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는 뉴스메이커였다. 그의 행동뿐 아니라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온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과거 정치에 뜻을 품고 대선에 출마했던 다른 ‘거물급’ 무소속 의원들과는 달리 국민들의 뜻으로 대선에 나선 안철수는 시작부터 ‘돌풍’을 몰고 왔다. 정치 경험이 없는 그에 대한 우려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새정치’라는 타이틀은 ‘기대’로 다가왔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는 12월 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하면서 그동안 설(說)이 무성했던 ‘안철수 신당’이 구체화되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오는 12월 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달 안으로 전국 조직인 지역별 실행·기획위원회 인선을 마칠 계획이다. 또 내년 2~3월에는 창당을 하고, 신당에 참여할 전·현직 중량급 인사 명단도 공개할 방침이다. 설(說)이 무성했던 ‘안철수 신당’의 구체적 로드맵이 그려진 셈이다.
윤곽 드러내는 ‘안철수 신당’
안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측근들이 사용하던 서울 지역 비밀 오피스텔을 모두 정리했고,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안 의원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사무실을 확장·통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며 “12월 창당준비위를 꾸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창립 당시 창당과 관계가 없다고 했던 ‘내일’이 결국 창당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창당준비위 사무실에는 상황실이 설치되고, 대규모 상근 인력이 가동될 예정이다.
창당준비위 구성에 앞서 안 의원은 전국의 각 지역 조직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지난 9월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지역 실행위원(68명) 1차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조만간 수도권과 부산·울산 등 영남권 인선을 마칠 계획이다.
다른 핵심 측근은 “창당이 목표이기 때문에 지역 지지기반이 매우 중요하다”며 “1차 명단 발표 뒤 민주당은 공천을 못 받은 ‘기웃 세력’이라고 평가 절하했지만 이후 세(勢)가 두 배로 불어났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아울러 안 의원은 신당에 합류할 기성 정치인들을 내년 2~3월쯤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6월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 중에는 민주당 출신 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 의원에게 내년 7월 재·보궐 선거에서 신당으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여야 전직 국회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새 정치에 맞는 인사들을 선별하다 보니 인재영입 작업이 다소 더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영입 인사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선별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안철수 신당’의 방향과 노선, 참여자 면면과 정치적 가능성 등을 타진하느라 분주하다. 누가 참여하느냐, 손학규 민주당 고문과 손을 잡느냐, 지역은 어디를 거점화하느냐, 중도 보수 쪽이냐 중도 진보 쪽이냐, 민주당과 연대를 하느냐 마느냐 등 각종 궁금증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측 성 답안지를 내놓고 있는 판인데 정작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쪽은 당사자인 안철수 의원 측이다. 오히려 신당 창당설을 부인하면서 정중동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창당 작업 누가 주도하나
현재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오는 12월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정하면서 내년 3월 이전을 목표로 한 ‘안철수 신당’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약 5개월 뒤면 ‘안철수 정치’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안 의원 측은 창당 전까지 전현직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을 영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창당 작업은 안 의원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장하성 소장과 기획위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기획위원장인 무소속 송호창 의원을 비롯해 강인철 금태섭 변호사, 정기남 전 진심캠프 비서실 부실장, 박인복 전 국정자문지원실장, 윤석규 전 열린우리당 원내기획실장, 이태규 전 진심캠프 미래기획실장 등 10여 명이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이들 10여 명이 정무와 조직 등 창당 핵심 업무를 맡고 있어 내부적으로 ‘핵심 의사결정 그룹’이라고 부른다”며 “‘내일’ 외부에서는 공동선대본부장을 지낸 새누리당 김성식 전 의원이 특별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내부에서, 김 전 의원은 외부에서 창당 작업을 조율하고 안 의원의 최종 의사결정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내년 2~3월 신당에 참여할 전현직 중량급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한다는 목표로 인선에 집중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영입 대상의 이력서 검토부터 최종 결정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한다. 안 의원은 대선 때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민주당 박선숙 전 의원의 복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새로 합류가 예상되는 중량급 국회의원으로는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3선의 정장선 전 의원이 꼽힌다. 안 의원 측에서는 정 전 의원의 합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정 전 의원은 안 의원과의 연대설이 끊이지 않는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과 가까운 ‘친손계’이기 때문에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신당의 최대 목표는 내년 7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맞춰져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도 중요하지만 신당의 규모와 가용인력 등을 감안할 때 선거구가 수천 개에 이르는 지방선거보다는 국회의원 선거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안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단체장까지는 가능한 후보를 낼 것이고, 7월 재보선에서는 전 지역에 후보를 내겠다”며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제대로 된 평가는 7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6~7월에 안철수 신당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셈이다. 내년 7월 재보선은 10곳 안팎의 미니 총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흘러나오는 연대설 봇물
아직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이 출현할 경우 지방선거에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라 예상되면서 기존 정당인들은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실증을 느낀 세력 또는 자취를 감춘 지역 기반 정당의 지지자들이 안철수 신당에 힘을 보탤 경우 일정부분 파괴력을 발휘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대체적인 안철수의 지지층들은 야권 지지층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야권세력의 경우 ‘안철수 세력과의 연대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 야권의 정치인은 “가뜩이나 어려운 여건에서 각자의 후보를 낼 경우 백전백패일 것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겠나”고 밝혔다.
