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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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수해
  • 글/ 이현지 기자
  • 승인 2006.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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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폭우피해 ‘천재인가 악재인가’
강원도지역 매년 수해 되풀이, 결론은 철저한 예방뿐
매해 여름 되풀이되고 있는 홍수 피해. 올해는 그중 최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초래했다. 일찍 찾아온 태풍이 수증기를 공급하고 그 영향으로 쏟아진 장맛비는 분명 천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번 여름마다 찾아오는 이 같은 홍수피해가 천재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인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재로 인한 ‘악재’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이번 에위니아 태풍과 집중호우처럼 여름이면 물난리를 겪는 일이 이제는 당연시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02~2003년에는 태풍 루사와 매미로 400여 명의 인명 피해와 10조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처럼 홍수 피해는 갈수록 대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수해가 천재와 인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참사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사망자 수 189명. 이재민 4만9천여 명. 지난 6년간 매년 여름 발생한 수해로 인한 강원도의 피해 수치다. 공식 집계 수치임을 감안하면 실제 확인되지 않은 피해는 더 많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불과 이틀간 내린 폭우로 영동고속도로가 마비돼 한반도의 동서가 분리되는 등 강원 지역 도로 대부분이 붕괴됐다.
문제는 이번 사상 최악의 교통대란과 사망과 실종 등 인명피해도의 대부분이 침수보다는 바위나 흙 등이 흘러내린 산사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난개발. 경사면을 무리하게 깎아낸 뒤 산사태 예방을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관리부실로 이 같은 재해가 해마다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인제와 평창 등에서 발생한 인명피해 대부분이 산을 등지고 형성된 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에 의한 것임을 생각하면 이유 있는 비난이라는 지적이다. 수해에 대한 장기적 예방책과 재난방지 시스템 구축이 반복되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원도 홍수 피해 원인은?
특히 강원도는 산불과 홍수가 끊이지 않는 등 재해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강원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산사태가 일어났고 흘러내린 토사는 강물을 메웠다. 토사로 메워져 얕고 좁아진 강물은 작은 비에도 범람하고 있다. 재해 전문가들은 “같은 재난이 같은 지역에서 반복되는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원도는 지대가 높아 수해에 있어 안전지대로 생각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산악지형에 따른 갑작스런 기상변화가 어느 곳보다도 잦기 때문이다.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강원도의 경우 산세가 험해 산을 사이에 두고 기압차가 커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데다 동해에서 발생한 수분 유입량도 많아 지역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폭우의 경우 경사가 급하고 길이가 짧은 하천의 특성에 장마전선까지 겹쳤다. 당연히 갑작스러운 비에 물이 쉽게 불어나고 제방을 넘어 구조물을 휩쓰는 일도 흔하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매미 때도 피해를 입었고, 2004년에도 6∼7월 집중호우로 600억원, 8월에는 태풍 메기로 270억원 등 모두 930억원의 수해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도 집중호우로 75억 원 정도의 피해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수해에 대한 장기적인 예방책과 재난방지 시스템 구축 없이는 반복되는 수해를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국립방재연구소 관계자는 “500년에 한번쯤 올까말까 한 폭우가 지난 10년간 수차례나 있었음에도 여전히 재해에 대비하는 설계기준은 5∼10년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재해 전문가들은 강원지역의 난개발도 수해의 또 다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빠져나가야 하지만 개발의 여파로 대부분의 빗물이 강으로 모여 흘러가기 때문이다. 