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게 주어진 절대권력, 독이 든 성배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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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게 주어진 절대권력, 독이 든 성배 되나
  • 김미란 기자
  • 승인 2013.12.3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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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김정은 세력 숙청, 오히려 혼란과 불안만 가중

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도 한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 가정과 사회에서 모든 기반을 닦는 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 막 기반을 닦기 시작하는 그런 나이에 절대 권력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딱 그렇다. 그리고 그가 지금 휘두르는 절대 권력에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2월12일 북한이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 국방위원회 전 부위원장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8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숙청한 뒤 나흘 만이었다.

‘국가전복음모행위’ 장성택 속전속결 사형 집행
지난달 13일 조선중앙통신은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12일에 진행됐다”고 밝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해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 것을 확증했다”고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을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이라고 표현하며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됐다”고 전했다. 이어 조선중앙통신은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해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장성택을 속전속결로 처형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중앙통신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 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했다”면서 그가 자신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장성택은 정치적 야망 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율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고 비판했다.
여기까지가 북한이 밝힌 이유다. 이와 관련해 박형중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장성택을 신속하게 처형함으로써 ‘장성택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주민들의 동요와 혼란 가능성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속전속결로 사형을 해서 장성택 세력들을 완전히 투항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통일부는 반당 반혁명 종파 행위로 숙청된 장성택이 최소 정치범수용소로 이송돼 무기형 이상의 무거운 처분이나 처형까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권력 2인자인 장성택의 북한 내 영향력을 감안할 때 숙청은 했지만 처형까지는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이번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신속한 처형을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성택 처형은 불안정한 권력을 보여주는 역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의 이번 실각과 처형은 당 조직지도부와 호위사령부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와 조직을 총괄하는 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김정일이 직접 부장을 맡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북한 내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2008년 쓰러지면서 권력이 장성택 쪽으로 쏠렸고 조직지도부는 약화돼 미묘한 권력 다툼이 시작됐다. 특히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김정은 3대 승계를 뒷받침하던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2010년 교통사고로 숨지자 조직지도부는 급격히 위축됐다. 북한 내에서는 리제강의 사망 사건 배후로 장성택이 지목되기도 했다. 한편,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북한 권력이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은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3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김정은이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면서 “여기저기에 포진해 있는 반(反) 김정은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해 화근을 한 번에 뽑아버리려는 계산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홍 연구원은 또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북한은 2인자가 존재할 수가 없다”면서 “장성택이 서른도 안 된 처조카가 집권하는 걸 보좌하기 위해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다. 조심했어야 되는데 덜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는 안정된 관계를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면 남북관계가 안정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적어도 남북관계의 소원이 오래 가면 천안함이나 연평도 같은 일탈된 국지 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항상 대비태세 갖추고 동향 예의주시”
청와대는 장성택 처형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외교·안보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소집, 장성택 국방위원회 전 부위원장에 대한 사형 집행에 따른 북한 동향을 논의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30분께 시작된 회의는 당초 전반적인 대북 군사동향 등을 점검하기 위해 소집됐지만 장 전 부위원장에 대한 사형 집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변하는 대북상황에 대한 분석 및 대책을 논의하고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 참석에 앞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마치고 온 김 실장으로부터 회의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장성택의 급작스런 처형은 북한 김정은이 유일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철권공포정치의 일환으로 생각된다”면서 “특히 군사도발로 비화되지 않도록 항상 대비태세를 갖추고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태 이후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김 장관은 “김정은에게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 북한 군부의 강경파 입지가 강화되면 충성 경쟁이 벌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의사결정 오판을 가져올 소지가 있다”고 밝히며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또는 국지도발에 대비하면서 북한 내부동향을 철저히 살피고 대비태세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장성택 처형 사실 인지 시점과 관련된 질문에 김 장관은 “오늘 아침에 7시경 입수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 민주당 의원이 “우리 정부의 정보수집 능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김 장관은 “핵심적인 것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하기 전에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을 피했다.

권력투쟁, 긴장감으로 불안정 정국 예상
젊은 권력자가 휘두르는 절대 권력에 해외 언론도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중국식 경제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진 장성택 처형과 함께 그의 추종자들이 피의 숙청을 당한다면 북한의 경제개혁이 뒷걸음치고 내부의 극심한 권력투쟁으로 불안정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그간 북한의 국영경제가 소련 붕괴 이후 외부원조 축소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장성택은 중국 등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특별경제구역의 문호를 개방하는 노력을 기울여 온 인물”이라고 전했다. 또한 타임스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면 고모부를 처형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라며 “조급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이어질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어 타임스는 “장성택에 대한 전격적인 처형이 김정은의 대담성과 함께 권좌에 도전하는 누구도 제거될 수 있다는 충격요법이 되었지만 앞으로 북한의 나라살림을 누가 끌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5일 “북한 당국이 장성택 사형 집행 이후 주민들에게 사상학습을 강요하면서 평소와 같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장성택 사형 집행 하루 전인 11일 각 지방 당 조직들을 통해 ‘평소대로 일하고 주민들에게 절대로 긴장감을 조성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시문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모기간에 장성택 숙청까지 겹치면서 조성된 긴장감이 오히려 주민들의 불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중앙(김정은)에서 상당히 우려하는 것 같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추모대회에서 드러난 새로운 권력 구도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14일 김정은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의 공개 활동은 장성택 숙청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 11월30일 백두산지구 삼지연군 방문 이후 14일 만이었다. 그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방문해 현지 지도했다.
한편 이날 김정은의 첫공개활동에 동행한 이들이 향후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 궁금증은 17일 열린 북한 김정일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공식석상에서의 자리배치는 권력상징의 바로미터다. 이날 행사에서 김정은 좌우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총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이 배석했으며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공개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경희는 지난해 12월16일 열린 김정일 1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주석단에 앉았었다.
그런가 하면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11월29일 김정은이 주도한 백두산 대책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도 주석단을 꿰찼으며 은퇴한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 리명수 전 인민보안부장, 현영철 군 총참모장 등은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권력에서 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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