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후보들의 엇갈린 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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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후보들의 엇갈린 지지도
  • 글/ 김정숙 기자
  • 승인 2006.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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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권을 잡으려면 ‘비전’을 제시하라
이명박, 박근혜, 정동영 선거 영향, 여권 ‘새 후보’찾기 분주
5·31 지방선거는 대선 차기 주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의 위상 변화가 이를 대변한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승리에 힘입어 당 내 대선주자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됐지만, 정동영 전 의장은 주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부터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체 주자군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27.1%의 지지를 받아 고 건 전 총리의 27.8%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까지의 고 건·이명박 2강, 박근혜 1중 구도에서 이 시장을 1중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반면 정동영 전 의장은 거의 모든 지표에서 김근태 의장에게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 건 박근혜 등 여야 7명의 예비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정 전 의장은 3.4%를 기록, 김근태 당의장(4.6%)에 뒤졌다. 열린우리당 내 차기주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 전의장은 17.6%로, 김 의장의 17.7%에 밀렸다. 여권 내 유력주자에서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그렇다면 대선주자들의 이런 지지도가 내년 대선후보 결정 때까지 그대로 이어질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는 냉정하다. 한마디로 ‘아니다’라는 것.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겉으로는 희비가 갈리지만 대선을 놓고 보면 모두 출발선에 섰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방선거가 보여준 가장 확실한 교훈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면 누구든 며칠 안에 대세를 형성할 수 있고, 아무리 지지도가 높은 사람도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지방선거 전후의 ‘정동영 지표’나, ‘청계천 복원’ 직후 이른바 대세론을 구가하던 ‘이명박 지표’, 그리고 사흘만에 대세론을 형성한 ‘오세훈 지표’가 이를 잘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경쟁력 있는 미래비전을 제시하라
하지만 정치권 주변은 아직 현재의 지지도에 일희일비한다. 주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 내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박근혜로의 줄서기 현상’이 단적인 예다. 의원들 중에는 박 전 대표에게 ‘대선캠프를 내가 맡겠다’고 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방선거 승리 후광에다, 피습사건으로 ‘핍박받은’ 이미지까지 덧씌워지면서 ‘박근혜 대세론’이 형성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박 전대표가 과연 본선에 갈 수 있을지, 현재의 상태로 본선경쟁력이 있는지 회의하는 시각이 아직 더 많다.
고 건 전 총리의 높은 지지도는 지방선거 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범여권의 혼돈을 자기 입지 강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고 전 총리의 발걸음도 무척 빨라 보인다. 하지만 고 건 전 총리에 대한 회의론 역시 박 대표 못잖다.
이와 관련, 한 선거전문가는 “박 대표나 고 전 총리나 근본적인 약점은 그들이 만들려는 나라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효용성은 분명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나 고 전 총리나 국민들에게 ‘미래 비전’을 내놓지 못한다면, 과거의 평가보다 미래에 대한 선택이 중요한 기준이 될 대선에서 이들의 미래 역시 없다는 얘기가 된다.
지방선거 후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 얘기는 ‘정동영 용도폐기론’이었다. 선거 패배의 깊이만 따지면 이런 얘기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김근태 당의장이 아직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6월 조사를 보면 김 의장은 정동영 지지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을 전혀 흡수하지 못했다. 이는 김 의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정동영 전의장과 김근태 의장에게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전문가들도 이 점을 주목한다. 평소 정동영 의장에 대해 마뜩찮아 했던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정동영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당대회부터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였던 기득권 이미지를 버리고 몽골기병의 패기를 되찾으면 여권 지지층은 다시 그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 전략가로 통하는 한 인사도 “지금 한나라당이 보여주지 못하는 성찰을 김근태가 보여주는 것 같다”며 “그렇게 되면 김근태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진지한 성찰이 통하면 국민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솔직히 한나라당을 생각하면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청계천 복원’으로 한때 ‘대세론’까지 나왔던 이명박 시장도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경기도 100만 일자리 창출’로 반짝 가능성을 보였던 손학규 지사도 마찬가지다.
이들 차기주자들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과 관련, 앞의 한나라당 주변의 전략통은 “지방선거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유권자들은 차기 주자들을 냉정하게 보게 될 것”이라며 “민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을 때 그 도도한 흐름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 입지 좁아진 이명박
한편 이명박 시장이 한나라당 동료 의원들에게 느닷없이 난타를 당했다. 첫 포문은 홍준표 의원이 열었다. 홍의원은 6월 5일 한나라당 대선 전략 세미나에서 “대선 후보를 6개월 전에 뽑는 것은 너무 빠르다. 상대 당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다. 당헌·당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는 이명박 시장측의 문제 제기에 대해 “패배주의적 발상에 젖어 있어 유감스럽다. 대선주자는 국민에게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시장 진영에서는 ‘이명박계’로 분류되던 홍 의원의 비판을 일면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지난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홍 의원이 이 시장으로부터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심재철 의원의 공격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심의원은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한나라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잘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이시장이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홈페이지를 통해 “한마디로 착각도 유분수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너무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잘해서 몰표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님을 이 시장은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홍준표 심재철 의원의 잇따른 비판은 이명박 시장의 당내 입지가 좁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내 중도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푸른모임’의 임태희 대표도 이 시장 공격에 가세했다. 임 의원은 “‘대선 후보 선출시기 조정 및 선출방법 변경’ 등 당헌·당규 개정 논란과 관련해 이명박, 손학규 등 대선 주자들의 반응에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임 의원의 발언이 이명박 손학규 두 주자를 겨냥하고는 있었지만, 상처는 지지율 우위를 달리고 있는 이시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당헌·당규 개정 논란은 박근혜 대표가 “대선 후보 선출시기를 조정하는 것은 안 된다”라고 쐐기를 박으면서 아무 소득 없이 일단락되었다.
