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적인 정보도 확인하지 않고 결과에만 초점을 맞춰 성급히 성사된 국제결혼이 미칠 파장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마치 시한폭탄과 같다. 그동안 국제결혼에서 국내 남성의 경우 경제적 측면에서는 물론 정보 면에서도 우월한 위치에 있고 국내로 들어오는 결혼이민여성은 상대적인 약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정보 부족으로 인한 남성의 피해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은 남성과 여성 쌍방간의 부정확한 정보 제공에다 이윤추구에 집착하는 결혼중개업체의 계산까지 더해져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베트남 여성 응우옌(38)씨가 고향에서 남편 김모(46)씨를 만난 것은 작년 8월이었다. 다소 어눌해 보이긴 했지만 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저 ‘말주변이 부족한가 보다’ 생각했다. 다음 달 한국으로 건너와 혼인신고를 한 뒤 전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응우옌씨는 날이 갈수록 남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됐다. 노(老)부모가 열심히 농사를 짓는데도 남편은 도울 생각은 않고 옆에서 헤벌쭉 웃기만 했다.
응우옌씨의 남편은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맞선을 볼 당시 커플 매니저가 진단서를 정상인처럼 조작해 제공하는 바람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응우옌씨가 이혼하려 하자 커플 매니저 장모씨가 찾아와 “왜 말썽을 일으키느냐”며 오히려 뺨을 때리는 등 폭행했다. 경찰은 이주여성센터를 통해 이런 사실을 파악한 뒤 커플 매니저 장모씨를 허위 정보 제공과 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은 남성 회원에게서 소개비 대부분을 받기 때문에, 일부는 남성 회원들의 결함을 숨기고 소개해주는 등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치는 불법 국제결혼 중개
최근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지난 8월22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한 결과 1명을 구속하는 등 총 387명을 검거했다. 경찰은 같은 기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성매매도 집중 단속해 65명을 검거하고 1명을 구속했다. 아울러 다문화가정 내 가정폭력사범 27명을 검거해 2명을 구속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불법 결혼 중개업자 중엔 자신이 국제결혼을 하고 배우자의 외국 인맥을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곽모(53)씨는 무등록 결혼 중개업체를 차려놓고 베트남 출신 여성들을 섭외했으며, 한국인 남성은 곽씨가 일하는 공장 관계자 등을 통해 확보했다. 이 부부는 남성 회원에게 가입비 1,000만 원을 받는 등 불법 결혼 중개 사업을 한 혐의로 지난 7월 경찰에 붙잡혔다.
이 외에 한국에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외국인 여성과 돈이 필요한 한국인 남성을 연결해주는 위장 결혼 알선, 작년 8월부터 국내에서도 법으로 금지된, 남성 1명이 여러 여성을 한꺼번에 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는 1 대 다수 식 맞선을 주선한 경우, 미성년자인 현지 여성을 소개해 준 사례 등도 적발됐다.
특히, 한국 노총각 1명이 외국인 여성 다수를 만나 신부를 고르는 ‘신부쇼핑’ 맞선행사를 벌인 국제결혼중개업자가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베트남 등 현지에서 일명 ‘초이스’식 국제결혼 맞선을 중개한 업자 A(59) 씨 등 10명을 검거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국제결혼을 원하는 농촌 총각 등을 상대로 1인당 1,200만~1,500만 원을 받고 외국인 여성과 현지에서 1대 다수 맞선을 알선한 혐의(결혼중개업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현행법은 ‘이용자에게 같은 시간에 2명 이상의 상대방을 소개하는 행위’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2명 이상의 이용자에게 2명 이상의 상대방을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국제범죄수사2대는 이 밖에도 지난 9월과 10월 무등록 국제결혼중개업자와 거짓 신상정보를 제공한 업자 등 50명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결혼한 유부녀를 처녀라 속여 소개하고, 고졸 학력자를 대졸자로 속이는 등 내국인 이용객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해 결혼을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피해자 수만도 35명에 달한다.
지능적 ‘계획 이혼’ 급증
그런가 하면 국제결혼으로 ‘반쪽’ 찾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사라져 신혼 단꿈이 날아가 피해를 입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사는 디자이너 정모씨(32). 독신주의를 내세우던 그는 지난해 10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우즈베키스탄 여성 A씨(25)와 결혼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지난 1월부터 강남 부모님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아이도 생겼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함은 도를 넘은 아내의 선물 요구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월 1,000만 원 넘는 고소득 전문직이라 처음에는 아내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 아내가 선물을 요구하는 주기가 2~3일 단위로 짧아지면서 다툼이 잦아졌다. 지난 5월에는 옆에서 자는 줄 알았던 아내가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고향의 남자친구와 “젊은 남자랑 결혼하니까 용돈도 잘 주지 않는다.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그냥 보내주지도 않고 꼬치꼬치 따진다”는 내용을 주고받았다.
정씨는 아내와 크게 다퉜고, 아내는 그길로 집을 나갔다. 이틀 후 서울의 한 쉼터로부터 연락을 받고 정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달려갔다. 정씨는 “아내가 갑자기 어머니의 팔을 물어뜯어 난리가 났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씨는 이혼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A씨도 이혼의 책임이 정씨에게 있다며 맞소송을 냈다. 정씨는 “어디서 조언을 들었는지 위자료를 많이 받아내려 폭행당했다는 등 없던 일까지 꾸며낸다”며 “그냥 이혼하면 체류 근거가 없어져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게 돼 이혼의 책임이 남편한테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이와 같이 외국 여성과 국제결혼한 남성들의 피해 사례도 꾸준히 증가추세다. 쉰 가깝도록 짝을 못 찾은 ‘시골 노총각’이 주역이던 국제결혼 남성이 잘 나가는 전문직까지 확산되면서 지능적 계획 이혼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혼 사유를 남편에게 떠넘겨 거액의 이혼 합의금을 뜯어내고, 한국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는 행각들이다. 국제결혼 초기 술주정하는 남편에게 폭행당한 어린 아내들이 ‘생존’을 위해 이혼을 선택했다면 최근엔 작은 다툼에도 한몫 챙기고 갈라서는 ‘할리우드식’ 이혼이 성행하고 있다.
