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불과 함께 살아 온 무위자연의 삶
한국도예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60년 외길을 걸어 온 거장
문경은 지리적으로 백두대간 중심에 있고, 도자기 제작에 적합한 양질의 사토와 땔감이 풍부해 도자 제작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발물레와 전통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는 도공들이 즐비한 곳으로 일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도자기의 본고장이다. 서구화가 돼 가며 좀 더 편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옛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도자기의 종주국으로써 위상을 지키기 위해 도자기에 혼을 불어 넣는 이들이 있다.
시대가 바뀌고 세태가 변하여도 평생 한 가지 업에만 종사하며 기술일가를 이루고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유적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 바쳐가며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기란 쉽지 않다. 한 평생을 갈고 닦은 기술이 총화를 이룬 독보적인 인물을 우리는 ‘명장’이라 부른다. 도예분야의 명장인 천한봉 선생을 만나 그가 명장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 쏟은 귀중한 땀방울과 노력에 대해 들어 보았다.
흙과 불속에서 살아온 60년 인생
분청사기기법을 재현해 내며 전통가마 제작기법을 전수해 도자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천한봉 명장은 14세이던 1946년에 도예에 입문해 한국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온 도예 인생이 어느새 60년을 맞았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과 함께 고국인 문경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갑작스런 작고로 14살의 어린 나이에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한 도공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변변한 도예간 하나 없던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고의 60년 동안 흙과 불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대한민국의 도자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고집과 집념이 우리나라 찻그릇 문화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우리역사의 산증인 되고 있다.
쉬운 길로의 유혹 속에서 꿋꿋하게 한 길을 걸었기에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고집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손쉬운 가스 가마 대신 장작으로 불 지피는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며 전통을 맥을 이어오며 마음에 흡족하지 않는 작품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즉시 깨트려버린다.
도예발전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희사한 천 명장은 도공인생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도 60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60년 도공인생을 담은 일대기가 책으로 엮어질 예정이며 이 책은 도공을 길을 걷고 있는 후계자들에게 삶의 지침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공역사를 알 수 있어 도공문화 정착에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전에도 많은 전시회를 열었는데 특히 지난 2002년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전시회는 최고의 예술품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전시회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 전액을 불우 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심어주었다.
그가 다시금 혼신을 다해 도자기 만드는 것은 후계자 양성을 위한 질주이다. 아버지에게 도예를 전수 받고 있는 그의 막낸 딸 천경희 씨가 든든한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천경희 씨를 비롯하여 더욱 많은 인재들이 배출 돼 우리나라 도예발전에 일조하길 소망하는 천 명장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세계에 우리 전통을 전하는 선구자
천 명장은 우리전통을 이어가는데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조선시대의 막사발은 우리나라의 전통유산임에도 불구하고 500여 년 전 일본에 무역이나 주문 등을 통해 수출되거나, 빼앗겨 일본의 문화인 것 마냥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일본으로 건너가 도자기학문연구와 제작연수에 박차를 가해 우리전통 도자기 재현에 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차를 좋아하는 이는 누구나 그의 찻그릇에 욕심을 낸다.
97년 일본 NHK방송은 그를 아시아 최고 인물로 선정했으며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 신문들도 그를 ‘한국 전통도예의 1인자’로 평가해왔다. 그는 이 같은 국위 선양의 공으로 70년대 말 동아일보에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천 명장은 “우리나라 사발은 일본의 사발과 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특색 및 우수성 또한 월등하다고 본다. 문경의 흙은 그릇을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닌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곳이다. 무엇보다도 전통가마에서 구워 낸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한국의 멋이 살아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한국의 사발에 환호할 수밖에 없다”라며 한국 찻사발 우수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미 고희를 넘긴 나이이지만, 그는 그릇을 빗을 때 나타나는 내재된 정열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의 열정은 작품에서 역력히 엿볼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 넣으며 자연 그대로를 작품에 실어 인간냄새가 물신 담긴 살아있는 작품을 추구한다. 아울러 흙, 장작, 유약 등 천연의 원료를 직접 채취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의 그대로의 모습을 작품에 담고 있다. 가마 안의 불을 지피고 열정으로 새겨진 그의 사발은 청자나 백자같이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담아 불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서민적이고도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 우리네 살아 온 정서와 흡사하여 친숙하게 느껴진다. 욕심 없이 순수한 천 면장의 작품처럼 온 국민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 각박해지는 현실속에 순수함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문경요의 천한봉 명장 인터뷰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나라를 수호하는 것과 같다”
장인과 그들의 정신을 높이 받들어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장 한국적이고 대표적인 문화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와 경쟁해야 한다. 도자기의 우수한 내성 때문에 생활용품이나 기계의 부속품 등에 활용되고 있다.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도자기를 정작 국내에서는 그 진가를 모르고 있다. 이제 그 진가를 인식 해 우리나라의 도자기산업을 발전시켜야할 시점이다.
많은 시간과 오랜 경험, 꾸준한 노력에 의한 명맥 유지가 필요하나 계승해 나갈려는 젊은이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도자기에 배우려는 후계자들이 많이 생겨나 전통적인 방법을 전수받아 도자기의 우수성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거나 더욱 많은 분야에 활용되길 소망한다.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 강화와 이미지 제고에 일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 차원에서 우리의 것, 즉 전통에 관심을 기울여 국민들이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을 각인 시켜야 한다. 전통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나 체험 학습관등의 마련하여 어렸을 때부터 전통에 대한 지식을 쌓도록 하며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전통 문화 알기’ 축제를 활성화시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우리 역사와 전통미의 우수성을 알리는 모태가 될 것이며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 진출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도예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60년 외길을 걸어 온 거장
문경은 지리적으로 백두대간 중심에 있고, 도자기 제작에 적합한 양질의 사토와 땔감이 풍부해 도자 제작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발물레와 전통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는 도공들이 즐비한 곳으로 일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도자기의 본고장이다. 서구화가 돼 가며 좀 더 편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옛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도자기의 종주국으로써 위상을 지키기 위해 도자기에 혼을 불어 넣는 이들이 있다.
