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으로는 어려운 복잡한 장기기증
시스템 문제로 국내 부족, 중국원정 피해 급증
최근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의 수도 급증했다.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에 따르면 2006년 4월 현재 ‘장기기증을 희망한다’고 등록한 사람 수는 20만6,883명(누적 집계). 2000년만 해도 한 해 1,200명 수준이던 장기기증 희망자 수가 2003년 9,874명, 2004년 3만5,323명, 2005년 7만693명으로 늘어났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창립 15주년을 맞은 지난 3월 한 달간 펼친 ‘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의 달’ 행사에선 1만4,000여명이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이 늘어난 데 비해 실제 장기이식 현황을 보면 형편없다. KONOS에 따르면 살아있는 사람이 신장·간장·골수를 이식한 건수는 지난해 모두 1,432건에 불과하다. 사후(死後)에 각막을 이식한 사람도 지난해 131명뿐이다. ‘건강한 장기’라서 이식용 장기로 쓰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뇌사(腦死) 기증자의 장기이식 건수도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91명의 뇌사자를 통해 400건의 장기이식이 진행됐다.
2006년 4월 현재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1만5,647명이나 된다. 장기별로 이식 대기자를 보면 신장 6,111명, 간장 2,067명, 골수 3,389명, 각막 3,694명 등이다.
장기를 이식 받기 위해 중국 등지로 해외원정을 떠나는 사람만 연간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터넷에는 ‘신장 이식 2만5,000달러, 간 이식 5만 달러, 심장 이식 5만 달러’와 같은 광고까지 심심찮게 오르고 있다.
뇌사자 기다리다가…
장기의 수급 불균형은 왜 일어날까? 아무리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이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기증이 이뤄지는 것은 ‘사후’다. 이들이 살아있는 한 장기기증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법률적으로 이들이 사망한 뒤에도 가족이 반대하면 장기기증은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장기기증의 성격상 대기자에게 필요한 장기가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장기기증은 살아있는 사람이 신장이나 간장을 기증하는 ‘생체 기증’ ‘사후 기증’ 그리고 ‘뇌사자의 장기기증’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생체 기증은 가족간이 아니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사후 기증은 각막이나 뼈·피부 등의 조직 기증에 한정된다. 그러니까 장기기증 캠페인 광고에 나오는 ‘한 사람이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립니다’와 같은 사연은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뜻하는 것이다. 뇌사는 심장의 기능은 살아있지만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돼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한다.
원래 뇌사자는 사망자의 1% 정도로, 발생 건수가 많지 않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뇌사자의 장기기증 건수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24만5,771명이 사망한 2004년의 경우, 뇌사자는 전체의 1%인 2,400여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같은 해에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86명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4년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뇌사 장기기증자는 스페인이 33.7명, 미국이 21.7명, 프랑스가 20.0명인데 반해 한국은 1.8명에 불과하다.
장기이식 절차 까다롭고 복잡해
장기기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기증자의 발굴이 최선의 대책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장기기증자 발굴 자체보다 장기이식이 이뤄지는 과정에 있어서의 제도적 불합리성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장기기증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장기기증을 담당하는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장기기증이 이뤄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가족간에 장기를 주고받는 ‘교환 기증’은 이식 적합성 판정만 받으면 곧바로 수술로 이어진다. 가족간에 장기를 주고받을 수 없을 경우, 두 가족이 장기를 맞교환 하거나 대여섯 가족이 서로 장기를 기증하고 기증받는 ‘릴레이 교환’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혈연관계가 아닌 남남끼리 장기를 주고받을 때다. 이 경우 ‘매매’가 아니란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기증 가능성을 판단하는 심사 과정이 까다로워진다. 2000년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선 장기의 매매행위를 금지해놓았다. 때문에 장기등록기관에선 ‘○○○에게 장기를 기증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매매의 성격을 혹시 띠고 있지는 않은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 재산을 다 내놓더라도 장기를 구하겠다”는 사람과 “돈 한푼이 아쉬워 장기기증 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도 이들 간의 거래는 불법인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 제3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장기이식 대기자들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평균 이식 대기 시간이 신장은 542일, 간장 332일, 폐 605일, 췌장 651일, 심장 470일이다.
