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항명-외압 파동에 표류하는 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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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항명-외압 파동에 표류하는 검찰 개혁
  • 김득훈 부장
  • 승인 2013.11.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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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면전에서 난타전…한상대 전 총장 이후 1년 만에 재현된 抗命 사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중도사퇴와 국정원 댓글사건을 둘러싼 ‘항명-외압’ 파동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검찰개혁도 표류하고 있다. 최근 법조계에 따르면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대선후보 모두가 공약으로 내걸며 대세로 자리잡은 검찰개혁은 지난 4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간판을 내리는 것으로 본격화됐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개혁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지검 국정감사에서는 현직 지검장과 수사 지휘를 받았던 전직 수사팀장이 서로 진실 공방을 벌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53) 여주지청장이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고, 수사 지휘권자인 조영곤(55)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를 반박하며 “아끼는 후배가 항명(抗命)할 줄 상상도 못했다”고 밝히면서 그동안 내부적으로 곪아 터진 검찰 조직의 환부(患部)가 국민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곪아 터진 환부 고스란히 노출

 
수사 보고→영장 청구→국정원 직원 체포·조사→공소장 변경 신청 등 지난달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 동안 벌어진 트위터 선거 개입 수사에 대해 두 사람의 진술은 180도 달랐다. 후배인 윤 지청장이 먼저 포문을 열고 “부팀장(박형철 부장검사)에게 보고서 준비를 지시했고, 지검장 집을 찾아가 국정원 직원의 체포 영장 필요성과 수사 계획에 대해 모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상 규명 중”이라며 말을 아끼던 조 검사장은 후배의 폭로성 발언이 쏟아지자 반격에 나섰다. “보고 같지 않은 보고”라며 일축한 것이다. 조 검사장은 “자정까지 화기애애하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보고서를 내놓아 법리나 사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어 돌려보낸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트위터 수사는) 처음 보고받아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체포영장 청구하겠다는데 이를 허가할 검사장이 어디 있느냐”고 맞받았다.
윤 지청장이 국감 초반 “체포영장 청구를 승인받았다”고 했지만 곧이어 “조 검사장이 ‘야당 도와주기 하느냐. 야당이 이걸로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하겠나’라며 격노해 검사장과 함께 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하자 조 검사장은 “격노하지 않았다. 나는 격노할 사람이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윤 지청장은 중대 사건에 대한 조 검사장의 반응이 ‘불법 행위’라고 판단해 독자적으로 수사에 나섰고, 이후 체포영장 청구부터 이튿날 국정원 직원 체포까지 이를 윗선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수사 검사로서 정당한 행위라는 논리를 폈다. 그는 “예를 들어 물고문을 해서라도 자백 받으라고 지시할 때처럼 위법을 지시하면 따르면 안 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엇갈리는 주장, 진실은…
수사팀이 지난달 17일 아침 6시 30분경 사전 통보 없이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자 국정원은 ‘불법 체포’라며 반발하자 조 검사장은 같은날 저녁 6시쯤 윤 지청장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윤 지청장은 18일 오전 8시 50분 법원에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지검장 사전 승인 여부를 놓고 윤 지청장은 “네 차례 재가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조 검사장은 “그런 일이 없다”며 정반대 주장을 했다.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또 윤 지청장이 “(국정원 직원을 체포해온 뒤) ‘직원들 석방해라. 압수물 돌려줘라’는 외압 들어오는 거 보니 기소도 못 하겠다 싶어 부팀장에게 직무 배제 명령을 수용하겠으니 내일(18일) 즉시 기소할 수 있도록 (지검장에게) 요청하라 했고, 부팀장이 두 번에 걸쳐 승인을 받았다고 (나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조 검사장은 “보고는 없었고 구두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직원 체포 과정에서 국정원장에게 사전 통보하지 않은 게 위법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국정원직원법에는 국정원 직원을 구속할 때 원장에게 사전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윤 지청장은 “10월 17일 아침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나니 국정원 연락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직원이 맞는다고 확인해줬다”며 “곧바로 부팀장에게 구두 통보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전 통보는 구속일 때만 해당되는 것으로 체포와 별개 개념”이라며 “사전 통보 조항은 인권 보장 조항이 아니어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검사장은 “(체포영장에) 국정원 직원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사전 통보가 안 된 부분에 대한 위법 여부에 대해서는 면밀한 법리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항명이 또 다른 항명을 불렀나
이번 검찰 수뇌부에서 발생한 초유의 진실공방에 대한 원인을 두고 그동안 검찰의 내부에 잠복해 있던 곪은 환부가 이제야 드러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검사장과 지청장의 정면충돌로 검찰을 사상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은 이번 사건의 ‘씨앗’은 작년 말 한상대 전 총장의 퇴진을 불러온 검란(檢亂) 사태 당시 뿌려졌다고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한 전 총장이 내부 권력 다툼에 밀려난 뒤 검찰 내분이 심해져 윤석열 지청장의 항명 사태까지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말 한 전 총장은 일부 특수통 간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다. 부당하게 수사에 개입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전 총장이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고, 특수부 검사들은 이에 반발해 똘똘 뭉쳤다. 윤 지청장은 특수부 검사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선두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장은 특수부의 집단 반발에 백기 투항을 하고 사퇴했고, 이 덕분에 올해 4월 채동욱 전 총장은 후임 총장이 됐다.
