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기업 총수들이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SK, 한화, LIG, CJ 등 내로라하는 기업의 총수들이 법정 구속 상태이며 기업의 경영난을 책임지고 퇴임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집행유예로 끝나던 과거 관행과 달리 법정 구속이 잇따르고 있어 재계 안팎이 긴장하고 있다.
과거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집행유예로 끝나던 과거 관행과 달리 법정 구속이 잇따르고 있어 재계 안팎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 9월27일 법원은 회사 돈 46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SK 최태원 회장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4년을 선고했으며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도주우려 등을 이유로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했다. 또한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전 대표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2005년 무속인 출신 투자 전문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SK텔레콤 등에서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선 지급한 자금 중 465억 원을 빼돌려 선물 옵션 투자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됐으며 최 부회장에게는 무죄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최 회장에게 SK 계열사 자금 1,000억 원을 펀드에 투자하고 이 중 465억 원을 횡령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김원홍 전 고문은 2011년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대만으로 달아났다 지난달 26일 송환돼 법정에 설 예정이다.
서울고등법원은 형사 4부 문용선 부장판사는 27일 항소심 선소공판에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해야 할 기업인이 허황되고 탐욕스러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SK계열사 자금을 동원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하고 “각종 정황 증거를 비롯하여 최재원의 자백, 김준홍의 진술들을 통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충분히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총수 형제가 나란히 구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SK그룹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SK그룹 측은 사건의 주요인물로 지목된 김 전 고문이 국내에 송환됐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서기 전에 재판부가 예정대로 선고를 내린 점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판결문을 받은 뒤 상고할 것으로 보인다.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마련 중인 SK그룹은 당분간, 현재와 같이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등 최고경영자 6인으로 구성된 ‘수펙스 추구 협의회’의 집단 운영체제로 운영될 예정다. 그러나 총수의 공백으로 인해 SK그룹은 당분간 해외 투자 등 상당한 부분의 사업 중단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양형기준’ 횡령·배임300억 이상 징역 4년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지난 8월 국내 3,600억 원, 해외 2,600억 원 등 총 6,2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2,000억 원을 횡령,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다가 신장 이식 수술을 이유로 1심 전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현재 3개월의 형집행 정지 상태로 11월28일까지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이러한 가운데 9월27일 국세청이 이례적으로 CJ그룹의 계열사인 CJ E&M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월 세무조사를 벌인지 7개월만으로, 이 회장의 구속집행이 정지된 만큼 3개월간 검찰과 국세청의 대외적인 조사가 없을 것이라는 CJ그룹 내의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본사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회계 장부 등을 압수 조사했으며 이번 조사는 이 회장에 대한 불법 비자금 조성 및 CJ E&M 통합법인 출범 이전 오리온그룹 케이블방송 온미디어 인수 과정의 탈세에 관련된 특별 세무조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회장 역시 횡령, 배임 인정 금액이 300억 원을 넘어 실형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회사 돈 1,40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2심에서 징역 4년 6개월, 벌금 20억 원이 선고됐으며 이 전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 상무에게도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이 전 회장은 간암 수술을 받았으며 이 상무는 여든네 살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9월13일 열린 LIG그룹의 구자원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서는 구 회장에게 징역 3년, 구 부회장에게 징역 8년이 선고됐다. 재벌의 가족들이 함께 재판을 받을 경우 모두 유죄라 하더라도 통상 1명만 감옥에 보내던 관행을 깨고 여든을 넘긴 구 회장과 아들이 나란히 감옥행을 하게 됐다.
이렇게 재벌 총수들에 대한 가감 없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것은 2008년 대법원이 양형 기준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양형 기준은 법정 구속력은 없으나 형량의 기준이 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의 단골 혐의인 횡령, 배임에 대해 금액이 300억 원을 넘기면 최저 징역 4년을 집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집행유예가 징역 3년까지 이므로 사실상 실형이 불가피하다.
이에 그간 ‘재벌에 대한 처벌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재벌 앞에 관대했던 법원의 판결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영난에 책임지고 퇴진도…
대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5월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한 국세청은 조석래 회장을 탈세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며 포스코와 롯데쇼핑 4개 사업본부, 대우건설, 현대자동차, 국민은행, 인천공항공사 등 대기업뿐 아니라 공기업과 금융권으로 조사가 확대되고 있어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대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심판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인한 경영난으로 기업 총수의 위상이 떨어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지난해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으며, STX 강덕수 회장은 채권단에 의해 대표이사직을 내놓았다.
법정관리 위기에 놓인 동양그룹이 그 뒤를 잇고 있는데 동양그룹은 1조 원이 넘는 기업어음(CP) 상환 만기가 돌아오고 있지만 기업자금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혀 동양 등 3개 계열사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기업의 경영난이 심각해지고, 동반성장과 건전한 기업문화 등이 강조됨에 따라 기업 총수들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어지고 있어 이들의 수난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재벌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