사실 장기기증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대목이다. 장기이식자 선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현재 장기기증 희망자와 이식 대기자의 등록 업무를 총괄할 뿐 아니라 장기이식 승인, 뇌사 기증자 발생시 수혜자 선정 등은 국립의료원의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이 맡고 있다. 2000년 2월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뇌사기증자의 장기를 국가가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각막 기증이 중심이 되는 ‘사후 기증’이나 기증자가 수혜자를 지정해 이뤄지는 ‘생체 기증’의 경우, 해당 병원이 중심이 돼 이뤄지고 KONOS는 승인 절차만 맡을 뿐이다. 하지만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이식자 선정 등 모두 KONOS 중심으로 이뤄진다.
가족의 동의 아래 장기기증 의사가 있는 뇌사자가 발생하면 우선 전국 18곳의 뇌사판정 의료기관으로 보내진다. 이들 의료기관은 뇌사판정위원회를 소집해 뇌사를 판정한 뒤 결과를 KONOS에 통보한다. 그러면 KONOS에 있는 K-NET 컴퓨터망은 장기기증자에 맞는 장기수혜자를 고르는 매칭에 들어간다. 이때 기증자와의 조직 적합성 등 갖가지 수치가 합산된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이식대상자로 선정된다.
KONOS관계자는 “뇌사자의 배우자나 직계존속에게 먼저 장기를 이식하는 걸 원칙으로 하는 ‘일반 기준’과, 혈액형과 몸무게 등을 통한 기증 적합도 등 ‘장기별 기준’이란 두 가지 항목이 합쳐져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이식 대상자가 선정된다”고 했다. 응급도, 등록 대기시간, 나이, 몸무게 등 다양한 정보들이 모여 수치로 환산돼 이식 받는 사람이 결정된다.
이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가장 공정해야 할 뇌사자의 장기기증 부분이 보건복지부의 심사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그렇게 공정성을 자신한다면 외국처럼 정보를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국가가 관리하기로 한 것은 분배의 공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장기기증 승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2000년 들어 뇌사자 장기기증을 KONOS가 관리하면서 장기기증을 한 뇌사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99년 162명이던 것이 2000년 64명, 2002년 36명으로 급감했다.
국회에서도 “뇌사 판정에서부터 이식까지의 절차를 단순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지난해 2월 대표 발의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뇌사판정 위원회 절차를 완화하고 일련의 업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뇌사판정 대상자 관리전문기관’을 지역별로 지정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뇌사 판정을 신청하는 자격에 있어서 뇌사자의 가족뿐 아니라 가족이 없는 경우 법정대리인에게 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법은 아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다.
현실적 시스템이 급선무
정부도 장기기증에 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잠재뇌사자를 발굴해서 장기기증을 설득하고 뇌사자를 관리하며 장기 적출 코디네이션을 담당하는 ‘장기 구득기관(OPO·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혈액 장기팀 관계자는 “현행 제도는 뇌사자를 적극 발굴해 기증을 설득하는 능동적 체계가 아니라 기증 의사를 밝히는 뇌사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체계”라며 “의료기관의 잠재 뇌사자 신고제도를 도입하고 잠재 뇌사자를 발굴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곧 추진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해결책들이 나열됐을 뿐 아직 결실을 맺은 것은 없다. 생명과 직결된 법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다가 공포되더라도 시행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이식 관련 전문가들은 “무조건 장기기증을 하라고 홍보만 할 때가 아니다”며 “현실적으로 장기기증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한다. 외국처럼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희망자의 의사를 표시해 놓는다거나 건강한 사람이 장기기증을 할 경우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사후 관리 프로그램 도입 등이 현실적인 대책으로 제기된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관계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선 뇌사자가 ‘기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장기기증 의사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미국에선 뇌사판정을 받은 환자의 가족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묻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며 “장기기증이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환자들 ‘중국행’ 피해속출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중국 원정 장기이식을 소개받게 된 피해자 최모 씨는 지난해 7월 중국 모 병원에서 간이식을 받았다.
