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화가도 모방하는 ‘야생화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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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명화가도 모방하는 ‘야생화 시리즈’
  • 안수지 부장
  • 승인 2013.10.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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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재의 ‘붓칼화법’으로 구현된 <기억 속으로>

한국 최초로 국내 자생하는 토속적인 ‘들꽃’에 관심을 두고 그를 소재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현함은 물론 ‘붓칼화법(일명 필도화법)’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한 서양화가 김희재(金希哉·63). 그는 지난 1983년 미도파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며 ‘기억 속으로(into the memory)’ 연작을 선보여 국내외 화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동방플라자 미술관(1985)을 비롯해 일본 동경의 일본문화원(1986), 프랑스 파리 그랑 펠레 한국작가 초대전(1989), 인도 뉴델리 인도국립미술관 초대전(1992),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월간미술세계 초대전(1998), 뉴욕 아트엑스포 초대전(2000), 마이애미 라이얼스 갤러리 워크숍 초대전(2001), 부산비엔날레(2008), 중국 북경의 한·중 교류 17주년 기념전(2009),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2009) 등에 초대되어 국제적 입지를 굳히고 있는 김희재 화가. 특히 40여 년 넘게 천착해온 김희재 화가의 ‘야생화 시리즈’는 1980년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들꽃(야생화)’을 소재로 하여 유화작업을 시도했다는 것과 ‘붓칼화법’으로 세밀화 작업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미업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 더욱 해외 유학파가 도입한 서구식이 아니라 순수 국내파 화가의 창의적 발상에 의해 고안된 기법으로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외에 씨앗을 잉태한 들꽃의 모성성을 ‘기억’의 복원을 통해 작품에 반영하고 있어 삶의 철학을 읽게 한다. 현재 아트페어에 출품하는 국내 유명화가들까지 김희재 화가의 ‘기억 속으로’ 연작을 모방해 수많은 모작(模作)을 낳고 있다.

‘왜 들꽃인가’ 김희재의 <기억 속으로> 전시회가 획득한 역사성 

 

   
▲ ‘붓칼화법’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한 김희재 화가.

1983년 미도파화랑과 롯데미술관에서 개최한 김희재 화가의 두 차례 <기억 속으로> 개인전은 특별했다. 그의 ‘들꽃(야생화) 시리즈’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1980년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미술사조로는 서구사회에서 전래된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화와 리얼리즘 계열의 민중미술로 양분된다. 특히 1970년대 백색 모노크롬 회화로 귀결되는 단색조의 미술과 달리 저항적 사회운동과 맞물려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민중미술은 격변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드러내 강렬하면서도 도식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신군부 쿠데타,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제5공화국 출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군 사망 등은 군부독재의 폭력성 아래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 참여라는 리얼리즘의 기본 정신과 맞닿아 신표현주의와 극사실주의, 민중미술이라는 거대 담론을 형성했다. 또한 신매체미술이 등장해 퍼포먼스라는 표현성과 대중성을 무기로 무용, 연극, 비디오 등과 결합해 소통성과 참여도를 이끌었다.
이러한 때 김희재 화가는 ‘서양의 고혹적인 장미’나 ‘동양의 화려한 양귀비’ 대신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한국의 토속적인 들꽃’을 소재로 세밀한 구상화 작업에 몰입한다. 서양에서 유학한 예술가들의 엘리트주의적 성향이 팽배한 한국화단에서 주류를 이루던 추상화와 민중미술을 차치하고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구상화를 추구하며 가장 한국적인 소재의 ‘들꽃’을 통해 캔버스 위에 자연의 이미지를 복원하고 ‘기억 속’에 저장한 생명의 환희를 구현하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왜 붓칼화법인가’ 유화 붓과 나이프로 긁는 세밀화 작업
1980년대까지는 ‘들꽃(야생화)’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전무했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나이프를 사용하여 세밀하게 긁는 ‘붓칼화법’을 구사하는 화가도 없었다. 무엇보다 거의 대다수가 순수 국내파가 아닌 해외 유학파들이어서 한국적 정서가 무엇인지 깊이 숙고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러나 김희재 화가만큼은 1973년 광주 숭의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터득한 그만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산과 들에 자생하는 야생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기억’ 속에 저장해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실행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서성록 회장은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여러 사이즈의 유화 붓 대신 수십 자루의 나이프를 보고 놀랐던 경험을 회고했다. 서 회장은 “1990년대부터 김희재 화가가 사용한 나이프는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반질반질 윤이 나 있는 것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이프는 주로 물감을 개거나 바탕칠을 할 때 사용하지만 그의 경우 붓에 버금가는 주된 도구로 사용한다. 누가 나이프로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겠는가. 화가는 물감이 마르기 전에 나이프로 형태를 새기고 음영을 넣는다. 이파리를 만들고 사물에 음영을 넣으며 줄기를 새기고 꽃송이를 떠낸다. 그러한 도구가 바로 나이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솜씨를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들려준다.
이러한 김희재 화가의 ‘붓칼화법(일명 필도화법)’은 그의 ‘기억 속으로’ 연작을 구현하기에 매우 적합해 단번에 서구 회화를 우선시 하는 한국화단에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더욱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루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한국적인 소재의 회화’로 외국인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선화랑과 표화랑에서 초대를 받았고 인사아트센터 기획 초대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며 탄력을 받은 김희재 화가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회화에도 한류 바람이 불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왜 김희재 화가인가’ 씨앗을 잉태하는 들꽃의 모성성 