국립방재연구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수해가 반복됐던 1999년 말 정부는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꾸려 119개의 대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이 가운데 실천한 것은 10%도 못 미칠 것”이라며 “예산도 없이 반복해서 조직만 바꾸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원도 각 지역의 산사태 역시 이번 수해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불과 이틀간 내린 폭우로 중부고속도로와 주요국도 등 강원 지역 도로는 곳곳에 토사가 흘러내리는 산사태로 마비됐다. 문제는 강원 지역 사상 최악의 교통대란이 발생한 주요인이 도로 침수보다는 도로 주변 바위나 흙 등이 흘러내린 산사태라는 점에서 관리부실 때문에 이 같은 재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피해가 발생한 강원지역 도로 60여 곳 중 40여 곳이 도로 주변 산사태로 인해 쏟아진 낙석과 토사로 인해 도로가 막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건설비용 절감 등을 위해 무리하게 경사면을 급하기 깎아내 도로를 만들고 이후 산사태 예방을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도로에 쏟아진 토사는 치워도 뒤이어 토사가 계속 이어지며 쏟아져 복구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 도로 주변 지대에서만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강원 지역 전반적으로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도로 피해를 막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도로 주변의 산사태도 많았지만 워낙 며칠동안 중단 없이 집중적으로 빗물이 퍼붓다 보니 도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한 토사나 인근 계곡에서 떠내려 온 나뭇가지 등이 도로를 덮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해방지 대책에 따라 희비 엇갈려
7월 내내 계속된 폭우에 전국이 시름 하고 있지만 수해 방지 대책을 얼마나 착실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그 시름의 깊이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마철 준비가 미흡한 지역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물난리를 겪었던 반면 유비무환 지역은 전국적인 물 폭탄에도 건재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발생 뒤에 복구 및 방지책에 나서기보다 재해 예방 대책을 철저히 세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수해를 당한 지역은 수방대책이 허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양천 둑 붕괴로 5000여명이 대피했던 서울 양평2동의 경우 영등포구청이 안양천 수해 예방책을 전혀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양천에는 폭우에 대비한 배수시설도 따로 설치돼 있지 않다. 구청 치수과 관계자는 “별도의 수해대책은 없었다”면서 “평상시 안양천 점검은 제방 관리보다 하천 흐름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 떠있는지 등을 살피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가하천인 안양천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도 지난 5월 제방 복구 후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청 관계자는 “수방대책은 하천정비기본계획에 별도로 없어 평상시 하천 점검만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12일 경기도 고양시가 물바다가 됐던 것도 부족한 배수 펌프장 시설과 배수시설 정비 미흡이 주요 원인이었다. 고양시는 집중 호우 당시 시내 펌프장 13곳과 간이 펌프장 77곳을 모두 가동했지만 시간당 120만t 정도의 처리 용량으로는 400㎜를 웃도는 폭우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또 도로변 배수 시설을 미리 정비하지 않아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도로 침수를 불렀다.
지난 7월 12일부터 계속된 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인천 서구도 난개발과 지지부진한 하천 치수사업으로 화를 자초했다. 서구는 2000년부터 146만평에 달하는 7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종합적인 하수·빗물 처리계획을 세우지 않는 상태다. 이 때문에 기존의 600㎜ 하수관은 밀려드는 빗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검단 사거리에서 시작해 김포를 거쳐 한강으로 빠지는 나진포천 치수사업에 늑장을 부린 것도 수해를 키우는데 결정적이었다.
상습 침수구역로 악명을 떨쳤던 중랑천 주변 지역은 3일간 계속된 폭우에도 끄떡없었다. 노원구와 중랑구 등 중랑천 인근 구의 이재민 발생과 주택침수는 전무했다. 중랑구는 중랑천 주변에 펌프장을 3개에서 4개로 늘리고 기존펌프장의 처리용량도 분당 3,160t에서 7,500t으로 올렸다. 또 모래주머니 20만 여개를 배치하고 개인용 펌프 3400여개를 보급했다. 노원구 역시 상계동과 공릉동에 4∼5m 높이의 제방을 쌓았으며 중랑천 하천 준설작업을 매년 3만5,000㎥ 정도 진행해 왔다.
1996년 이후 세 차례나 물바다가 됐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시가지도 이번 호우에 문제가 없었다. 파주시는 2000년부터 3년간 4000억원을 투입, 도시 시스템을 개조했다. 인근 문산천과 동문천 제방 양쪽 20㎞ 및 경의선 철로 1㎞ 구간의 지반을 3∼5m 높였고 임진강변인 두포제 2.28㎞와 마산제 1.68㎞의 제방도 5m로 높였다. 또 1개이던 펌프장을 6개로 늘리고 배수 용량을 분당 500∼600t에서 3,000t으로 늘렸다.