카페회원에 따르면, 중국 모 지역의 병원에서는 수술 당시 너무 큰 간을 이식해 간동맥과 담도가 눌려 혈액순환과 담즘이 흐르지 못해 염증이 생겼으며, 점차 간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2차 간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2006년 1월 끝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장기기증 문화형성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식환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의 이식을 제외하고는 이식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강한 사람의 장기를 사고파는 이른바 ‘1:1 조건장기매매’ 풍조를 형성하고, 국제적인 불법장기 매매로까지 이어져 현재 사형수 장기이식 등 검증되지 않는 음성적인 경로로의 장기매매가 범람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세계5대 통신사 중 하나인 프랑스 ‘AFP통신’은 “중국 쑤자툰의 한 수용소에서 약 6,000여 명 중 약 75%에 해당하는 사람이 사망, 소각됐으며, 그들의 장기는 병원 등을 통해 판매되었다”고 밝혔으며, 지난 4월 미국 ‘워싱턴타임즈’는 생체장기이식을 폭로한 중국인 저널리스트 진중(가명)과의 인터뷰 내용을 연이어 보도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중국과 해외를 오가며 언론에 종사했던 진중(가명)은 이날 전화인터뷰에서 “2∼3년간 취재한 결과 중국 곳곳의 비밀 지하수용소 및 감옥 등에는 외과의사가 상주하고 있어 수감자를 대상으로 하여 장기를 적출하고 매매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의사들은 신장, 간, 심장, 각막 등을 생체 적출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인들이 장기이식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많이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렇듯 불법으로 장기를 척출하는 중국에 가서 장기이식을 받는 것은 이러한 지극히 비윤리적인 행위를 부추기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이식을 부디 삼가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재완 의원 관계자는 “해외언론보도와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면 진중이 주장하는 생체장기적출과 장기매매는 사실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특히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N사, D사의 중국장기매매 알선 카페에 수많은 회원들이 등록되어 있는 것을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 관계자는 “실제로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D사와 N사에서는 총 14개의 카페가 적발된 바 있고, 그 회원수는 1,778명에 달한다”며 “수술비, 입원비, 간호사, 통역인, 간병인, 보호자숙소, 인터넷, 한국방송 TV 등 다양한 제품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D포털사이트의 모 카페에서는 중국 지방병원의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고 실제 대기중인 간이식 대기자가 16명, 신장이식 대기자가 260명으로 총 대기인 숫자가 총276명에 이른다고 게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관계자는 “현재 100여명의 환자들이 알 수 없는 장기를 이식 받고 병원을 찾아와 검진을 받고 있다”며 “대부분이 중국을 통한 장기이식자들로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환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중국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체불명의 장기들이 확인할 수 없는 경로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불법장기매매를 조장 및 알선하는 인터넷 카페 등을 절제하고, 국가차원에서도 객관적이고 현명한 시각으로 장기이식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 문제로 국내 부족, 중국원정 피해 급증
최근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의 수도 급증했다.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에 따르면 2006년 4월 현재 ‘장기기증을 희망한다’고 등록한 사람 수는 20만6,883명(누적 집계). 2000년만 해도 한 해 1,200명 수준이던 장기기증 희망자 수가 2003년 9,874명, 2004년 3만5,323명, 2005년 7만693명으로 늘어났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창립 15주년을 맞은 지난 3월 한 달간 펼친 ‘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의 달’ 행사에선 1만4,000여명이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이 늘어난 데 비해 실제 장기이식 현황을 보면 형편없다. KONOS에 따르면 살아있는 사람이 신장·간장·골수를 이식한 건수는 지난해 모두 1,432건에 불과하다. 사후(死後)에 각막을 이식한 사람도 지난해 131명뿐이다. ‘건강한 장기’라서 이식용 장기로 쓰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뇌사(腦死) 기증자의 장기이식 건수도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91명의 뇌사자를 통해 400건의 장기이식이 진행됐다.
2006년 4월 현재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1만5,647명이나 된다. 장기별로 이식 대기자를 보면 신장 6,111명, 간장 2,067명, 골수 3,389명, 각막 3,694명 등이다.
장기를 이식 받기 위해 중국 등지로 해외원정을 떠나는 사람만 연간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터넷에는 ‘신장 이식 2만5,000달러, 간 이식 5만 달러, 심장 이식 5만 달러’와 같은 광고까지 심심찮게 오르고 있다.
뇌사자 기다리다가…
장기의 수급 불균형은 왜 일어날까? 아무리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이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기증이 이뤄지는 것은 ‘사후’다. 이들이 살아있는 한 장기기증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법률적으로 이들이 사망한 뒤에도 가족이 반대하면 장기기증은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장기기증의 성격상 대기자에게 필요한 장기가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장기기증은 살아있는 사람이 신장이나 간장을 기증하는 ‘생체 기증’ ‘사후 기증’ 그리고 ‘뇌사자의 장기기증’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생체 기증은 가족간이 아니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사후 기증은 각막이나 뼈·피부 등의 조직 기증에 한정된다. 그러니까 장기기증 캠페인 광고에 나오는 ‘한 사람이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립니다’와 같은 사연은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뜻하는 것이다. 뇌사는 심장의 기능은 살아있지만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돼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한다.