 

   
 

김희재 화가의 ‘들꽃(야생화) 시리즈’에는 일단 ‘모성애’로 대변되는 삶의 심오한 철학이 있다. 현재 국내 화랑가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보이는 한 중견화가에 의해 모방되고 모작되는 ‘자연 시리즈’에 비하면 원조격인 김희재 화가의 ‘기억 속으로’ 연작은 생명을 잉태하고 발화하는 ‘어머니와 같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이미 꽃 자체가 여성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인공으로 급조한 조화(彫花)의 개념이 아니라 ‘씨방’과 ‘씨앗’을 오롯이 가진 진정한 생명의 꽃으로 그려내고 있다.
씨앗을 잉태치 못하는 야생의 식물은 그야말로 들풀(야생초)이나 잡풀에 불과하다. 결코 들꽃(야생화)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꽃을 여성의 생식기에 비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씨앗을 얻은 들꽃(야생화)은 여물어가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레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나비를 유혹하던 화려한 빛깔 대신 전신을 모노톤의 원숙함으로 성장하며 조용히 인내하고 함묵하는 시간의 무르익음을 보여준다. 
김희재 화가는 자신의 습작노트에서 ‘거미가 자신의 몸을 내주어 살신성인으로 새끼를 기르는 것처럼 시들어가는 꽃은 잘 여문 씨앗을 만들기 위해 새 생명의 잉태 과정을 스스로 감내한다. 간혹 사람들은 시들어 가는 꽃을 절망으로 느끼지만 오히려 시들어가는 꽃은 종자인 씨를 품고 있기에 위대하다. 죽음이라는 것, 시든다는 것은 자연의 순환 속에 더 큰 환희이고 더 큰 희망이다‘라고 들려준다. 
이렇게 40여 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든 꽃’을 형상화 한 김희재 화가는 그의 빛나는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생명을 잉태한 야생의 들꽃들과 이 땅에서 피고 지며 살아온 한국 여인들의 삶을 자연의 창조적 질서 안에 관조적으로 보여준다. 조화처럼 양각된 ‘불임의 꽃’이 아니라 씨방 안에 튼실한 씨앗을 품고 있는 ‘모성의 꽃’으로 캔버스라는 대지 위에 피워 올리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기억 속으로’ 연작은 흡인력이 매우 크다. 그의 천부적인 감성이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만들어서 여타 기술로는 모방할 수 없는 영혼의 심연(深淵)을 깨닫게 한다.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04-9 김희재 갤러리
전화 : 02-546-1764 / 010-5304-1764
이메일 : heejaek3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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