돈 노린 위장 결혼…브로커 가세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제결혼을 통한 결혼이민자는 28만 명을 넘고 있다. 매년 외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이혼한 부부는 8,000쌍을 넘나든다는 게 통계청의 집계다.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본 남성들은 “다문화 가정 파괴 요인으로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이혼으로 잃을 게 없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다문화 가정의 이혼 특징은 월 500만 원이 넘는 중산층 가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인천 부개동에 사는 안모씨(46)는 26세의 어린 아내를 극진히 배려했다. 굴삭기 기사로 한 달 500만~600만 원을 벌어 생활이 넉넉했다. 그런데 아내는 한국 생활에 싫증을 내더니 우즈베키스탄의 남자친구에게 계속 국제전화를 걸었다. “야 스쿠촤유 파 치베. 야 치바 류블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 안씨는 천불이 났다. 급기야 아내는 커터칼로 손목을 긋기까지 했다. ‘왜 집과 차를 사주지 않느냐’는 게 이유였다. 결국 안씨는 아내와 이혼하며 수천만원의 위자료를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위장 결혼의 피해는 한국인 남편과 그 가족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신혼의 단꿈이 깨진 것도 모자라 결혼하는 데 들어간 수천만원의 금전적 손해까지 감당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혼을 염두에 둔 외국 여성들은 결혼생활보다 국내 돈벌이에 관심을 두고 한국행을 택한다고 지적했다. 혼인 신고를 마치고 결혼이민 비자(F-6)를 받으면 초기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고 보통 1년 단위로 비자를 갱신한다. 2년이 지나면 귀화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물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했을 때 얘기다.
최근에는 ‘기획이혼 브로커’가 다문화 가정의 이혼을 부추기고 있다. 브로커들은 이주여성에게 ‘가정폭력 당하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준다. 이혼할 때 남편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한국에서 계속 지낼 수 있어서다. 위자료를 받으면 일부를 수수료로 챙긴다. 수수료를 노리는 브로커와 비자 연장과 영주권 취득 등으로 한국에서 독립하고 싶은 이주여성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기획이혼’이 기승을 부리는 셈이다. 비자 기한이 넘더라도 이혼 소송 기간 중에는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이혼 전에 결혼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내부적으로 F-6(3) 비자로 분류돼 체류 자격을 얻어 합법 체류 기간에는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나중에 영주권이나 귀화 자격을 취득할 수도 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결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은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소송까지 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도 “국제결혼을 한 부부 중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쪽은 남성이 많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의 이혼소송 제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불법 국제결혼 중개 단속 강화
불법 국제결혼 피해가 급증하자 법무부가 불법 국제결혼 중개업체 근절에 나섰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민통합과(과장 차용호)는 미등록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한 단속 강화의 일환으로 지난달 6일부터 재외공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비자 심사를 연계·강화했다.
지난 8월 국제결혼 중개업체 등록을 위한 자본금 기준(1억원)이 정해지면서 다수의 영세 업체가 기준 충족 미달로 폐업했다. 이 업체들이 폐업 후 미등록 상태에서 불법 영업을 계속해 오면서 단속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비자 심사 과정에서 교제경위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 밝혀질 경우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허위 교제경위서를 작성한 한국인 배우자, 알선 중개업자까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처벌할 방침이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7조의 2항에 따르면 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합법적으로 등록된 업체를 이용해도 결혼이민 비자를 받기 위해 교제경위를 조작하는 등 허위로 교제경위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한국인 배우자도 처벌될 수 있다. 이용자는 비자 신청서류 작성시 결혼중개업체에 위임하더라도 작성된 서류의 사실 일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허위 교제경위서를 작성하거나 알선한 결혼중개업체는 이에 따른 처벌 외에도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결혼중개업의 등록취소, 향후 3년간 중개업체 운영이나 중개업체 종사가 금지된다.
법무부는 또 결혼 동거 목적의 비자 발급기준을 강화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공포하고 내년 4월1일부터 시행한다. 이는 ‘배우자 쇼핑’으로 불릴 만큼 국제결혼이 속성으로 진행돼 가정폭력, 사기 등 국제 혼인피해 사례가 잇따르자 입국 전 단계인 비자발급 단계에서의 예방조치를 도입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결혼당사자가 만난 지 4~5일만에 결혼하는 속성결혼 방지를 위해 결혼이민자가 기초수준 이상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심사한다. 다만 부부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경우 심사를 면제받는다. 또 해외에 있는 배우자를 초청하는 국내 당사자가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과 주거공간을 확보했는지를 확인한다. 이 때 고시원과 모텔, 비닐하우스 등은 주거공간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규정했다.
이밖에 빈번한 결혼이민 초청을 막기 위해 5년 이내 1회만 결혼이민자를 초청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해외에서 입국한 결혼이민자가 이혼 후 자국민과 결혼, 다른 결혼 이민자를 초청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결혼이민자의 경우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후 다른 결혼이민자를 초청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다만 부부 사이 출생한 자녀가 있는 경우 이들 심사규정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고 결혼이민자 조기정착을 위한 각종 신청 및 법질서 교육, 정보제공 등 프로그램도 운영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