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벼랑 끝으로 내몬 ‘안마사 위헌’
“차이와 현실 무시한 무리한 결정” 반발 거세져
안마사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정부와의 협의체 구성으로 진정 국면을 맞기도 했지만 시각 장애인 안마사의 자살로 시각 장애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대한안마사협회는 6월 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시각 장애인이 헌재의 결정에 울분을 참지 못해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헌재의 결정이 시각 장애인 손모(42)씨의 자살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협회측은 “시각 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생계 지원 차원에서 안마업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보장돼 왔는데, 직업선택의 자유가 시각 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우위에 있느냐”며 시각 장애인의 독점적 안마업에 대한 위헌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시각 장애인들의 산발적 시위도 가열됐다. 국립 서울맹학교 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 100여명은 이날 오전 청와대 인근 서울 신교동에 모여 장애인 직업교육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국 시각장애학교장협의회도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헌재의 결정은 안마를 직업교육으로 받고 있는 시각 장애인 학생들의 꿈을 꺾는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마포대교 교각 이동통로에서 벌이고 있는 고공 시위도 8일째 계속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도 다급해졌다. 지난 1일 시각 장애인 비상대책위원회측과 만나 의료법 개정 실무협의회를 구성키로 합의했던 보건복지부는 협의체 발족을 서두르기로 했다. 시각 장애인과 정부, 법조계, 국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이르면 이번 주 내로 결정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정부는 대체입법 과정을 시각장애인협회나 안마사협회 등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생존권 위협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03년 비장애인 송모(65)씨를 비롯한 4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대한안마사협회에 안마사 자격인정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서 규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마사 자격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이러한 대한안마사협회의 결정에 불복, 같은 해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부분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직업의 자유와 교육을 받을 권리, 평등권, 소비자 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서울특별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거듭된 기각과 항소 끝에 대법원까지 간 재판애서 승리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돌아갔으나 송모씨 등 4명은 다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이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송인준)는 지난 5월 25일 7:1로 시각장애인 안마사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에 대하여 ‘위헌’ 판결을 내렸다.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 제1호와 2호에 따르면 “앞을 보지 못하는”이라는 이른바 '비맹제외기준(非盲除外基準)'을 설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2003년 6월 “정부 정책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 할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동일한 사안에 대한 헌재의 달라진 입장과 관련,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법리적 해석에만 의존한 판단, 최소한의 인권과 공동체 사회의 기본적 사회원리를 무시하여 민주주의역사발전에 역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이상적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올 9월 유엔 총회에 상정될 예정인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의장안에도 고용상에서 장애인을 위한 특별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일본, 영국, 미국 등 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안마사 비율 할당제, 공공기관 내 판매시설 운영권 우선 부여, 다양한 직업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에 대한 뾰족한 직업 교육이나 대체 방안이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시각장애인 교육은 외국과 같은 통합교육이 아닌 특수교육에 한정되어 있다.
장애를 가진 학생은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일반 학생과 따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선택과 가능성의 폭이 제한적이다. 더욱이 안마 기술과 같은 직업 교육 위주이므로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울에 위치한 한 맹아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지극히 좁다, 맹학교 전체 수업 중 절반 이상을 안마 수업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대안없이 안마사 자격을 넓히는 것은 희망을 짓밟는 행위"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여기에 다른 장애와는 달리 시각장애를 안고 있을 경우, 장애인 고용센터를 통하더라도 다른 취업의 방도가 여의치 않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달리 안마사 외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사실상 원천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실제 18만여 명에 이르는 시각장애인 중 80%의 장애인이 안마업에 진출하고 있으며 현직 종사자의 수도 5000여 명을 웃돈다.
2006년 5월을 기준으로 한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5581명으로, 안마시술소(982개), 안마원(91개)을 합해 총 1073개의 안마관련 업소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역차별이 아닌 장애의 차이를 고려한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각장애인의 입자에서 본다면 안마사의 독점적 권리 인정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자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의 희망인 셈.
“외국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태국 등이 차별화된 기술을 앞세워 국내 들어올 예정”이라며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에 국한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현행 의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나타낸다.
시각장애인측은 안마는 촉각에 의지한 정교한 의료행위이므로, 제한된 활동영역 안에서 발달된 촉각하는 안마사야말로 오히려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성매매와 관련된 무허가 안마시설이 난립한 현실을 고려할 때 안마사 자격 기준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어선 역할을 해왔음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 헌재의 결정은 오히려 향락 퇴폐 산업이 활성화로 악용될 공산이 다분하다.
