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의료계,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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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의료계,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 김득훈 부장
  • 승인 2013.11.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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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醫 ‘돈 되는 과목’ 편중 … 피부·미용·성형외과에 몰려

의료계에는 요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환자를 치료해 주는 게 의사 본연의 역할인데, 많은 의사들이 이른바 ‘돈 되는’ 진료에 몰리면서 환자 치료보다는 성형이나 미용 시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정작 병이 들거나 다친 환자들을 돌봐줄 의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 돈벌이에 물든 의료계의 실태를 취재했다.

서울 압구정, 신사동, 강남역 일대를 걷다보면 건물당 성형외과가 1~2개는 기본이고, 한 건물에 5개 이상 있는 곳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남구 보건소에 따르면 현재 강남구에 전문의 성형외과는 380개를 웃돌고, 성형을 진료과목으로 하는 의원까지 합치면 약 700개 정도가 영업 중이다. 성형외과 진료가 한마디로 ‘돈이 된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요즘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들도 본업은 뒷전인 채 너도나도 성형이나 미용 시술에 매달리고 있다.

돈을 좇는 의료계, 진료 영역 파괴 바람

 
80년대 미스코리아 출신 박모 씨. 성형외과에서 가슴 수술을 받고, 곧바로 부작용이 시작됐다. 피가 멈추지 않았고,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고름이 나왔다. 4번의 재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한쪽 가슴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박 씨는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가 성형외과를 전공한 전문의가 아니란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수술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치과의원. 치과병원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사랑니를 뽑지 않는다. 이 병원에서는 교정만 하기 때문에 사랑니 발치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치과. 이 치과는 일반적인 진료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양악 수술만 한다. 치과의원만 그럴까. 이번엔 산부인과 의원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역시나 이 병원도 분만 서비스는 하지 않았고 대신 다른 병원을 소개해 주겠다는 반응이다. 이 병원에서는 분만 대신, 보톡스와 반영구화장, 모발이식 등을 하고 있었다. 인근의 성형외과 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 흉터를 없애는 수술을 받고 싶다고 하자 거절했다.
이렇듯 병원 간 진료 영역이 급속하게 파괴되면서 정신과 전문의가 피부질환을 치료하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비만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 논현동의 모산부인과는 산모를 보지 않고 보톡스, 주름제거술, 미용레이저 등 미용성형 분야만 치료하고 있다. 이 병원처럼 미용 치료를 전문 진료 분야로 내세운 산부인과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비만클리닉을 운영하는 산부인과도 대거 등장했다. 내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방사선과 전문의들도 앞다퉈 비만클리닉을 개설하고 있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예방의학을 전공한 대학병원의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피부미용 전문병원을 열었다. 그는 전공과는 무관한 미용레이저 시술, 보톡스, 태반주사, 지방흡입을 진료과목으로 내세웠다. 남성확대 수술 등 남성병원으로 유명한 한 병원의 원장은 비뇨기과가 아닌 정형외과 전문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과는 사각턱 교정, 종아리 축소 등 성형 부문에, 성형외과는 피부 미용 부문에 서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치과에서는 사각턱을 교정하는 시술도 하고 있고, 안과에서도 대부분 라식과 쌍꺼풀 수술을 함께 하고 있다. 한의원에서도 레이저로 미용 치료를 하고 있으며 양방에서는 한방 영역인 침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질 낮은 의료서비스, 응급상황 시 치료 못 받아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전에 우선 담당의사가 해당분야 전문의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진료를 받아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병원 경영이 어려운 개원의들부터 기존의 잘 나가는 병원들까지 비보험 진료가 많은 미용, 성형, 비만클리닉 분야에 대거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들 병원의 공통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통이 아니라 비정통적인 방법들을 자꾸 만들어 내면서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돈이 되는 진료에는 전공을 불문하고 뛰어들고 있는 상황. 산부인과 전문의가 가슴 성형 수술을 하는 건 보통이고, 정신과 전문의가 지방흡입시술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과 보험이 적용 안 되는 비급여 항목 간에 얼마나 차이가 나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예를 들어 치과의 경우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임플란트는 1개에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을 벌 수 있지만, 사랑니를 뽑을 경우 보험이 적용돼 받는 돈이 3만원에서 5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렇게 의사들이 비급여 항목으로 계속 몰리면 국민들로서는 정작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응급상황에서 전혀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의사의 수급 상황이 가장 심각한 것은 산부인과다. 