이 같은 분위기가 돼가고 있는 상황이라 야권의 차기 대권 주자 급의 정치인과 안철수 의원 사이에 연대설들이 봇물 터지듯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표적인 인사가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 지사의 경우 재선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복잡한 셈법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충청지역은 여권과 야권의 지지율이 박빙인 상황이기 때문에 안 의원의 세력이 후보를 냈다가 필패할 공산이 크다. 이런 몇 가지의 이유로 양측의 협상이 매우 필요한 지역이 충청지역인 것이다. 민주당 충남지역 핵심 인사는 “야권의 충남도지사 후보가 분열될 경우 무조건 패배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독일에서 8개월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 가운데 지난 대선을 전후로 고개를 들었던 ‘손학규-안철수’ 연대설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손 고문은 지난 10월8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해 미래한국 정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독일에서 ‘연립정치 모델’을 공부하고 왔던 손 고문은 공개 석상에 설 때마다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면서 손·안 연대설이 강력 제기되는 것이다. 게다가 손 고문은 최근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불출마를 결정하면서 당과 불협화음을 보였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날 손 고문의 싱크탱크 창립 행사 자리에는 안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하면서 이런 연대설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손 고문측은 안 의원과 연대설에 대해 “지금은 연대를 논할 상황도, 시기도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손 고문측은 “지금은 당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당을 어떻게 쇄신할지만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 연대설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야권이 전체적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안 의원측에 기대하는 것은 새 정치를 잘 구현해주는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경쟁적 협력관계를 이어나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긴장 속 민주당, ‘연대’ 주장
신당 창당 움직임 소식에 가장 긴장하는 쪽은 민주당이다. 자칫 제1야당 지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3자 구도로 선거전이 치러지면 새누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는 계산에서다. 그래서인지 신당의 ‘신’자도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벌써부터 민주당에서는 신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때이른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최근 “내년 지방선거 등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이 총집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안철수 신당을 만들던, 만들지 않던 호남에서만 민주당과 이른바 신당간의 각축전이 치열할 뿐 호남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상황은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 참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천 전 장관은 “안 의원과 신당이 잘 되길 바라지만 새누리당 세력이 워낙 강해 야권이 모두 뭉쳐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도토리 키재기식 다툼을 벌인다면 참패하고 말 것”이라며 “지금은 개혁정치세력이 하나로 똘똘 뭉쳐 어떻게 활로를 열어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이에 가세했다. 박 의원은 “(안 의원이)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신당을 창당한다고 하니까 어려운 난관이 많이 있겠지만 창당이 되리라고 본다”며 “신당이 창당되면 새누리당과 야권은 분열되는 그런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으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신당과 연합연대,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에 단일후보를 내는 것이 거대한 집권여당 새누리당에 승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민주당과 신당과의 야권연대 방식과 관련해 “호남에선 경쟁, 타지역에선 연대해야 한다”라는 구체적 틀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선거는 새누리당과 야권 1:1구도로 몰아가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지역에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호남만은 새누리당이 그렇게 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어차피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경기도의 경우 ‘1여 4야’로 선거를 치를 경우 패배가 불 보듯 뻔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단일화를 해야 하고, 단일화 과정에서 경선 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