시각장애인의 반발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헌재가 성급한 일반화 오류를 했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일반적 의미의 직업을 넘어서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능한 차이를 줄여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행복추구권'을 동등하게 누리게 하자는 복지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헌재는 비교가 불가능한 두 대상을 동일시, 일반인과 장애인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의 이름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눈치보기 급급한 보건복지부
여기에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6월 1일 권인희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의료법 개정 실무협의회’를 구성·운영키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민·관협의회를 구성한다는 원칙적 합의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대체 입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 확인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본다면 예산확보와 다른 장애인과의 형평성 등으로 섣불리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점은 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반하지 않는 대체 입법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입장이 강하다.
한편 대한안마사협회를 비롯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관련 단체들은 5월 31일 ‘장애인생존권확보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희)’를 공식출범하고 본격적인 집단 움직임에 나섰다.
이들은 광화문과 마포대교 등지에서 벌이는 게릴라성 시위와 더불어 6월 5일부터 시작한 대국민 서명운동과 대규모 집회 등으로 적극적인 대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은 시각장애인들의 절박함과 무관하게 월드컵에 쏠려 있어 이들의 투쟁은 더욱 외롭다. 며칠동안 계속된 마포대교 고공시위에도 이를 지나치는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에 시각장애인 단체들은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면서 결연한 '저항'태세다.
지난 달 29일부터 마포대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한마사지협회 경기지부는 “확실한 정부의 후속대책이 나올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태 장기화가 우려된다.
의협도 “안마사 자격 위헌결정 철회”
시각장애인들의 잇단 한강 투신과 자살 등을 불러일으킨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에 대해 의사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
대한의사협회는 6월 8일 논평을 내어 “최근 헌재의 결정과 관련해 직업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기본 논리에는 공감한다”며 “그러나 이 결정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고, 동시에 안마를 빙자한 무분별한 사이비 의료행위가 범람할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의협은 또 “현행 의료법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피부미용실과 스포츠마사지 등에서 불법 의료행위는 물론 윤리를 무너뜨리는 퇴폐행위까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헌재 위헌 결정 철회 또는 즉각적인 대체 입법 제정 등을 요구했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안마사협회와 긴밀한 협의체를 구성해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을 한 이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네티즌들의 항의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5월 25일 결정 이후 헌재 홈페이지에는 결정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이 매일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 안마사 손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6월 4일에는 “결국 시각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등 항의글이 100건 가량이나 올라왔다.
‘슬픔안마사’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여러분들이 이제 시각 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래도 직업의 선택이 우선이라고 하시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아이디 ‘소망지기’는 “법은 국민을 보호하고 특히 사회의 약자와 장애인을 위해 존재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네티즌은 “시각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마땅한 대체입법도 없이 무작정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너무 심하다. 조속히 대체입법을 약속해 그들과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뿐 인데 항의가 이어지고 있어 당혹스럽다”며 “헌재가 대체입법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마땅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캐나다 등 특정 직업 독점 허용”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직업을 가지게 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한국보다 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 여지가 많은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 선진국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하는 직업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각장애인 교포인 미국 코넬한인교회 전희원 담임목사는 6월 1일 한 방송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캐나다는 공공건물과 고속도로 자동판매기는 오직 시각장애인만 운영할 수 있고 스페인에서도 시각장애인만 복권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 목사는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모두 한국과 달리 시각장애인에게 보통 사람과 함께 하는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맹인 특수 교육을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 나라에서는 일반 교육을 처음부터 시키기 때문에 변호사, 프로그래밍, 일반 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등 시각장애인이 하고 있는 일들이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이에 덧붙여 시각장애인들에게만 특정 직업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시각장애인 통합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특수 안마 직업 교육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 등 외국 선진국과 비교할 때 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 여지가 아예 없는 실정"이라며 "그나마 한국에 하나 있던 시각장애인 독점 직업을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없애버린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는 "한국의 안마사 전체 직업 수에 비해 시각장애 안마사 수가 크게 모자라 일반인의 안마사 직업 진출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걸로 안다"며 "그렇다면 대체 입법을 통해 기존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직업을 잃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과 같이 다른 독점 직업을 시각장애인에게 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장기적으로 한국 시각장애인들이 통합 교육을 통해 비장애인과 같은 다양한 직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차이와 현실 무시한 무리한 결정” 반발 거세져
