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의학 인정하는 세계추세, 반면 의료계 질서 무너트릴까 우려
지난 4월 20일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이 물리치료사도 단독 개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입법발의 안을 국회에 제출함에 따라 의료계와 물리치료사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료계는 물리치료도 엄연히 의료행위인데 어떻게 의료인이 아닌 물리치료사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또한 환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남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단독 개원 둘러싸고 찬반논란
의료기사란 임상병리사ㆍ방사선사ㆍ물리치료사ㆍ작업치료사ㆍ치과기공사ㆍ치과위생사 등 의사(또는 치과의사)를 도와 진료 또는 검사 보조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의료기사 중에서도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직종은 물리치료사. 의료계에 따르면 물리치료사들은 "의사의 `지도'가 아닌 '의뢰'를 받는 단독 개원이 보장돼야 한다"며 김선미 의원(열린우리당)이 발의한 개정안을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의사가 처방권을 갖고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독자적 생존권을 위해 자신들의 영업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독 개원이 허용되면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물리치료사를 고용하지 않은 의사도 물리치료 처방을 할 수 있어 오히려 의사들의 '지도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
대한물리치료사협회 관계자는 "세계에서 물리치료사가 독자적으로 개원할 수 없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단독 개원이 허용되면 환자들은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넘게 단독 개원을 주장해 온 물리치료사들은 이번에야말로 개정안을 통과시켜 오랜 숙원인 단독 개원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독점적인 안마사 자격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나온 뒤 강도 높은 시위를 벌이자 정부가 대안을 모색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못지않은 강경한 시위를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의료기사들이 의사의 지도 감독 아래에서 의료행위를 하도록 한 것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 행위에 수반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물리치료사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의사회는 "의료기사들이 단독 개원하게 되면 의료감독 체계가 흔들릴 뿐 아니라 의료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물리치료사협회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의료기사의 업무는 국민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의료기사가 독자적인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의료계 ‘원천봉쇄 해야’, 한 목소리
강서구 등촌동의 L정형외과의원 이모 원장은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물리치료에는 전기치료, 카이로프랙틱 등 물리치료 도중 잘못되면 의사의 조치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이 가능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 원장은 물리치료를 단순한 마사지 행위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그렇게 될 경우 환자의 건강이 치명적인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 경만호 회장은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은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이다. 경 회장은 해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리치료사의 단독개원은 물리치료 이외 스포츠마사지 등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의료행위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환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치료를 하기 전에 의사의 진단이 있어야 안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며 처방 없는 물리치료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한편 대한물리치료사협회는 적극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물리치료사협회 원종일 회장은 “이 법을 입법발의까지 오는 데 12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물리치료사의 영업권을 인정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우리나라도 도입돼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원 회장은 의사가 처방권을 가지고 물리치료에 대해 주도적인 입장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만약 의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물리치료사들의 생존권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약사와 마찬가지로 영업권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즉, 물리치료사 발생 취지는 의사의 진료를 지원하기위해서이지 의사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므로 이를 경계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가가치 창출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일부 인정한다. 그러나 의료행위 이외 행해지는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이를 우려해 법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의료비용 상승 등 문제점 지적당해
물리치료사협회 등은 김선미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지만,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서울특별시의사회 좌훈정 홍보이사(동대문 중앙성심의원)는 최근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이 안 되는 이유 열 가지를 지적하는 글을 의료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좌 이사는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은 의사의 의료기사지도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료비용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며 "단독개원에 따른 개인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은 독이 든 당근'이라는 제목으로 물리치료사들에게 호소문은 내기도 했다.
좌 이사의 주장에 따르면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을 허용하게 될 시에는 물리치료에 대한 국민의 비용 부담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현행 수가로는 물리치료사가 단독으로 개원하여 정상적인 경영 유지를 할 수 없으며 거꾸로 말하자면 그동안 병의원에 지급했던 물리치료에 대한 수가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었다는 말도 된다. 보험 적용이 되는 물리치료만 가지고도 '물리치료원(가칭)'이 어느 정도 운영이 되려면 지금의 수가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올라야 한다. 결국 이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의 의뢰에 의해 물리치료사가 처방전을 받아 물리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이른바 '의-물리치료 분업'이다. 그런데 이 분업을 시행할 만큼 의료계의 환경이 준비되어 있는지 지금 당장 의-물리치료분업을 한다고 하면 과연 그 수급을 감당할 만큼 물리치료사의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 또 단기간 내에 적정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물리치료원이 생길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만약 제도 시행 이후에 충분한 수의 물리치료원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임의분업식의 물리치료 처방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이 밖에도 입원실을 두고 있는 병의원의 경우 분업이 되더라도 어차피 입원 환자들을 위해 물리치료실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의 설비를 남아돌게 하면서 새로운 시설을 전국적으로 수 천여 개를 만든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자원의 낭비라는 주장이다. 만약 비용 대비 수지가 맞지 않거나 물리치료사를 구하기 어려워 병실을 폐쇄한다면 개원가에서 병상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적자를 감수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물리치료실을 운영한다면 개원 의료계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의료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큰 원칙이 이번 일로 인하여 훼손되고 무너진다면 이와 유사한 요구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우려다. 의료법에서 굳이 의료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할 수 있다는 제한을 둔 이유는 그만큼 생명을 다루는 일이 어렵고도 높은 윤리의식과 의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의료인은 지식도 많이 쌓아야 하지만 자신의 의료 행위에 대해 책임도 무겁게 진다. 어떤 기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손쉽게 의료기관의 이름을 빌어 법적인 규제나 철저한 관리감독 없이 환자의 신체를 다루도록 내버려둔다면 정부는 이미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리 의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의사회, ‘단독개원 절대 반대’ 성명
서울특별시 의사회가 김선미 의원(열린우리당)이 최근 발의한 물리치료사 등 의료기사들의 단독개원을 골자로 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반대한다며 성명을 냈다. 성명서에서 서울시의사회는 의료법 안에는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서만 의료기사들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분명히 정한 것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 행위에 수반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서라고 전제했다.