원래 뇌사자는 사망자의 1% 정도로, 발생 건수가 많지 않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뇌사자의 장기기증 건수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24만5,771명이 사망한 2004년의 경우, 뇌사자는 전체의 1%인 2,400여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같은 해에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86명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4년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뇌사 장기기증자는 스페인이 33.7명, 미국이 21.7명, 프랑스가 20.0명인데 반해 한국은 1.8명에 불과하다.
장기이식 절차 까다롭고 복잡해
장기기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기증자의 발굴이 최선의 대책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장기기증자 발굴 자체보다 장기이식이 이뤄지는 과정에 있어서의 제도적 불합리성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장기기증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장기기증을 담당하는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장기기증이 이뤄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가족간에 장기를 주고받는 ‘교환 기증’은 이식 적합성 판정만 받으면 곧바로 수술로 이어진다. 가족간에 장기를 주고받을 수 없을 경우, 두 가족이 장기를 맞교환 하거나 대여섯 가족이 서로 장기를 기증하고 기증받는 ‘릴레이 교환’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혈연관계가 아닌 남남끼리 장기를 주고받을 때다. 이 경우 ‘매매’가 아니란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기증 가능성을 판단하는 심사 과정이 까다로워진다. 2000년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선 장기의 매매행위를 금지해놓았다. 때문에 장기등록기관에선 ‘○○○에게 장기를 기증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매매의 성격을 혹시 띠고 있지는 않은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 재산을 다 내놓더라도 장기를 구하겠다”는 사람과 “돈 한푼이 아쉬워 장기기증 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도 이들 간의 거래는 불법인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 제3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장기이식 대기자들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평균 이식 대기 시간이 신장은 542일, 간장 332일, 폐 605일, 췌장 651일, 심장 470일이다.
사실 장기기증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대목이다. 장기이식자 선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현재 장기기증 희망자와 이식 대기자의 등록 업무를 총괄할 뿐 아니라 장기이식 승인, 뇌사 기증자 발생시 수혜자 선정 등은 국립의료원의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이 맡고 있다. 2000년 2월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뇌사기증자의 장기를 국가가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각막 기증이 중심이 되는 ‘사후 기증’이나 기증자가 수혜자를 지정해 이뤄지는 ‘생체 기증’의 경우, 해당 병원이 중심이 돼 이뤄지고 KONOS는 승인 절차만 맡을 뿐이다. 하지만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이식자 선정 등 모두 KONOS 중심으로 이뤄진다.
가족의 동의 아래 장기기증 의사가 있는 뇌사자가 발생하면 우선 전국 18곳의 뇌사판정 의료기관으로 보내진다. 이들 의료기관은 뇌사판정위원회를 소집해 뇌사를 판정한 뒤 결과를 KONOS에 통보한다. 그러면 KONOS에 있는 K-NET 컴퓨터망은 장기기증자에 맞는 장기수혜자를 고르는 매칭에 들어간다. 이때 기증자와의 조직 적합성 등 갖가지 수치가 합산된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이식대상자로 선정된다.
KONOS관계자는 “뇌사자의 배우자나 직계존속에게 먼저 장기를 이식하는 걸 원칙으로 하는 ‘일반 기준’과, 혈액형과 몸무게 등을 통한 기증 적합도 등 ‘장기별 기준’이란 두 가지 항목이 합쳐져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이식 대상자가 선정된다”고 했다. 응급도, 등록 대기시간, 나이, 몸무게 등 다양한 정보들이 모여 수치로 환산돼 이식 받는 사람이 결정된다.
이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가장 공정해야 할 뇌사자의 장기기증 부분이 보건복지부의 심사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그렇게 공정성을 자신한다면 외국처럼 정보를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국가가 관리하기로 한 것은 분배의 공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장기기증 승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2000년 들어 뇌사자 장기기증을 KONOS가 관리하면서 장기기증을 한 뇌사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99년 162명이던 것이 2000년 64명, 2002년 36명으로 급감했다.
국회에서도 “뇌사 판정에서부터 이식까지의 절차를 단순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지난해 2월 대표 발의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뇌사판정 위원회 절차를 완화하고 일련의 업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뇌사판정 대상자 관리전문기관’을 지역별로 지정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뇌사 판정을 신청하는 자격에 있어서 뇌사자의 가족뿐 아니라 가족이 없는 경우 법정대리인에게 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법은 아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다.