안마사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정부와의 협의체 구성으로 진정 국면을 맞기도 했지만 시각 장애인 안마사의 자살로 시각 장애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대한안마사협회는 6월 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시각 장애인이 헌재의 결정에 울분을 참지 못해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헌재의 결정이 시각 장애인 손모(42)씨의 자살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협회측은 “시각 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생계 지원 차원에서 안마업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보장돼 왔는데, 직업선택의 자유가 시각 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우위에 있느냐”며 시각 장애인의 독점적 안마업에 대한 위헌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시각 장애인들의 산발적 시위도 가열됐다. 국립 서울맹학교 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 100여명은 이날 오전 청와대 인근 서울 신교동에 모여 장애인 직업교육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국 시각장애학교장협의회도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헌재의 결정은 안마를 직업교육으로 받고 있는 시각 장애인 학생들의 꿈을 꺾는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마포대교 교각 이동통로에서 벌이고 있는 고공 시위도 8일째 계속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도 다급해졌다. 지난 1일 시각 장애인 비상대책위원회측과 만나 의료법 개정 실무협의회를 구성키로 합의했던 보건복지부는 협의체 발족을 서두르기로 했다. 시각 장애인과 정부, 법조계, 국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이르면 이번 주 내로 결정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정부는 대체입법 과정을 시각장애인협회나 안마사협회 등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생존권 위협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03년 비장애인 송모(65)씨를 비롯한 4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대한안마사협회에 안마사 자격인정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서 규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마사 자격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이러한 대한안마사협회의 결정에 불복, 같은 해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부분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직업의 자유와 교육을 받을 권리, 평등권, 소비자 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서울특별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거듭된 기각과 항소 끝에 대법원까지 간 재판애서 승리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돌아갔으나 송모씨 등 4명은 다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이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송인준)는 지난 5월 25일 7:1로 시각장애인 안마사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에 대하여 ‘위헌’ 판결을 내렸다.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 제1항 제1호와 2호에 따르면 “앞을 보지 못하는”이라는 이른바 '비맹제외기준(非盲除外基準)'을 설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2003년 6월 “정부 정책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 할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동일한 사안에 대한 헌재의 달라진 입장과 관련,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법리적 해석에만 의존한 판단, 최소한의 인권과 공동체 사회의 기본적 사회원리를 무시하여 민주주의역사발전에 역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이상적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올 9월 유엔 총회에 상정될 예정인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의장안에도 고용상에서 장애인을 위한 특별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일본, 영국, 미국 등 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안마사 비율 할당제, 공공기관 내 판매시설 운영권 우선 부여, 다양한 직업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에 대한 뾰족한 직업 교육이나 대체 방안이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한국의 시각장애인 교육은 외국과 같은 통합교육이 아닌 특수교육에 한정되어 있다.
장애를 가진 학생은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일반 학생과 따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선택과 가능성의 폭이 제한적이다. 더욱이 안마 기술과 같은 직업 교육 위주이므로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울에 위치한 한 맹아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지극히 좁다, 맹학교 전체 수업 중 절반 이상을 안마 수업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대안없이 안마사 자격을 넓히는 것은 희망을 짓밟는 행위"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여기에 다른 장애와는 달리 시각장애를 안고 있을 경우, 장애인 고용센터를 통하더라도 다른 취업의 방도가 여의치 않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달리 안마사 외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사실상 원천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실제 18만여 명에 이르는 시각장애인 중 80%의 장애인이 안마업에 진출하고 있으며 현직 종사자의 수도 5000여 명을 웃돈다.
2006년 5월을 기준으로 한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5581명으로, 안마시술소(982개), 안마원(91개)을 합해 총 1073개의 안마관련 업소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역차별이 아닌 장애의 차이를 고려한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각장애인의 입자에서 본다면 안마사의 독점적 권리 인정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자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의 희망인 셈.
“외국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태국 등이 차별화된 기술을 앞세워 국내 들어올 예정”이라며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에 국한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현행 의료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나타낸다.
시각장애인측은 안마는 촉각에 의지한 정교한 의료행위이므로, 제한된 활동영역 안에서 발달된 촉각하는 안마사야말로 오히려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성매매와 관련된 무허가 안마시설이 난립한 현실을 고려할 때 안마사 자격 기준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어선 역할을 해왔음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 헌재의 결정은 오히려 향락 퇴폐 산업이 활성화로 악용될 공산이 다분하다.