전문가들은 복구중심의 재해 대책을 예방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1998년부터 선정된 재해위험지구 1,123곳 중 올해까지 정비가 끝난 곳은 450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 전문가는 “홍수는 비와 연관이 많은데 강우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고 하천 유량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각 지자체 들은 복구 중심의 대책 보다는 예방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댐 건설 필요성 다시 대두
전국을 강타한 이번 집중호우로 댐 건설 필요성이 정부 여당에서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건설교통 분야 당정 협의를 연 자리에서 최근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집중호우는 기상이변이 아닌 전지구적인 기상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주요 강변의 제방을 높이거나 홍수 예보와 경보시스템 등을 고도화하는 등의 방법만 갖고는 충분한 홍수 통제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데에도 인식을 같이했다.
남한강 상류지역인 동강이나 서강에 댐이 있었더라면 영월 지역의 범람을 막을 수 있었고, 충주댐의 수위 조절도 가능해 단양이나 여주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방지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 변재일 제4정책조정위원장은 "댐 건설 없이 제방을 높일 경우 상당한 비용이 들고 연결 다리도 새로 놓아야 하는 등 부작용이 많다"며 댐 건설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에서는 한탄강과 남한강, 진주 남강 유역에 다목점댐 건설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여당은 그러나 댐 건설 추진에 따른 시민·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사회적 합의가 댐 건설의 선행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정부가 이번 수해를 댐건설의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가장 피해가 컸던 강원도 인제군의 경우 펜션건립 등 무분별한 난개발 등이 물길을 막아 생긴인재의 성격이 강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부는 국토 난개발 방지 등 근본적인 홍수예방 대책과 수방대책을 먼저 세운 뒤 댐 건설을 얘기하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남한강 상류지역에 속하는 동강과 임진강으로 연결되는 한탄강에 댐을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시민. 환경 단체 등의 거센 반발로 사실상 무산된 바 있다. 댐 건설 필요성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민. 환경단체. 지역민들의 의견이 또 다시 팽팽히 맞서면서 이번 수재로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가 일정하게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횡성 “사방댐이 피해 막아줘”

지난 2001년 집중폭우때 온 마을이 초토화되는 등 큰 비가 내릴 때마다 상습적으로 수해를 입어 오던 청일면 초현리 속칭 수아지마을이 지난 집중폭우때 거의 피해를 당하지 않자 마을 계곡 상류의 사방댐덕이라고 고마워하고 있다.
수아지마을은 지난 2001년 집중폭우때 마을 상류의 계곡에서 산사태와 유실 등으로 토사가 대규모로 밀려 내려오면서 하천 둑이 터지고 범람하는 바람에 하천 주변 농경지가 쑥대밭이 됐다.
이 마을은 이전에도 큰 비가 내릴때마다 이런 현상이 상습적으로 발생하면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하고 피땀흘려 가꾼 농사를 망치게 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원인은 마을 상류 계곡에서 내려오는 토사 때문으로 보고 지난 2003년 도에 건의해 도산림개발연구원과 횡성군산림조합은 계곡 최상류에 연차적으로 사방댐을 3곳에 설치했다.
이 사방댐은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토사와 돌 등을 하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면서 하천 둑이 터지고 범람하는 수해를 막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 폭우가 멈춘 8월 18일 이들 사방댐에는 5천여 톤 이상의 토사와 나무 돌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사방댐의 역할과 기능을 입증한 반면 사방댐이 없는 주변 신대리 등의 계곡은 큰 피해가 발생했다.
초현리 마을 관계자는 “사방댐을 설치한 후 상류에서 토사가 내려오지 않으니까 이번 같은 집중폭우에도 하천 둑이 터지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사방댐의 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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