시대가 바뀌고 세태가 변하여도 평생 한 가지 업에만 종사하며 기술일가를 이루고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유적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 바쳐가며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기란 쉽지 않다. 한 평생을 갈고 닦은 기술이 총화를 이룬 독보적인 인물을 우리는 ‘명장’이라 부른다. 도예분야의 명장인 천한봉 선생을 만나 그가 명장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 쏟은 귀중한 땀방울과 노력에 대해 들어 보았다.
흙과 불속에서 살아온 60년 인생
분청사기기법을 재현해 내며 전통가마 제작기법을 전수해 도자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천한봉 명장은 14세이던 1946년에 도예에 입문해 한국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온 도예 인생이 어느새 60년을 맞았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과 함께 고국인 문경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갑작스런 작고로 14살의 어린 나이에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한 도공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변변한 도예간 하나 없던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고의 60년 동안 흙과 불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대한민국의 도자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고집과 집념이 우리나라 찻그릇 문화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우리역사의 산증인 되고 있다.
쉬운 길로의 유혹 속에서 꿋꿋하게 한 길을 걸었기에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고집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손쉬운 가스 가마 대신 장작으로 불 지피는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며 전통을 맥을 이어오며 마음에 흡족하지 않는 작품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즉시 깨트려버린다.
도예발전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희사한 천 명장은 도공인생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도 60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60년 도공인생을 담은 일대기가 책으로 엮어질 예정이며 이 책은 도공을 길을 걷고 있는 후계자들에게 삶의 지침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공역사를 알 수 있어 도공문화 정착에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전에도 많은 전시회를 열었는데 특히 지난 2002년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전시회는 최고의 예술품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전시회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 전액을 불우 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심어주었다.
그가 다시금 혼신을 다해 도자기 만드는 것은 후계자 양성을 위한 질주이다. 아버지에게 도예를 전수 받고 있는 그의 막낸 딸 천경희 씨가 든든한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천경희 씨를 비롯하여 더욱 많은 인재들이 배출 돼 우리나라 도예발전에 일조하길 소망하는 천 명장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세계에 우리 전통을 전하는 선구자
천 명장은 우리전통을 이어가는데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조선시대의 막사발은 우리나라의 전통유산임에도 불구하고 500여 년 전 일본에 무역이나 주문 등을 통해 수출되거나, 빼앗겨 일본의 문화인 것 마냥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일본으로 건너가 도자기학문연구와 제작연수에 박차를 가해 우리전통 도자기 재현에 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차를 좋아하는 이는 누구나 그의 찻그릇에 욕심을 낸다.
97년 일본 NHK방송은 그를 아시아 최고 인물로 선정했으며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 신문들도 그를 ‘한국 전통도예의 1인자’로 평가해왔다. 그는 이 같은 국위 선양의 공으로 70년대 말 동아일보에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천 명장은 “우리나라 사발은 일본의 사발과 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특색 및 우수성 또한 월등하다고 본다. 문경의 흙은 그릇을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닌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곳이다. 무엇보다도 전통가마에서 구워 낸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한국의 멋이 살아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한국의 사발에 환호할 수밖에 없다”라며 한국 찻사발 우수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미 고희를 넘긴 나이이지만, 그는 그릇을 빗을 때 나타나는 내재된 정열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의 열정은 작품에서 역력히 엿볼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 넣으며 자연 그대로를 작품에 실어 인간냄새가 물신 담긴 살아있는 작품을 추구한다. 아울러 흙, 장작, 유약 등 천연의 원료를 직접 채취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의 그대로의 모습을 작품에 담고 있다. 가마 안의 불을 지피고 열정으로 새겨진 그의 사발은 청자나 백자같이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담아 불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서민적이고도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 우리네 살아 온 정서와 흡사하여 친숙하게 느껴진다. 욕심 없이 순수한 천 면장의 작품처럼 온 국민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 각박해지는 현실속에 순수함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문경요의 천한봉 명장 인터뷰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나라를 수호하는 것과 같다”
장인과 그들의 정신을 높이 받들어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장 한국적이고 대표적인 문화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와 경쟁해야 한다. 도자기의 우수한 내성 때문에 생활용품이나 기계의 부속품 등에 활용되고 있다.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도자기를 정작 국내에서는 그 진가를 모르고 있다. 이제 그 진가를 인식 해 우리나라의 도자기산업을 발전시켜야할 시점이다.
많은 시간과 오랜 경험, 꾸준한 노력에 의한 명맥 유지가 필요하나 계승해 나갈려는 젊은이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도자기에 배우려는 후계자들이 많이 생겨나 전통적인 방법을 전수받아 도자기의 우수성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거나 더욱 많은 분야에 활용되길 소망한다.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 강화와 이미지 제고에 일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 차원에서 우리의 것, 즉 전통에 관심을 기울여 국민들이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을 각인 시켜야 한다. 전통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나 체험 학습관등의 마련하여 어렸을 때부터 전통에 대한 지식을 쌓도록 하며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전통 문화 알기’ 축제를 활성화시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우리 역사와 전통미의 우수성을 알리는 모태가 될 것이며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 진출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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