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수변도시를 꿈꿨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부지에는 주인이 떠나 폐허가 된 집과 쓰레기만 널브러져 있다. 지난 10월10일 서울시가 사업지구 지정을 해제한 가운데 서울시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서부이촌동 일대 아파트 단지에는 ‘서울시의 결정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렸고 빌라 밀집지역 주민들은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라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삽 한 번 떠보지 못 한 채 6년 만에 무산됐다. 서울시는 지난달 10일 토지소유 요건 미달로 자격을 상실한 사업시행자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이하 드림허브)에 대해 사업자 지정을 취소하고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고시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2006년 8월 옛 건설교통부가 이주 예정이었던 용산구 한강로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 6,800여㎡를 업무, 상업, 주거 시설을 포함한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여기에 코레일이 부채 해결을 위해 용산개발사업 사업자 공모 신청을 하면서 2007년 8월 서울시와 코레일이 함께 통합 개발 합의안을 발표했다.
2016년까지 용산 철도정비창 등의 부지 39만 3,000여㎡와 서부이촌동 일대 11만 6,000여㎡의 부지에 랜드 마크 타워, 호텔, 백화점, 주상복합아파트 등을 건설하는 사업비 31조 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으로서 서울의 마지막 요지 ‘용산’ 개발의 청사진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삼성물산, 롯데관광개발, 국민연금 등 26개 법인으로 구성된 ‘드림허브 컨소시엄’이 코레일 소유의 철도정비창 부지에 대한 땅값으로 사업권을 얻었고 서울시, 코레일이 함께 프로젝트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당시 코레일은 부채 6조 원을 갚기 위해 사업자인 드림허브에 토지 최저 가격 5조 8,000억 원을 제시했는데 사업자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8조 원을 토지 가격으로 제시하고 2007년 4,000억 원의 토지 매각 대금을 코레일에 지불하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코레일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기대감에 부푼 것은 코레일만이 아니었다. 2008년,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용산구 땅값이 공시기준 전년 대비 22% 오르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가 부풀었다.
보상금 기대했던 주민들, 빚더미 위에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와 부동산 침체로 인해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사업자인 드림허브는 2차 토지 매매 중도금과 분납이자, 3차 계약금 등 6,430억 원을 내지 못해 이내 위기를 맞았다. 결국 올해 3월12일 드림허브는 PFV(Project Financing Vehicle) 자금고갈로 인한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선이자 미납으로 디폴트를 선언했다.
디폴트 이후 최대 주주인 코레일은 사업 해제를 결정, 철도 정비창 부지 회수를 위해 지난 9월5일 토지대금 최종 반환에 이어 10월4일 드림허브로부터 등기 이전 절차를 완료했다. 이 같은 절차에 따라 드림허브의 토지소유 요건이 미달됐고 사업시행자 자격이 자동 상실돼 사업시행자 지정과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가 이뤄졌다. 6년을 끌어온 개발 사업이 신기루로 끝나버리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구역 지정 해제를 반겼지만 그간 사업에 찬성해 온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낡은 빌라지역 일대 주민들과 상인들 중 많은 수가 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기대하고 대출을 받았다가 비싼 이자금을 갚지 못해 빚을 졌고 집이나 가게가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도 다수다. 남은 대책은 소송뿐이지만 몇 년에 걸쳐 이뤄질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엄두도 못내는 경우가 많다.
서부이촌동 일대 아파트 주민들은 일단 구역 해제 결정을 반기고 있지만 그간의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 일대 전용면적 114㎡ 아파트의 매매가가 17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떨어졌고 그동안 집을 팔지 못해 대출금과 이자가 불어난 주민들의 평균 대출액이 3억 5,000만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본 2,200여 가구 주민들이 1,000억 원대의 대규모 소송을 준비함에 따라 후폭풍이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발 사업 중단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공방이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법정 소송이 끝나야 이 지역의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구역 지정 해제로 인해 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 부지의 분리개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노후주거지를 중심으로 지역 재생을 위한 도시관리계획 가이드라인을 정립해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개발 방식 설정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으며 내년 1월 내에 도시관리계획 가이드라인에 대한 용역보고서를 제시할 예정이다.
천문학적 투자금액 허공으로
개발 사업을 이끌던 드림허브는 사실상 파산수순에 들어갔으며 최대 주주인 코레일을 비롯한 21개 출자회사들이 천문학적인 투자금액을 허공에 날리게 됐다. 사업을 주도한 롯데관광개발은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
또한 민간출자회사들은 토지매입 세금 및 취득세, 자본시장 금융조달비용 등 1조 원의 출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드림허브’를 대표로 내세워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드림허브는 자본금이 모두 바닥난 상태로 사업 무산의 책임 여부에 따라 코레일과 민간출자회사의 배상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용산역세권 개발에 참여했던 싱가포르 투자자인 GMCM도 개별적인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국제 소송전으로 번질 기미도 보이고 있다. GMCM은 지난 2011년 1차 전환사채(CB)발행 시 실권주 115억 원을 인수해 용산역세권 개발에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용산 개발 사업이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졌다고 지적한다. 2007년 8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르네상스사업과 연계해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통합개발방식으로 사업을 변경하면서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또한 3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사업비가 드는 대규모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를 선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4개월. 5,000억 원 규모의 부산센텀시티 개발사업이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는 데만 1년이 걸린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사업이 표류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PF사업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좌초되면서 비슷한 대형 PF사업들이 무산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KTX 오송역 주변 47만 2,000㎡를 업무, 주거, 상업지역으로 개발하는 오송역세권개발사업이 민간 사업자를 구하지 못하고 PF 자본을 조달하지 못해 8년 만에 무산됐고, 인천 용유·무의에 문화관광시설을 건립할 계획이었던 ‘에잇시티’도 사업비 재원 조달을 하지 못해 지난 8월 무산됐다. 뿐만 아니라 인천 서구 청라지구에 상업, 업무 시설을 조성하는 청라국제업무타운 역시 사업 착수 6년 만에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다. PF사업은 공공부문이 특정 용지를 대상으로 개발 사업을 수행할 민간 사업자를 공모, 선정하고 공동으로 출자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2001년부터 시작해 현재 규모가 100조 원대에 이른다. 이렇게 대형 PF 사업들이 잇따라 위기에 빠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및 부동산경기 침체의 영향뿐 아니라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사업 추진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대부분의 PF사업을 시장의 수요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추진되는 사업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PF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시장 수요에 맞는 공급과 토지입찰제도의 개선, 금융권이 사업자에 요구하는 지급보증의 완화 등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