지방의 산부인과 병원은 재정난으로 잇따라 문을 닫고 있고, 대도시에서는 임산부 진료 보다는 성형이나 미용 시술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 산부인과의 한 전문의는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진료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주로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는 비만이나 피부 진료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실제 산부인과 전공의 및 분만의사 감소가 급기야 고위험 임신관리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근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산부인과 전공의와 분만 의사 수가 감소할수록 모성사망비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성사망비(Maternal Mortality Ratio)는 출생아 10만 명당 산모 사망의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모성사망을 측정하는 지표 중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10년 의학잡지 ‘란셋’에 실린 전 세계 국가들의 모성사망비를 비교한 논문에서 한국은 10만 명의 출생아 당 11건의 모성사망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OECD 국가 평균(10만 명의 출생아 당 11.5건) 보다 낮은 수치지만 불과 4년 만에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모성사망비는 2008년도 10만 출생아 분만 당 8.4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단 4년 만에 분만 당 17.2명으로 2배나 증가했다. 더욱이 고령임신 등 고위험 산모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간접 모성사망비는 6배나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와 관련해 산부인과학회 측은 “분만병원 수 감소, 대학병원 인력 부족 등 고령산모 관리에 대한 인프라 약화가 시급한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꺼리는 의대생, 외과·산부인과 지원율 ‘제로’
현재 급여 과목과 비급여 과목 간의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 해 레지던트, 즉 전공의 모집 현황을 보면 인기과목인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지원자가 정원을 훨씬 초과한 반면, 산부인과와 흉부외과, 외과 등은 정원조차 채우지 못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수술할 의사가 없어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러한 우려는 최근 몇 년 새 대학병원에선 메스(수술용 칼)를 선택하는 외과 의사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등 현실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마감한 2012년 후반기 전공의 모집 원서 접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과 계열은 이른바 ‘빅5’로 분류되는 대형병원(아산·삼성서울·서울대·가톨릭서울성모·세브란스)조차 미달이 속출했었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외과에서 3명을 모집했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도 지원자가 전무했다. 세브란스 산부인과(모집정원 5명), 비뇨기과(4명) 등도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 서울성모병원은 산부인과(6명)·비뇨기과(7명)에서 지원율 ‘제로(0)’를 기록했다.
한양대병원, 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등은 흉부외과 지원자가 아예 한 명도 없었다. 의대생들 사이에 “명문대 병원이라도 외과 계열은 싫다”는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증거다. 지역병원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심장수술의 대가인 ‘송명근 교수’ 효과로 매년 정원을 채웠던 건국대병원(충주) 흉부외과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이국종 교수가 재직 중인 아주대병원(수원) 외과 역시 미달 사태를 빚었다.
산부인과는 이미 기피 전공과가 된 지 오래고, 최근 들어 비뇨기과도 전문의 배출이 쉽지 않다. ‘빅5’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하고 모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개원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의대생 중 여학생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게 원인이다.
최근 1~2년 새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제네릭(복제약)이 20여종이나 출시되는 등 비뇨기과에 대한 의사 수요가 많을 것 같지만 내과·이비인후과 등에서 비뇨기과 의사가 해야 할 처방(처방료 5000원)을 대신 하는 사례가 늘면서 오히려 비뇨기과 폐업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서로 ‘으르렁’ 국민만 피해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걸까. 의료계와 정부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인 의료 관행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소아과 의원을 예로 들어보면, 거의 모든 진료가 급여 항목 즉,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다. 원장 1명이 하루 평균 70명 가량의 환자를 보는데, 환자 한 명당 수입은 만 천원 꼴. 한 달이면 천 9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직원 인건비로 700만 원이 나가고, 관리비와 장비 대여료, 약제비 등으로 또 400만 원, 한 달 임대료 500만 원을 내고 나면 남는 금액은 300만 원 정도라고.
의료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만으로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의 관계자는 “수가가 어느 정도 현실화된다고 하면 열심히 배운 자기 전공을 버려가면서 돈을 벌려고 비보험 진료를 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일부 비인기 과목을 위해 수가를 높여주면 그만큼 국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에 대한 불신 속에 해법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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