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245호=신혜영 기자) 1251년 9월 25일은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라고도 불리는 팔만대장경 조성이 완료된 날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한다.
이 경판은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 종교적인 염원으로 국란을 극복하고자 만든 불교 목판경으로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000번뇌에 해당하는 8만 4000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이며 폭은 약 24㎝, 두께는 2.7~3.3㎝의 범위이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kg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 정도이다. 경판의 재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대부분이다.
고려 현종 때에 초조(初雕) 대장경이 만들어졌으나 몽골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졌고 선종 때에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간행하였으나 이 또한 몽골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졌다. 그 후 1236년 몽골의 침공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이 강화에서 조판되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최씨 무신 정권은 먼저 대장도감이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천만 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잘못된 글자가 거의 없다.
일본은 고려 말에서 조선 중종 때까지 80여 회에 걸쳐 대장경판을 요청한 바 있으며 그 결과 경판 대신 종이에 인쇄된 60여 본이 일본 측에 기증, 고려대장경은 일본 대장경의 모체가 되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은 8만 1258장으로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하다. 팔만대장경은 세계의 대장경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에 보관되었던 것을 조선 태조 7년(1398년) 서울 지천사를 거쳐 해인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글씨가 아름답고 오탈자가 전혀 없어 현존하는 3000여 종의 한역 장경 가운데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아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