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 것이 성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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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한 것이 성공의 출발점이다”
  • 박상목 부장
  • 승인 2013.12.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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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상품약관 꿰고 있을 정도로 교육하는 열정적인 인생 파트너

고객중심의 윤리경영으로 정평이 나 있는 메트라이프는 지난 1989년 한국에 첫 선을 보였다. 이후 지속적인 교육과 선진 시스템으로 고객들의 신뢰를 쌓음으로써 만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역량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이곳의 FSR(Financial Services Representative)들은 그야말로 재정설계전문가의 넘버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함께 걱정하고 고민해 준다는 것, 그것만큼 마음 따뜻하고 든든한 일이 있을까.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을 이어주는 정이 실종된 지금에도 그 옛날의 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람, 메트라이프 김병구 FSR을 만나보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한다. “아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상대방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지?” 이 한마디의 평가에서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는 나이답지 않은 현명함과 따뜻함으로 스스로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희망을 만나다

▲ 김병구 FSR은 메트라이프에서 배운 것을 모두 고객들에게 주려고 한다. 금융정보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오직 축구만 하며 국가대표를 꿈꾸던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자신의 전부였던 그라운드를 잃게 됐다. 처음 느낀 실패는 그에게 너무 깊은 늪이었다. 특히 ‘꿈’은 곧 ‘하늘’이라 생각했던 어린 그에게 부상은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을 터. 몸은 완쾌 되었지만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없다는 좌절감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고 방황이 어느덧 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를 바라보던 주위의 시선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그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늘 지켜보던 형님이 그에게 GA에서의 일자리를 제안한 것. 조심스럽게 내민 희망의 손길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낸 그는 대구에서 처음 영업이란 것을 시작했다. 낯설고 험한 길이었지만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가끔은 보람과 재미도 느껴졌다. 지나간 하루만큼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았고, 축구를 할 때의 패기와 열정이 생겨났다.
일을 하루하루 경험하면서 그는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부상으로 병원에 있는 동안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보험 때문이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현실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는데 GA에서 일을 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경험이 더해져서 일까. 고객을 만나는 순간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처럼 절실한 순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설명하고 한분의 고객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애썼다. 김병구 FSR은 자신의 일이 고객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가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그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고객의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올곧은 정보와 자산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전문적인 금융정보를 제공해 줄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처음 이 일을 제안했던 형님의 아내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메트라이프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메트라이프 대표 FSR로 활동하고 있던 신정은 FSR은 김병구 FSR의 열정과 가능성을 알아봤고.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메트라이프에 입사한 김병구 FSR은 대기업의 프로세스 아래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며 당당히 메트라이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
그렇다고 해서 김병구 FSR에게 대단한 비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항상 기본에 충실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김병구 FSR의 경쟁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고객에게 무엇을 해 줄지 고민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맞은 고객에게 자신과 메트라이프가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것은 형언하기 힘든 보람이다. 김병구 FSR은 “저는 메트라이프에서 배운 것을 모두 고객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알고 있으면 살아가는 동안 도움이 될 만한 금융정보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그와 인연을 맺고 있는 고객들은 김병구 FSR만큼이나 보험약관에 대한 상세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 대개 보험약관을 읽어보지도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의 고객들은 다르다. 아는 만큼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이런 특별함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도 많다. 김병구 FSR의 기존 고객이 지인을 소개해 만나보면 그가 상품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기존 고객들에게 자세히 또 마음을 다해 했던 설명들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김병구 FSR은 고객들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자신을 믿고 계약해준 사람들을 위해 언제든 자신의 시간을 비워놓는다. 뿐만 아니라 고객을 만나기 위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달려간다. 성실함과 열정, 이것이 김병구 FSR 성공대로의 탄탄한 초석이 되고 있다.

특별함은 멀리 있지 않다

 
김병구 FSR만의 특별한 계약 노하우는 지인과의 계약에서도 빛을 발한다. 일례로 누구보다 공사구분이 확실했던 그의 대학동기에게 계약을 권유했을 때 당시 거래하고 있던 상담사와 삼자대면을 요구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친구가 알고 있는 정보, 그리고 타사의 정보를 정확히 비교해 보자는 게 취지였다.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 삼자대면(?) 후 친구는 결국 김병구 FSR과 계약을 체결했다. 쉽지만은 않은 자리를 털고 나오면서 그 자리에 함께 참석했던 다른 회사의 직원은 그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했을 정도라고.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성공한 FSR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주위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젊은 나이에 보험 일을 한다는 것이 녹록한 도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반대와 부모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끝까지 믿고 지켜봐준 지금의 약혼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병구 FSR은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준 약혼녀, 이제는 아들을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고 이야기할 때, 그는 2년은 꼭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 김병구 FSR은 10년이라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2년을 잘 이겨냈으니 이제는 10년을 목표로 정도를 걷고 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3W(STAR)를 이어나가는 것.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기 위해 뛰었던 것처럼 그는 이제 3W를 달고 사람들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김병구 FSR이 메트라이프의 국가대표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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