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 교수들이 지난 2013년 한 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중국 사기(史記)에 실린 고사성어로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선정한 교수들은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과거 회귀적인 모습을 보이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지적’이라고 밝혔다. 2014년, 집권 2년차를 맞이한 박근혜정부의 달라진 모습에 대한 국민 열망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2월19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첫 과반 득표인 51.6%의 득표율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당선 인사를 통해 “제가 선거 중 크게 약속한 세 가지인 ‘약속’, ‘민생’, ‘대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국민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 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도다. 지난해 12월 한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를 물은 결과 54%만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취임 첫 해에는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지지율이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與 ‘창조경제 기본 정비 한해’ VS 野 ‘민심 불복 1년’
여야지도부는 18대 대통령선거일 1주년을 맞은 지난 12월1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판이한 평을 내놨다. 새누리당은 성과에 주목하며 호평을 내놓은 반면 야당은 박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하며 혹평을 내놨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쌓기 위한 기본적 안보외교와 경제 영역을 넓히는 경제 외교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창조경제로 국정 방향을 잡고 기본을 정비한 한해였다. 이를 기반으로 장기간 정체에 빠진 우리 경제의 숨결을 되살려 성장률을 플러스로 되돌렸다”고 평가했다. 같은 당 정우택 최고위원도 “지난 1년간 북한 문제와 야당의 박근혜정부 흠집 내기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꾸준히 50~60%를 유지하는 반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이며 그나마 안철수신당이 창당될 경우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사건건 발목잡기를 하며 국정운영을 파행으로 몰고 갔기에 국민 마음이 야당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야당은 혹평을 내놨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박근혜정부는 지난 대선 국가기관 불법을 덮는 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며 “이제는 대선 정국을 특검으로 매듭짓고 여야 정치권은 나라와 민생에 몰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병현 원내대표도 “지난 1년은 정권 안보에만 올인 한 민심 불복 1년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박근혜정권은 대선 불법과 부정을 덮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공약을 파기하고 민생을 타파시킨 3파 정권이 됐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1년 전 오늘 있었던 대선의 관권부정선거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종북 마녀사냥을 전개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며 “사상과 양심, 표현과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통합’보다 ‘마이웨이’ 고집
박 대통령은 당선 인사문에서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가겠다.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며 대통합 의지를 다졌다. 이는 18대 대선이 역대 가장 치열한 ‘보혁대결’의 선거로 치러졌던 탓에 국민통합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손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국민통합은 여전히 박 대통령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대선 직후 대통령 직속의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발족시켰지만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국민통합을 위해 약속한 대탕평 인사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5대 권력기관장(감사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국정원장) 중 영남권 출신인사는 두 명인데 반해 호남권 인사가 전무한 점이 대표적이다.
특히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을 그대로 관통했다. 국정원 의혹은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찍어내기’ 논란, 종교계의 시국선언, 대학가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등은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 이슈다. 여기에 여당이 들고 나온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 유출 및 폐기 논란까지 겹치며 분열 양상은 지속됐고 대한민국의 시계는 1년 전 대선에 멈춰있다는 평까지 나오게 됐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통합보다 ‘마이웨이’를 고집하며 대야(對野) 관계를 대립으로 치닫게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의 26%가 ‘소통 미흡’과 ‘독선’을 꼽았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복지공약 후퇴…신뢰 이미지에 타격
대선 공약의 일부 후퇴로 신뢰 이미지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과 관련해 현재 65세 이상의 노인 70%에게 월 9만6,800원씩 주던 것을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월 20만 원 이상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됐다.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10~20만 원씩 차등지급하는 방안으로 후퇴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주택공약인 행복주택 공급 규모도 당초 20만 가구에서 30% 줄어든 14만 가구로 축소됐다. 최근 불거진 철도 및 의료 민영화 논란도 신뢰의 위기에서 온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리 ‘민영화가 아니고 그렇게 할 계획이 없다’고 해도 불신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의 이미지가 지금의 박 대통령을 있게 한만큼 신뢰 이미지에 남겨진 상처는 박 대통령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경제민주화 뒷전…체감경기 여전히 싸늘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올인 한 박 대통령은 고용률 70% 달성과 중산층 70%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단 경제 지표상으로는 긍정적 시그널이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이 집계한 2013년 11월 취업자 증가폭은 58만 8,000명으로 2012년 9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용률은 60.4%로 2012년 같은 기간에 비해 0.7% 상승했으며 10월 중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9.3% 증가했다. 무역규모는 3년 연속 1조 달러를 돌파했고 수출액과 무역흑자도 각각 사상 최대인 5,600억 달러, 43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경기는 ‘최대치’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거시경제 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상당히 크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강조해 왔지만 아직은 그 ‘온기’를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의미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자산은 지난해 보다 0.7% 증가한 반면 평균 부채는 6.8%나 늘었다. 또한 통계청의 ‘2103년 사회조사 결과’,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평가한 가구주가 46.7%로 2년 전에 비해 1.4p 늘어난 반면 ‘중간층’이라는 가구주는 51.4%로 1.4p 줄었다. 지난 대선에서 최대 화두로 떠올랐던 ‘경제민주화’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새누리당 탈당을 결심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대북관계 등 원칙 중시 스타일 고수
박 대통령은 1년간 국내·외 현안에 대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국정을 이끌어 왔다. 특히 대북 문제 등에 있어서는 유독 원칙을 중시하는 자신의 신념을 대입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취임 직후부터 박근혜정부가 줄곧 당면한 현안 중 하나였던 북한문제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진정한 변화와 평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원칙으로 일관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주장해 왔다. 그 결과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위기 등이 지속되는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 긴장관계가 완화되는 국면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또 지난해 말 벌어진 방공식별구역(ADIZ) 논란과 관련해 미·중·일 간의 치열한 견제 속에도 끝내 큰 마찰 없이 이어도 상공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KADIZ)을 발표하는 외교원칙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문가들 “정치의 실종”…평가는 박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 공약후퇴 공방, 여야 극단대치까지 논란의 연속이었던 지난 1년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 실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접점을 찾아가는 갈등조정 능력을 현 정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대통합이라는 슬로건이 참 초라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출범 후 줄곧 정쟁의 원인이자 민생의 ‘블랙홀’로 평가받아 온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의혹의 몸집이 날로 커지고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해 특별검사 실시 등 ‘정치적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대로 가서는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지 않는다”라며 “대통령이 뭔가를 결심해야 한다. 야당의 주장을 100% 수용하지는 못하더라도 특검 등 수용할 건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도 “해당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은 기다린다고 해도 관련자들이 기소됐다는 것만으로도 입장표명, 사과를 해야 할 사안”이라며 “그것마저 거부하고 있으니 정국이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정난맥상 근본 원인으로 현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야권의 협조 없이는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접점을 찾아내기 보다는 대야 공세를 선택해 갈등을 되레 증폭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수직적 당청관계도 ‘정치실종’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윤희웅 언론분석센터장은 “지금은 야당과 청와대가 정국의 중심이고 여당은 현 정국에서 비켜서 있다”며 “여당이 정국갈등 상황을 중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정 초반부터 국정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치 복원’을 위한 박근혜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바뀌었는데 새로운 것은 없고 정치는 묶여 있으니 커지는 것은 불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꼬여버린 현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고칠 것은 고치고 반대편에 호소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첫 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