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 군대 내 성범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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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 군대 내 성범죄 키운다
  • 이지원 기자
  • 승인 2013.11.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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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대위 자살로 내몰아, 성군기 해이 도를 넘다

군(軍)이 연이어 발생하는 성군기 문란 사건으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 달 강원도 모 부대 여군 대위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한 육군 오모 대위는 상관으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관계 요구를 받아왔고 이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여군 대위가 직속상관인 사령의 성관계 요구와 폭언 등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16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의 한 군부대에 근무하는 오모 대위가 부대 인근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승용차 안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자살한 오모 대위의 유서 내용을 공개해 파장이 일었다. 손 의원이 오모 대위의 유족으로부터 받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는 ‘10개월 동안 언어폭력, 성추행, 하룻밤만 자면 모두 해결된다며 매일 야간근무를 시키고 아침 출근하면 야간 근무한 내용은 보지도 않고 서류 던지고, 약혼자가 있는 여장교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유서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유서 내용은 오모 대위의 일기장에서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헌병대는 직속상관인 노모 소령을 지난달 17일 구속해 수사 중이다.

자살 대위 사건, 빙산의 일각
군대 내 성폭력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오모 대위 사건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 해 3월 특전사령관이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 해임된데 이어 같은 해 4월에는 현역 육군 A 준장이 부하 직원들과 함께 가진 회식 자리에서 새로 전입한 여군 B 하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술에 취한 A 준장은 B 하사를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려고 하는 등 성추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K 준장은 혐의를 부인했고 B 하사가 돌연 고소를 취하겠다고 밝혀 군의 개입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일었다. 앞서 2010년에는 육군 원사가 여군을 성폭행해 다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가 기각되기도 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육군 국방여성(여군 및 여성군무원)피해 사건 중 절반이 성범죄였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사건의 처리결과인데, 대부분 사건이 공소권 없음, 기소유예, 선고유예, 공소기각 등으로 처리됐으며 5년간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중 기소된 사건은 45건 중 14건에 그쳤다. 국방부는 2008년부터 여성고충상담관을 두는 내용 등을 포함한 ‘성군기 위반 사고 방지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으나 가해자가 실형을 선고 받는 사례가 드물고 64.9%에 달하는 사건이 불기소 처리되고 있으며 불기소율도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폐쇄적인 군대의 특성상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거나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우려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여군들 사이에서는 군 간부의 성범죄를 신고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어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성범죄에 대한 군의 미온적인 태도와 솜방망이 처벌이 범죄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대 내 성범죄는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와 함께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또한 군의 특성상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갈등이나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측면이 있어 여군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군이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사건 처리 과정에 있어서 민감한 감수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군 증원 앞서, 여군 인권 향상 대책마련 해야
지난해 11월 여군 8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여군 인권 조사 실태’에 따르면 응답자의 53.2%가 ‘성희롱을 당했거나 주위의 피해를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11%인 102명이 ‘최근 1년 이내에 상관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해 충격을 줬다.
현재 우리나라 여군은 장교 3,900여 명을 포함해 8,500여 명. 여군증원 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1만 1,500여 명으로 늘어 전 군의 5.6%에 달할 전망이다. 남성 중심적이고 상명하복을 원리로 하는 군 문화는 여군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군의 피해와 권익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지난 2월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이신애 중위가 뇌출혈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임신 7개월이었던 이 중위는 사망 한 달 전 5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다 혹한기 훈련을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했다. 사망 전 이 중위는 지휘관 교체 등으로 인한 대리업무, 훈련 준비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건강이 악화됐고, 몸이 붓는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났지만 근무지가 최전방인 탓에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데 왕복 3시간이 걸려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중위는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뱃속에 아이를 출산하고 숨을 거뒀다. 육군은 “직무 과중이 고혈압의 발생이나 증세 악화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으나 인권위가 국방부에 급격한 직무 과중으로 인해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이 발생하거나 악화됐다며 순직으로 처리할 것을 권고해 결국 이 중위의 죽음은 순직 처리 됐다.

계급 없이 무너진 성군기, 육사 생도 성폭행 사건 발생
군대 내 성범죄는 비단 장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5월과 8월에는 아직 임관도 하지 않은 육사 생도의 성군기 문란 사건이 불거졌다.
육군사관학교 축제 기간이었던 지난 5월22일 4학년 남자생도 A가 2학년 여자생도 B를 성폭행한 혐의로 육군 헌병대에 구속됐다. 이들은 생도의 날 축제를 맞아 지도교수의 주관 아래 육사 교정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A생도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B생도를 돌보다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문을 잠그고 성폭행했으며 이를 발견한 동료 여생도가 훈육관에 신고함으로써 외부에 알려졌다. 육사는 성폭행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이나 사건을 쉬쉬하다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샀다.
또한 8월에는 육군사관생도가 미성년과 성매매한 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육사 생도가 성매매 혐의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 육사 4학년인 C생도는 지난 7월13일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중학교 3학년 미성년 여성과 성매매를 하고 여성의 휴대전화를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 여성은 C생도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C생도를 붙잡아 군 수사기관에 넘겼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 봉사활동을 나간 육사 3학년 생도 9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해 주점과 마사지 업소를 출입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생도들의 성군기 위반이 도를 넘어서자 육사는 지난 8월26일 ‘3금제도’를 골자로 한 기강쇄신 방안을 발표했다. 쇄신안에 따르면 사관생도의 품위 유지 및 자긍심 고취를 위해 금혼, 금연, 금주 등 3금제도를 엄격히 적용하도록 했고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를 금지하고 같은 중대 생도 간의 이성교제, 생도와 교내 장병 및 군무원간의 이성교제를 금지시키는 등 이성교제의 범위를 새롭게 규정했다. 또 성희롱, 성폭행 등 법규를 위반할 시 의법 처리와 퇴교 등 중징계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쇄신안의 실효성 의문을 제기하며 미봉책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생도들에 대한 갑작스러운 제약과 억압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월5일 ‘여자 친구와의 성관계’를 이유로 육사로부터 퇴학 조치를 당한 D씨가 법원에 낸 퇴학처분취소 청구소송에 대해 법원이 퇴학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D씨가 퇴학 처분을 받은 것은 ‘3금제도’ 중 하나인 금혼 규정(혼인 및 성관계 금지)을 위반하고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에 법원은 “내밀한 성생활 영역을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3금제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육사의 ‘3금제도’에 대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고 일부 군 관계자는 “여생도도 임관 후 여전에 투입돼 병사들과 같이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향후 육사 생도의 근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민간인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은 물론 신상공개와 전자발찌 착용 등 엄격한 처벌 규정을 적용하는 반면, 군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군사법원에서 판단하고 부대장이 형량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는 관할권이 있어 처벌에 대해 관대한 경향이 있다. 수 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대한 여군들은 비롯해 국가 수호를 위해 힘써야할 군 장병들이 성범죄 등 군생활의 고충과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군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이에 군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해 정확한 실태 조사와 함께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엄격한 법 적용 및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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