특수통인 채 전 총장이 수장이 되자 특수부 검사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중수부가 해체된 뒤 남아 있던 중수부 인력은 대부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그대로 옮아갔다. 채 전 총장은 특히 자신의 첫 수사인 국정원 댓글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으로 윤석열 지청장을 발탁했다. 사건 성격은 ‘공안’ 사건이었으나 특별수사팀에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배치했다. 올해 5월 말 윤 지청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을 놓고 황교안 법무장관과 일부 공안 검사와 심각한 갈등을 벌였다.
일부 언론에서 “황 장관이 수사를 가로막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수사팀이 언론 플레이로 사건을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사팀은 끝내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을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수사팀의 든든한 배후는 바로 채 전 총장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채 전 총장과 윤 지청장은 작년 말 한 전 총장의 퇴진 때부터 한배를 타고 검찰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면서도 “반면 검찰 내부에선 질시도 있었다”고 했다.
검찰이 댓글 사건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자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 결과를 호재로 삼았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현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그러자 여당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회의록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공안 검사들 사이에선 “국정원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면서 정치권과 나라 전체가 민생과는 무관한 소모적 공방전을 벌이게 됐다”는 푸념이 나왔다.
지난 9월 혼외자(婚外子) 사건으로 채 전 총장이 물러나자 윤 지청장과 특별수사팀은 크게 위축됐다. 검찰 내에선 채 전 총장의 호위 무사를 자처한 김윤상 전 대검 감찰과장보다 오히려 윤 지청장이 채 전 총장과 가깝다는 말이 나왔다. 윤 지청장 등이 한직을 전전하다 결국 검찰을 떠날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국정원 트위터 사건이 벌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윤 지청장이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수사하게 된 데는, 채 전 총장 보호막이 사라진 것과 자신을 비롯한 일부 검사의 위기감도 한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항명파동으로 검찰개혁 올스톱
이런 상황에서 검찰개혁 작업은 최근 불거진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의 ‘외압-항명’ 파동으로 세간의 관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기구인 검찰개혁심의위원회(위원장 정종섭 서울대 교수)도 지난 9월2일 마지막 회의를 끝으로 두 달이 넘도록 열리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검찰개혁위가 언제 다시 열릴지에 대한 기약이 없다. 검찰에 따르면 다음 회의 일정도 따로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개혁심의위는 채동욱 전 총장의 지시로 구성된 것으로 이광범 변호사(전 내곡동 특별검사)와 하태훈 고려대 교수(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 등 검찰에 비판적인 인사들까지 대거 위원으로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특히 대검 중수부의 후신으로 ‘반부패부’를 신설하고 검사 비위를 감찰할 ‘검찰시민위원회’를 각 고검에 설치하는 등 굵직한 개혁안을 내놓으며 기대를 한껏 모으기도 했다.
현재 남아있는 검찰개혁 과제는 ‘상설특검’에 관한 것이다. 상설특검을 별도의 상설기구로 둘 것인지(기구특검) 아니면 특별검사의 선임과 임명, 활동기간과 방법 등 관련 내용을 정한 특검법만 만들어 놓고 사안이 발생할 때만 특검을 임명할 것인지(제도특검)가 쟁점이다.
상설특검 문제는 검찰개혁과 관련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개혁과제로 꼽힌다. 가장 중요한 문제의 처리를 남기고 ‘장기 휴면’에 들어간 셈이다.
이미 심의·의결돼 공식 개혁방안으로 확정된 사안들도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대검 중수부의 후신이자 일선 지검에서 진행되는 반부패 사건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기구인 ‘반부패부 신설’도 안전행정부와 인력, 기구 구성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발목이 잡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사정상 개혁작업 진행이 중단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대통령의 공약인 만큼 새 검찰총장이 임명되면 다시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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