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 자부심으로 여전히 왕성한 영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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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 자부심으로 여전히 왕성한 영업력
  • 박상목 부장
  • 승인 2013.11.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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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까지 일하며 고객 상담, 후배 양성 하고파

1993년, 한 가장은 10년을 기다려 미국 이주 허가서를 받았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와 동생들이 살고 있는 시애틀로 이민을 가려던 부푼 꿈도 잠시, 예기치 못한 폭풍이 그의 이민길을 가로 막았다. 금융실명제 여파로 인한 부도와 빚더미를 떠안게 된 그는 ‘이것은 악몽이겠지. 자고 나면 사라지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일 뿐이었다.

삼성화재 성민대리점 이인제 대표가 마흔 셋에 부딪힌 시련은 생각보다 컸다. 그에게 돈을 줘야 할 사람들은 온데 간 데 없고 돈을 받을 사람들만 넘쳐났다. 술 없이는 하루도 잠들 수 없는 날들이었고, 잠든다 해도 악몽을 꾸기 일쑤였다. 괴로워하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 내팽개치고 계획대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라고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힘이 들지언정 비겁하고 싶지는 않았다.

▲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到)수 없다’는 말처럼 이인제 대표는 진정으로 즐기면서 일에 미쳐 있다. 그 결과 2002년 8회 연도상부터 2005년 11회 연도상까지 4회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아내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살아도, 죽어도 같이 있겠다’고 하더라. 괴로운 마음에 수면제를 사서 모으다가 아내에게 들켜 둘이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살아보자’며 울기도 했다.”
창문도 없는 집에 살면서 닥친 상황을 해결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녀 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나중에는 이자를 얻어 이자를 갚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 그에게 시청 앞으로 나와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 반 기대감 반으로 그가 도착한 곳은 삼성화재 보험대리점 사무실이었다.
“예전에 같은 동네 살던 사람이 대형 대리점 대표로 있었다. 나에게 보험영업을 권했지만 평소 보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망설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교육을 받은 후 시험에 응시하라고 해 얼떨결에 대리점까지 개설하게 됐다.” 그렇게 그는 1995년 11월 큰 아들의 이름을 딴 ‘성민대리점’을 개설하며 보험영업을 시작했다.

“내 몸을 자본금 삼아 무조건 뛰었다”
보험영업을 시작한 그는 당장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차비도 없이 걸어 다녔다. 끼니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배고프면 물을 마시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보험가입 청약서, 팸플릿, 영수증 등이 담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뛰어다녔다. 그렇게 번 돈을 매달 일정 금액씩 채권자들에게 송금하니 더 이상 빚 독촉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고 그를 찾아와 괴롭히지도 않았다. 가진 것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오직 성실과 열정으로 A4용지 가득하던 채권자들의 송금액 명단을 차츰 줄이면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본금, 월세 부담 없이 오직 청약서와 영수증, 고객만 있으면 됐다. 내 몸을 자본금 삼아 뛰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신없이 뛰는 일뿐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객을 찾아다니며 화재보험과 운전자보험, 상해보험을 권유하며 하루에 1건, 한 달에 30건을 목표로 하던 그는 서서히 실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6년 10월, 전국 우수대리점 20여 명 안에 들어 일본동경해상과 일본생명보험회사에 10박11일 간 연수교육을 받고 오기도 했다.
그는 일본 연수교육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오늘날까지 영업을 하면서 지켜오고 있는 마음가짐이 바로 그때 세워졌다. ‘고객의 마음을 읽어라’, ‘고객은 보험회사를 선택하기 이전에 어떤 대리점인가를 먼저 선택할 만큼 설계사나 대리점의 신뢰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들은 이 말은 항상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영업의 제1원칙이 되고 있다. 고객들과 만나 상담을 하거나 컨설팅을 할 때 자신의 이익보다는 고객의 입장으로 돌아가 내 자신과 내 가족이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가입설계를 하는 것. 그러다보니 고객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됐고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소개가 들어오게 됐다. 그 결과, 2002년 8회 연도상부터 2005년 11회 연도상까지 4회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到)수 없다는 말처럼 그는 진정으로 즐기면서 일에 미쳐 있다.

보험가족, 가족과 지인들에게 모범이 되다

▲ 아버지를 보고 성장한 이인제 대표의 두 아들은 현재 삼성화재 보상업무 파트, 현대해상 자동차보상 업무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아내 역시 뉴성민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가족은 보험가족이다. 큰 아들은 삼성화재 보상업무 파트에서 근무하고 둘째 아들은 현대해상에서 자동차보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에게 일 중독자 아니냐고 핀잔을 주던 아내는 뉴성민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의 조카는 삼성화재 전지현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고,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한 고객, 친구, 지인들이 20여 명이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온 가족이 보험업계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이 대표는 “아이들이 대학시절에 내 사무실에 나와서 함께 일하면서 보험의 필요성과 보험영업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직업 선택할 때 영향을 끼친 것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런 가족들에게 성실한 모습으로 모범이 되고 싶어 그는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무실에 그의 가훈이기도 한 ‘위대한 꿈을 갖고 성실한 삶으로 미래를 개척하자!’라는 문구를 걸어놓고 말이다.
이 대표는 개인 및 단체 보험컨설팅은 물론 세무 상담, 사고 상담, 안전교육 등 고객을 위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삼성화재뿐 아니라 삼성생명 보험 등 보험전반에 걸쳐 모든 상품을 판매하면서 개개인에 맞는 상품을 컨설팅해주고 보험문제를 상담하며 고객과 신뢰를 쌓아나가고 있다. 이렇게 그와 인연을 맺고 있는 고객이 1,000여 명에 이른다. 그를 매개로 삼성화재 설계사를 시작하고 대리점을 개설한 이들도 적잖아서 그는 매사에 책임감과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살고 있다.
경력만큼이나 많은 보상사례가 있었지만 그는 올 초 만난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3월에 인연을 맺은 인천의 한 고객인데, 보험가입 후 한 달 만에 계단에서 굴러 추락해 목 부상으로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전신마비의 장애로 현재 치료 중인데, 만약 그때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사업 부진과 수입이 없는 문제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후유장애진단금 3억 원이 확보됐고, 치료비도 계속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요즘도 그는 수시로 고객을 방문해 보상을 돕고 쾌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예순을 넘긴 그는 앞으로 한 20년 쯤 이 일을 더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객들을 위해 일하다보니 이제 이 일이 천직 같다”는 이 대표는 “이 일이 무척 매력적이고 보람도 크다. 성취감 또한 나를 행복하게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 이후까지도 계속할 생각”이라며 슬며시 앞으로의 목표도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전문 보험인 양성’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가도 이내 실패하는 사람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젊은이들이 열정과 목표를 갖고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지도해 전문 보험인으로 양성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매일 아침 그는 팀원들과 커피잔을 들고 건배한다. “위: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하: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여: 여기 모인 우리들,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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