시각장애인의 반발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헌재가 성급한 일반화 오류를 했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일반적 의미의 직업을 넘어서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능한 차이를 줄여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행복추구권'을 동등하게 누리게 하자는 복지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헌재는 비교가 불가능한 두 대상을 동일시, 일반인과 장애인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의 이름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눈치보기 급급한 보건복지부
여기에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6월 1일 권인희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의료법 개정 실무협의회’를 구성·운영키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민·관협의회를 구성한다는 원칙적 합의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대체 입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 확인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본다면 예산확보와 다른 장애인과의 형평성 등으로 섣불리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점은 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반하지 않는 대체 입법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입장이 강하다.
한편 대한안마사협회를 비롯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관련 단체들은 5월 31일 ‘장애인생존권확보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희)’를 공식출범하고 본격적인 집단 움직임에 나섰다.
이들은 광화문과 마포대교 등지에서 벌이는 게릴라성 시위와 더불어 6월 5일부터 시작한 대국민 서명운동과 대규모 집회 등으로 적극적인 대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은 시각장애인들의 절박함과 무관하게 월드컵에 쏠려 있어 이들의 투쟁은 더욱 외롭다. 며칠동안 계속된 마포대교 고공시위에도 이를 지나치는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에 시각장애인 단체들은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면서 결연한 '저항'태세다.
지난 달 29일부터 마포대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한마사지협회 경기지부는 “확실한 정부의 후속대책이 나올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태 장기화가 우려된다.
의협도 “안마사 자격 위헌결정 철회”
시각장애인들의 잇단 한강 투신과 자살 등을 불러일으킨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에 대해 의사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
대한의사협회는 6월 8일 논평을 내어 “최근 헌재의 결정과 관련해 직업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기본 논리에는 공감한다”며 “그러나 이 결정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고, 동시에 안마를 빙자한 무분별한 사이비 의료행위가 범람할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의협은 또 “현행 의료법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피부미용실과 스포츠마사지 등에서 불법 의료행위는 물론 윤리를 무너뜨리는 퇴폐행위까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헌재 위헌 결정 철회 또는 즉각적인 대체 입법 제정 등을 요구했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안마사협회와 긴밀한 협의체를 구성해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을 한 이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네티즌들의 항의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5월 25일 결정 이후 헌재 홈페이지에는 결정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이 매일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 안마사 손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6월 4일에는 “결국 시각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등 항의글이 100건 가량이나 올라왔다.
‘슬픔안마사’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여러분들이 이제 시각 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래도 직업의 선택이 우선이라고 하시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아이디 ‘소망지기’는 “법은 국민을 보호하고 특히 사회의 약자와 장애인을 위해 존재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네티즌은 “시각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마땅한 대체입법도 없이 무작정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너무 심하다. 조속히 대체입법을 약속해 그들과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뿐 인데 항의가 이어지고 있어 당혹스럽다”며 “헌재가 대체입법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마땅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캐나다 등 특정 직업 독점 허용”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직업을 가지게 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한국보다 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 여지가 많은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 선진국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하는 직업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각장애인 교포인 미국 코넬한인교회 전희원 담임목사는 6월 1일 한 방송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캐나다는 공공건물과 고속도로 자동판매기는 오직 시각장애인만 운영할 수 있고 스페인에서도 시각장애인만 복권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 목사는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모두 한국과 달리 시각장애인에게 보통 사람과 함께 하는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맹인 특수 교육을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 나라에서는 일반 교육을 처음부터 시키기 때문에 변호사, 프로그래밍, 일반 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등 시각장애인이 하고 있는 일들이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이에 덧붙여 시각장애인들에게만 특정 직업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시각장애인 통합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특수 안마 직업 교육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 등 외국 선진국과 비교할 때 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 여지가 아예 없는 실정"이라며 "그나마 한국에 하나 있던 시각장애인 독점 직업을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없애버린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는 "한국의 안마사 전체 직업 수에 비해 시각장애 안마사 수가 크게 모자라 일반인의 안마사 직업 진출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걸로 안다"며 "그렇다면 대체 입법을 통해 기존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직업을 잃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미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과 같이 다른 독점 직업을 시각장애인에게 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장기적으로 한국 시각장애인들이 통합 교육을 통해 비장애인과 같은 다양한 직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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