선들도 ‘친박’ 일색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18일 주요 당직 인선을 마쳤다. 7·11 대표 경선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균형 인사’를 할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친박근혜’ ‘친강재섭’ 색채를 한층 강화했다. 당내에선 “전당대회 논공행상”이라는 비판이 파다하다.
당 3역 자리인 사무총장에 임명된 황우여 의원은 대표 경선에서 강 대표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 대변인인 나경원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강 대표의 홍보 총책을 맡았고, 또다른 공동 대변인인 유기준 의원도 ‘친박’계로 강 대표를 적극 도왔다.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강 대표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고, 김학송 홍보기획본부장도 ‘친박’으로 분류된다.
정진섭 기획위원장은 김덕룡 전 원내대표의 최측근으로, 대표 경선 때 강 대표가 김 전 원내대표의 도움을 받은 데 대한 답례 차원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제2사무부총장에 임명된 전용학 전 의원도 전당대회 때 충청권에서 강 대표를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당내 소장·중도파 연대체인 ‘미래모임’에선 소속 의원 몇 사람이 당직에 임명되긴 했지만, ‘구색 맞추기’에도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경선에서 6위로 탈락했다가 지명직 최고위원이 된 권영세 의원과, 여의도연구소장에 임명된 임태희 의원은 모두 ‘중도파’에 가깝다. 소장파의 핵심이라 할 남경필·정병국 의원은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등에 거론됐으나 결국 배제됐고, 박형준 의원은 당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했다.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된 안경률 의원 한 사람 정도가 대표 경선에서 패한 이재오 최고위원의 측근으로 꼽힌다.
중도개혁 성향의 한 중진 의원은 “너무 한쪽으로 쏠려서 화합이니, 통합이니 말할 여지조차 없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 측근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탕평책이 아닌 인사”라며 “강 대표가 의총에서 ‘넘치는 부분은 깎고 모자란 부분은 보태서 균형감각 있는 당을 만들겠다’고 하더니 전혀 취지에 맞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비해 김형오 원내대표가 이날 임명한 원내부대표단과 정책조정위원장단은 상대적으로 ‘친박’ 색채가 덜하다.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재선·경북 포항을)는 ‘친이명박’ 인사로 꼽히며, 이군현 부대표는 대표 경선에서 이재오 최고위원을 도왔다.
한나라 소장파 “개혁만이 살 길”
한나라당의 7·11 전당대회 때 지도부 입성에 실패한 소장·중도파들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자기반성 속에 대표교체 등 전열을 재정비하며 외부의 쓴 소리를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정치적·정책적 역량을 축적하면서 당의 변화를 이끌어낼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재기’의 전제조건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원내·외 당원협의회장 114명이 결성한 ‘미래모임’은 7월 20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가졌다. ‘전당대회 평가와 당의 앞날’이 주제였다.
발제자로 나선 외부인사들은 전대 당시의 대선주자 대리전 행태에 비판을 쏟아냈다.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 교수는 “한나라당이 벌써 오만하고 방자하다. 그 결과가 전당대회였고, 7·26 국회의원 재·보선 공천 이었다”고 질타했다. “한나라당은 대표경선에서 집권당처럼 안이하게 집안싸움에 몰두했다”며 “혁신을 통한 맹성이 없는 한 절대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도 했다. 정치 컨설팅업체 대표인 박성민 씨는 “당 내부에서 투쟁을 통해 주류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계개편 등의 기회를 틈타 당 밖으로 나가서 무엇인가를 하려는 생각이라면 개혁보수 세력은 당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발제에 이은 토론에서 박찬숙·임태희 의원은 “이번에 지도부 진입을 못 했지만 형태나 이름과 관계없이 용틀임하는 개혁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형진 일산갑 당원협의회장은 “미래모임이 대의원 표심을 정확히 읽었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5·3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반영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주 의원은 “미래모임의 도전은 의미있는 정치실험이었다”며 “개혁보수든 혁신보수든 정체성을 고민하고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젊은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새정치수요모임’은 7월 19일부터 이틀간 연찬회를 가졌다. 대표교체 등 진용정비와 별개로 당분간 당내 현안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고 정책능력과 대여투쟁을 강화하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지도부에 대해 말만 앞세우고 여권의 실정엔 침묵만 지킨다”는 당 중진 등의 비난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특히 국가적 현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3개 분야의 실무대응팀을 만들어 모임의 입장을 마련하기로 했다. 남경필 신임 대표는 “대선 경선방식을 두고 대권주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데 국민 눈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뿐”이라며 “차기 주자들 사이의 균형자 역할도 확실히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