이런 동료 의원들의 도발에 대해 이 시장 진영에서는 이시장의 세가 약해진 틈을 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심재철 의원이나 임태희 의원 모두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시장 진영에서는 당분간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의장 물러난 정동영을 살려라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열린우리당 당의장에서 물러난 정동영 전의장이 긴 침묵의 시간을 갖고 있다.
정계 입문 이후 한 달이 다 돼도록 TV 화면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전까지 방송기자와 앵커로 17년을 지냈으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27년만에 가장 오랫동안 TV 카메라에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셈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몇몇 성급한 이들은 “이제 정동영 시대는 갔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기도 한다.
대선관련 여론조사는 이 같은 성급한 얘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6월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정동영 전 의장은 3.4% 지지율을 기록했다.
올 들어 실시된 조사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20%대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고 건 전 총리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보다 작게는 1/7에서 크게는 1/9에 머문 수치다. 김근태 우리당 의장(4.6%)보다도 낮았다.
여당 내 대선후보에 대한 평가에서도 17.6%를 기록, 17.7%를 기록한 김근태 의장에게 처음으로 역전 당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그의 말마따나 낭떠러지에서 스스로 손을 탁 놓은 정동영 전 의장은 지지도 상으로는 바닥까지 추락한 것이다.
다만 정동영 전 의장은 당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도 우리당이 질서 있는 퇴각을 할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지방선거 당일에는 김근태 당시 최고위원을 직접 만나 ‘당의장 승계’를 당부하기도 했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자파 의원들에게 김근태 비대위원장 선출에 ‘협조’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 전의장의 숨은 노력이 밑거름이 돼 우리당은 ‘국공합작’에 버금가는 동거체제로 출범할 수 있었다. 정 의장이 ‘질서 있는 퇴각’을 주문하고 나선 데에는 개인 정동영은 지방선거 책임으로 물러나지만 ‘우리당’만은 지켜져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우리당’ 없는 정동영 역시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정동영 전의장과 열린우리당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우리당이 살아나야 정 전 의장에게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평가했다.
2004년 1월과 지난 2월 두 차례 전대에서 당내 최대주주로서 정 의장의 당내 기반은 확인된 바 있다. 즉 우리당이 국민 신뢰를 회복, 내년 초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이뤄지게 되면 높은 대중성과 확고한 당내 기반을 바탕으로 정 의장이 재기할 수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의장 사퇴로 차기주자 정동영 전 의장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지적이 많다. 한마디로 자기 주도권을 상실한 것.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결단은 정 전의장의 몫이었지만, 낭떠러지 밑에 어떤 상황이 놓여 있는 지는 정 전의장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에 대한 자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며 “신문 안본 지는 오래됐고, TV 뉴스도 거의 보지 않는다”고 최근 근황을 전했다.
한 인사는 “공백기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며 “그동안 ‘콘텐츠가 없다’며 이미지 정치인이란 시달림을 받아왔는데, 차분히 한국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셈”이라고 말했다. 또 “새롭게 제시할 비전이 슬로건에 그쳐서는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27년 동안 TV 카메라에 익숙해 왔던 정 전의장이 얼마만큼 침묵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공존한다.


여권 내에 제3의 대선후보론
한편, 열린우리당이 내년 대선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여권에서 ‘제3후보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비상대책위원장으로는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없는 한 내년 정권 재창출이 어려운 만큼 지금부터라도 범여권 독자 후보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단순한 대중적 인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시대적 흐름과 민심의 변화에 부합하는 지도자상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 같은 기류 이면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집권여당이 자칫 대선후보마저 배출하지 못하는 ‘불임정당’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이명박 시장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고건 전 총리,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비상대책위원장은 다 아닐 것이다. 먼저 뜬 사람은 그만큼 부담이 크다”며 “선거를 몇 달 남겨두고 막판에 뜨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진 후보들 가운데 기대할 만한 지지도가 없어 안타깝다”며 “국민의 지지를 더 받을 수 있고, 당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생각하는 여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해 제3후보론의 불가피성을 내비쳤다.
‘희망21포럼’ 대표인 양형일 의원은 “20%대 지지를 받는 이명박 고건 박근혜 후보와 비교할 때 우리당 일부 주자들을 과연 대선후보군에 속한다고 봐야 하느냐는 지적들이 있다”며 “정치가 지금처럼 답답한 답보상태에 빠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제3후보군을 불러들이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선 ‘통합’과 ‘경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최재천 제1정조위원장은 “내년 대선은 보수세력 대 중도개혁세력의 결전 구도가 될 것”이라며 “결국 민심의 변화와 함께 범개혁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인사가 범여권 후보가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현재 당내에선 잠재적 대선 주자로 한명숙 총리와 천정배 법무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서울시장으로 출마했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정도가 거론되고, 외부 인사로는 박원순 변호사나 정운찬 서울대 총장 이름이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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