현실적 시스템이 급선무
정부도 장기기증에 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잠재뇌사자를 발굴해서 장기기증을 설득하고 뇌사자를 관리하며 장기 적출 코디네이션을 담당하는 ‘장기 구득기관(OPO·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혈액 장기팀 관계자는 “현행 제도는 뇌사자를 적극 발굴해 기증을 설득하는 능동적 체계가 아니라 기증 의사를 밝히는 뇌사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체계”라며 “의료기관의 잠재 뇌사자 신고제도를 도입하고 잠재 뇌사자를 발굴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곧 추진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해결책들이 나열됐을 뿐 아직 결실을 맺은 것은 없다. 생명과 직결된 법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다가 공포되더라도 시행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이식 관련 전문가들은 “무조건 장기기증을 하라고 홍보만 할 때가 아니다”며 “현실적으로 장기기증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한다. 외국처럼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희망자의 의사를 표시해 놓는다거나 건강한 사람이 장기기증을 할 경우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사후 관리 프로그램 도입 등이 현실적인 대책으로 제기된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관계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선 뇌사자가 ‘기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장기기증 의사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미국에선 뇌사판정을 받은 환자의 가족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묻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며 “장기기증이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환자들 ‘중국행’ 피해속출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중국 원정 장기이식을 소개받게 된 피해자 최모 씨는 지난해 7월 중국 모 병원에서 간이식을 받았다.
카페회원에 따르면, 중국 모 지역의 병원에서는 수술 당시 너무 큰 간을 이식해 간동맥과 담도가 눌려 혈액순환과 담즘이 흐르지 못해 염증이 생겼으며, 점차 간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2차 간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2006년 1월 끝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장기기증 문화형성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식환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의 이식을 제외하고는 이식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강한 사람의 장기를 사고파는 이른바 ‘1:1 조건장기매매’ 풍조를 형성하고, 국제적인 불법장기 매매로까지 이어져 현재 사형수 장기이식 등 검증되지 않는 음성적인 경로로의 장기매매가 범람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세계5대 통신사 중 하나인 프랑스 ‘AFP통신’은 “중국 쑤자툰의 한 수용소에서 약 6,000여 명 중 약 75%에 해당하는 사람이 사망, 소각됐으며, 그들의 장기는 병원 등을 통해 판매되었다”고 밝혔으며, 지난 4월 미국 ‘워싱턴타임즈’는 생체장기이식을 폭로한 중국인 저널리스트 진중(가명)과의 인터뷰 내용을 연이어 보도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중국과 해외를 오가며 언론에 종사했던 진중(가명)은 이날 전화인터뷰에서 “2∼3년간 취재한 결과 중국 곳곳의 비밀 지하수용소 및 감옥 등에는 외과의사가 상주하고 있어 수감자를 대상으로 하여 장기를 적출하고 매매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의사들은 신장, 간, 심장, 각막 등을 생체 적출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인들이 장기이식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많이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렇듯 불법으로 장기를 척출하는 중국에 가서 장기이식을 받는 것은 이러한 지극히 비윤리적인 행위를 부추기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이식을 부디 삼가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재완 의원 관계자는 “해외언론보도와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면 진중이 주장하는 생체장기적출과 장기매매는 사실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특히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N사, D사의 중국장기매매 알선 카페에 수많은 회원들이 등록되어 있는 것을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 관계자는 “실제로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D사와 N사에서는 총 14개의 카페가 적발된 바 있고, 그 회원수는 1,778명에 달한다”며 “수술비, 입원비, 간호사, 통역인, 간병인, 보호자숙소, 인터넷, 한국방송 TV 등 다양한 제품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D포털사이트의 모 카페에서는 중국 지방병원의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고 실제 대기중인 간이식 대기자가 16명, 신장이식 대기자가 260명으로 총 대기인 숫자가 총276명에 이른다고 게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관계자는 “현재 100여명의 환자들이 알 수 없는 장기를 이식 받고 병원을 찾아와 검진을 받고 있다”며 “대부분이 중국을 통한 장기이식자들로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환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중국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체불명의 장기들이 확인할 수 없는 경로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불법장기매매를 조장 및 알선하는 인터넷 카페 등을 절제하고, 국가차원에서도 객관적이고 현명한 시각으로 장기이식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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