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홀로 살던 6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이 됐는데 백골상태’였다는 내용이다. 수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죽음. 바로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화로 떠오른 노인들의 고독사 문제다. 독거노인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리와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고독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속시원한 해법은 없다.
지난 7월 말 충북 청주의 한 원룸에서 J씨(57)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건물 주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주인은 “세입자들이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해 가보니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J씨가 남긴 유서에는 ‘나는 가족이 없다. 내가 죽으면 화장시켜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시신 부패 상태로 미뤄 사망한 지 1주일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가 하면 올 초 서울 방화동 한 아파트에서는 36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며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던 K씨(71)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기적으로 찾던 병원 외에는 이웃과 왕래가 없던 K씨의 죽음은 병원에 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병원 수간호사의 신고로 알려졌다.
이처럼 특별한 연고 없이 혼자 지내다 목숨을 끊거나 병사 등으로 숨져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고독사(孤獨死)’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고독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지만 속 시원한 해법은 없다.
독거노인 30만 명 고독사 ‘빨간불’
고독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데이터는 없다. 고독사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통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노인복지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동안 600∼700명이 ‘홀로 죽음’을 맞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고독사의 특성상 홀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사례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1인 가구 증가, 공동체 해체, 만성질환의 증가,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 등이 꼽힌다.
최근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올해 453만 9,000가구로 전체의 25.3%에 달한다. 특히 고독사가 주로 발생하는 독거노인은 2013년 현재 125만 2,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노인 613만 8,000명의 20.4%에 해당된다. 독거노인 비율은 2000년 16%(54만 4,000명)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 20%(118만 7,000명)를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15년 137만 9,000명, 2025년 224만 8,000명, 2035년에는 34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세종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임효연 교수는 “최근엔 황혼이혼, 조기 사별 등으로 혼자가 되는 중장년 남성 1인 가구가 느는 추세”라며 “이들이 특히 고독사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독거노인은 자녀가 있지만 보호받지 못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실제 복지부 조사 결과 독거노인의 97%가 평균 3.86명의 생존 자녀를 두고 있지만 주 1회 이상 자녀와 접촉하는 비율은 34.9%에 불과했다.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쪽방촌은 보일러가 없고, 임대 아파트 독거노인들은 연료비가 아까워 전기장판만 깔고 사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2011년 노인실태 조사 결과 전체 독거노인의 42.4%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독거노인 가운데 특히 위기가구 9만 5,000명, 취약가구 20만 5,000명을 ‘요보호군’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30만 명은 사회적 보호가 없을 경우 고독사의 빨간불이 켜질 ‘고위험군’인 셈이다.
빈곤의 악순환이 더 큰 비극으로 이어져
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전체 가구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노인 인구 비율)은 2011년 기준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5%의 3배에 달했다. 특히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76.6%에 달했다. 66~75세 빈곤율은 43.3%를 기록했으며, 76세 이상 빈곤율은 49.8%, 노인 남성 빈곤율은 41.8%, 노인 여성 빈곤율은 47.2%를 보이는 등 모든 분석 기준에서 OECD 평균보다 높았다.
빈곤의 악순환은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진다. 고독사 못지않게 노인들의 삶을 앗아가는 것은 바로 자살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노인 자살은 지난 2001년 1,448명에서 2011년 4,406명으로 3배 늘어났다. 하루 평균 12명의 노인이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자살은 전체 자살의 28.1%를 차지한다. 특히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은 무엇보다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
높은 빈곤율은 같은 연령대의 노인은 물론 앞으로 은퇴를 하는 예비 고령층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일에 매달리게 만든다. 얼마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재취업’ 열풍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안전망인 복지체계가 여전히 부족해 노인들을 일터로 떠미는 것이다. 대규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이들은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형편이다. 이들의 은퇴와 이에 따른 문제들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자리 잡았다.
일하는 노인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OECD 국가의 중고령자 고용정책 동향’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고용률은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39.6%로 멕시코 41.3%, 아이슬란드 41.2%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중고령자로 분류되는 55~64세의 고용률도 76.5%로, OECD 국가 가운데 5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노년층에 접어드는 세대들의 은퇴 후 삶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MMI)와 서울대가 발표한 ‘예비노인 패널연구 1차년도 보고서’에서 노년을 눈앞에 둔 58세에서 64세의 예비 노인들은 총 345만 9,276명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국가보장과 기업보장, 개인보장 등 은퇴 후 생활을 위한 3가지 보장을 모두 준비한 인구는 2%에 불과했다. 반면 준비가 미흡한 98%는 340만 여명에 달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유대관계·이웃 공동체 회복이 우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몇 년 전부터 독거노인돌봄서비스와 응급안전돌보미, 독거노인사랑잇기 등 여러 사업을 통해 독거노인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예산 및 인력 등 한계로 눈의 띄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노인돌보미의 경우 1주일에 한 차례 방문, 두세 번 전화로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돌보미 한 명이 평균 25명을 돌봐야 하는 실정이다. 서비스 대상 노인도 전체 독거노인의 20%에 못 미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와 노인복지센터에서 차상위계층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등의 지원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다. 노인 공동생활을 유도하고 사회복지사까지 배치한 ‘그룹홈’ 제도도 운영한다.
우리나라도 일부 농촌 지자체에서 운영해 효과를 보고 있는 ‘독거노인공동생활가정(경로당 등에서 함께 생활)’을 타 지역으로 확산시킬 필요성이 있다. 도시의 경우 공간 마련의 어려움 등 때문에 공동생활보다는 홀몸노인 간 친목 도모를 위한 ‘자조모임(일명 두레)’을 활성화시켜 상호 지지체계를 형성해 나가는 게 효과적이란 지적이다. 임효연 교수는 “고독사 예방을 위해선 공감적 가족관계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실업, 질병, 간병 등으로 인한 가족 해체를 막을 사회 안전망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행하는 노인돌봄서비스의 경우 중복 지원이라는 이유로 간병 서비스 등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권중돈 교수는 “가사와 간병, 경제적 문제 등 독거노인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종합지원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