지난 1996년 물리치료사 협회에서 제기한 위헌 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의사의 진료 행위를 지원하는 의료기사의 업무는 국민 보건과 관련돼 있어 의료기사가 국민을 상대로 독자적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고 덧붙였다. 즉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의료법의 입법 목적에 당연한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 이라는 것. 하지만 개정안은 이러한 의료법의 근본 취지를 무시하고 의료계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소지가 있음에도 수십 년간 별 문제없이 운용됐던 제도를 일부 이익단체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급격히 바꾸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료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개정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해야 하며 의료계의 각 직역들이 모여 논의한 뒤 그 필요성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만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만약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어 물리치료사 등 의료기사들이 단독 개원하게 된다면 의료의 감독체계가 흔들리게 될 뿐만 아니라 국민이 부담하는 의료비용은 크게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체의학 법안 발의 무산 속 물리치료사 단독개원 결과는?
대체의학을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입법움직임이 무산됐다.
김춘진 의원 측은 척추지압요법 ‘카이로프랙틱’ 의사도입과 침술을 사용해 의료행위를 하는 자를 침구사로 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침구사제도 도입 관련 법안이 보류됐다고 본지를 통해 밝혔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법안 개정안이 여야의원들의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해 서명발의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카이로프랙틱제도 도입과 관련해 의사단체들은 "카이로프랙틱만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어떻게 환자의병을 제대로 진단을 할 수 있겠냐"고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카이로프랙틱단체에서는 "미국에서 정식으로 일반의과 대학과 똑같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대체의학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택수 대한카이로프랙틱의사협회 회장은 “지난해 말 WTO 지침서에도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하려면 의사라도 무조건 3년간의 교육을 받은 자가 해야 한다고 명시해 놨다”며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서로 공생하면 더 큰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침구사 제도 또한 보류된 상태로 의사단체에서는 도입을 반대하고 관련단체는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중의술살리기연합은 상극의 의술에서 상생의 의술을 내걸며 대체의학의 인정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오는 29일 여의도에서 벌일 계획이다.
한편, 지난 4월 20일 김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기사 등에 관한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물리치료사의 단독개원을 골자로 한다. 이에 의사단체와 관련단체는 또 다시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을 둘러싸고 제2의 찬성·반대 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즉 그동안 의료기관중심의 통합적인 의료시스템이 독자적인 인정 및 분산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은 물리치료사협회 뿐만 아니라 같은 입장의 카이로프랙틱단체와 대체의학 관련 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시스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사단체측은 의사만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의사이외의 의료기관 설립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이 허용됐을 경우, 일단 보류된 카이로프랙틱이나 침구사제도는 물론 여기에 탄력을 받아 임상병리사·방사선사·간호사 단독 개원 등이 우후죽순 식으로 생겨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즉, 현행 우리나라 의료기관 시스템이 완전히 그 틀을 다시 한다는 것으로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은 물리치료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의학 및 의료기사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물리치료사의 단독개원이 통과 됐을 때 전국에 약 1,000여개점이 생겨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리치료사측 한 관계자는 “최근 경영이 어려운 의사들 입장에서도 대체의학이나 종별의료기사 단독개원이 허용되면 오히려 실보다 득이 많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사는 물리치료사 고용할 때 생기는 인건비의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처방전을 통한 수익배분으로 공생한다면 이는 오히려 축소된 의료시장을 넓히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단체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준비할 사회적 시스템이 현재로선 부재하며 오히려 의료기관 난립으로 경제적 및 건강에 있어서도 환자들의 피해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그간 의료기관의 독점적(?)시장 형태를 벗어나 보다 다양하고 넓게 의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나 근본적으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물리치료사 단독개원이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향방이 ‘의료기관의 기존 체제유지냐’ 아니면 ‘대체의학인정 등 새로운 제도 및 의료기사 단독개원 붐’이 불 것인가를 두고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