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동영상까지 밝혀졌음에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사건은 무혐의로 일단락됐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 또한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다. 지난 2010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스폰서 검사’ 사건에 대해서도 한승철 전 감찰부장 등 전·현직 검사 4명을 뇌물 수수 및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각각 기소 처리키로 했을 뿐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됐던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은 무혐의로, 성접대 의혹을 받았던 검사들의 성매매 혐의 등은 모두 무혐의로 처리돼 ‘용두사미’라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무혐의,
윤중천 중천산업개발 대표 추가 기소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무혐의는 예측가능한 결론이었다. 석연찮은 부분이 그대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피해 여성 3명이 사건 이후에도 윤중천 대표와 만남을 이어온 점, 윤 대표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온 점, 주변인들의 진술과 대치되는 점 등을 들어 강간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윤 대표에 대해서는 불법대출 공모, 입찰방해 등 일부 혐의는 무혐의 처분했지만 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경매방해, 협박, 명예훼손, 배임 등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물론 여성단체, 정치권 등은 각자 의견을 내놨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성관계 동영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이 김 전 차관이라고 주장한 부분을 검찰이 정면으로 뒤엎은 셈이 됐다.
경찰은 발끈하고 나섰다. 경찰수사를 지휘해온 허영범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검찰수사를 통해 그렇게 나온 결과를 다른 기관에서 뭐라고 평하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도 “우리가 수사를 110일 동안 진행해 건설업자 윤 모 씨의 다이어리 통화내용과 피해여성들의 진술로 혐의를 입증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며 적잖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만 이성한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검찰 수사 결과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이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피해 여성들이 불복하면 재정신청 등 절차가 있으니 지켜보자”고 말하면서 김학의 전 차관의 사건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재정신청과 탄원서, 이재오 의원의 특검 주장
정치권도 검찰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11월11일 검찰은 사회지도층 성접대 의혹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피해여성은 물론 최초 이 사건을 수사해서 검찰로 송치했던 경찰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검찰수사 과정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면서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한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또 서로의 진술이 다를 때 기본적으로 실시하는 대질심문도 없었다. 전형적인 ‘봐주기’,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재오 의원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1년 동안 국정원과 검찰이 정치를 해서 그렇다”면서 “여당은 뒷바라지만 하다가 볼일 다 봤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성 접대 의혹에 휘말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무혐의 처리한 검찰 결정에 대해 “자기들 문제에 대해 국민의 귀와 눈을 막고 있다”며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건은 특검을 통해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사건의 핵심 피해자인 한 여성은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재정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여성은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성접대 여부는 제대로 묻지 않고 다른 피해자들과 말을 맞췄는지에만 집중했다”며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대표로부터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지난 11월 청와대 신문고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전 이들의 그 개 같은 행위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는 당시 윤중천의 협박과 무시무시한 힘자랑에 딸의 억울함을 하소연도 한 번 못하시고 저와 인연을 끊으셨습니다. 윤중천은 제 동생에게 협박성 섹스 스캔들 사진들을 보내 세상에 얼굴을 들 수 없게 하고, 제가 재판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먼저 각하께 억울함을 올리는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아버지가 아셨습니다. (중략) 죽음을 몇 번씩 생각하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에게 버림받고…. 2008년 윤중천이 협박한 녹취된 음성파일과 절 캡처한 사진들을 결혼할 사람이 듣고 모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으로 전 유산하였고 전 윤중천이 얼마나 흉악하고 악질이며 무서운 사람인걸 알기 때문에 그 자료들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략) 피의자인 저들은(김학의) 절 경찰조사 중에 저와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시켜 절 돈으로 도와주겠다며 연락을 하더군요. 역시 법을 잘 아시는 분이라 행동도 빠르시더군요. 전 죗값을 받으라고 했죠. 절 노리개 가지고 놀 듯 윤중천과 가지고 노신…. (중략) 전 담당 검사님께 간절한 제 마음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부디 그 편지가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매일 밤 삶과 죽음길에서 밤을 새웁니다. 전 윤중천의 협박과 폭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님의 권력이 무서웠습니다. 윤중천은 경찰 대질에서까지 저에게 협박을 하며 겁을 주었습니다.
-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청와대 신문고에 올린 공개 탄원서 중 일부
이 여성은 탄원서에서 “피의자인 저들은(김학의) 절 경찰조사 중에 저와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시켜 돈으로 도와주겠다며 연락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역시 법을 잘 아시는 분이라 행동도 빠르시더군요”라며 “전 죗값을 받으라고 했죠. 절 노리개 가지고 놀 듯 윤중천과 가지고 노신…”이라며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끝나지 않은 피해여성의 악몽, 이번에도 용두사미?
그동안 법원과 검찰의 성접대 관련 사건은 무혐의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10년 4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MBC PD수첩 ‘검사와 스폰서’편에서도 마찬가지다. PD수첩에서는 1980년대 경남 일대에서 대형 건설 회사를 운영하던 홍두식(가명) 사장의 증언과 기록 문건을 통해 바닥에 떨어진 검사들의 윤리의식을 낱낱이 고발했다.
PD수첩에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1984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비롯, 100여명 이상의 전·현직 검사들이 홍 사장으로부터 향응과 성접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방송 다음날 검찰에서는 ‘스폰서 검사’에 대해 진상조사를 착수했다. 또한 검찰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민간인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고, 법무부 장관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하고 나섰다. 정치권, 시민사회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사건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검찰의 개혁을 주장했다.
그해 6월 ‘검사 향응 리스트 파문’ 진상규명위원회는 전직 건설업체 대표 정 모 씨에게서 한 부장검사가 성접대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기준 부산지검장을 포함한 검사 10명의 징계를 김준규 검찰총장에게 건의했다고도 발표했지만 이들 검사의 접대 사실을 확인하고도 대가성은 없다고 판단해 ‘반쪽 조사’라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볼 때,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 대해 특검을 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경찰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주장하는 성관계 동영상이 있음에도,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한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대질심문도 하지 않은 검찰, 이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일각에서는 남녀가 헤어지면 그때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처럼 이러한 섹스 스캔들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묻히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검찰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을 쳤으니 내 식구라도 살려보자는 셈법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할 듯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의 싸움이 아니라 피해여성에 대한 인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