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금융사고에 고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가 잇단 횡령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증권사 대리급 직원이 고객 돈 21억 원을 횡령해 주식워런트증권(ELW)에 투자했다가 내부 감사에 적발되는가 하면 수개월 동안 고객 돈 2억 5,0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증권가의 횡령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증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횡령사고가 불황이 빚어낸 결과로 보고 있는데, 증권업황이 최악인 상황에서 지나친 실적경쟁에 내몰린 증권사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기승을 부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증시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증권사 직원들이 고객 돈을 빼돌리는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투자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은 연이은 금융사고에도 증권사 ‘자체 점검’ 강화만 촉구하고 있어 개인투자자들 보호에 무성의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횡령사건 범인들은 하나같이 용의주도한 수법으로 고객 돈을 횡령해 사용했다. 사측은 피해금액 보전을 완료한 상황이며, 경찰 조사가 완료되는 즉시 해당 직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볼 때 퇴사조치가 확실시될 것이라는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지다 보니 동향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이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직원 윤리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금융사고 줄줄이
“한꺼번에 40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는 건 본 적이 없습니다. 걸린 게 이 정도면 안 걸린 사건은 더 많다는 얘기 아닐까요.”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증권사들의 금융사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요즘 증권가에선 고객자금 횡령, 고객자산 사고 후 잠적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에는 증권사 임직원 39명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는 일이 있었다. 금감원은 신한금융투자 직원 12명에 대해 견책을 포함한 문책과 2,5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렸다. 차명으로 주식 거래를 했던 게 문제가 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의 한 대리는 부인 이름 계좌를 써서 주식 30개 종목에 최대 5,500만 원을 투자했지만, 이를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계좌를 여는 과정에서 실명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또 교보증권도 임직원 23명이 두 개 이상의 계좌를 열고 최대 14억 2,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사 임직원은 특별한 경우를 빼면 자기명의로 된 계좌 하나만 열어야 한다. 이번에 적발된 임직원들이 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적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달 초에는 미래에셋증권의 대리급 직원이 고객 돈 21억원을 뽑아 다른 증권사의 주식워런트증권(ELW)에 투자한 사실이 적발됐다. 8월에는 한화투자증권 직원이 고객이 맡긴 증권카드를 이용해 고객 돈 2억 5,000만 원 가량을 횡령해 이슈가 됐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7월에는 하나대투증권에서 금전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사실 증권사들이 금융사고를 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잇달아 적발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고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사건이 일어났던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시가 어려워지다보니 고용도 불안정해지고, 급여도 줄었는데, 실적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졌다”며 “법을 어긴 동료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 잘릴 지 모른다는 마음 때문에 유혹에 빠지지 않았겠냐”는 동정론을 내놨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가에선 이 정도 규모의 사건·사고는 비일비재하다”며 “금감원이 증권사 기강잡으려고 주는 처벌에 움츠러들면 지금 같은 업황에 살아남기 더 힘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解弛)가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장된 증권사들은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을까봐 금융사고를 알아차려도 금감원에 보고하거나 공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엄격하게 제재를 하지 않고 그저 주의나 경고를 주는 정도에 그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내부 시스템 허점 이용한 범행 잇따라
지난달 미래에셋증권 직원의 21억 횡령사건을 되짚어보자. 금융당국과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경기도 분당 M지점 직원 A씨가 고객 돈 21억 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회사 자체 감사를 통해 적발했다. A씨는 입사 6년차 대리로 지난 1년 동안 고객 11여 명의 계좌에서 약 21억 원을 인출해 타 증권사에 지인 명의로 개설한 계좌를 통해 주식워런트증권(ELW)에 투자했다. 투자한 금액은 대부분 손실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범행 적발 당일 A씨를 M지점 지역 관할 경찰서에 고발 조치해 현재 A씨는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 또한 미래에셋증권은 회사 차원에서 이 직원을 해직 조치해 징계했고, 피해 고객들에게 피해금액을 보전해주겠다는 의사를 전한 상태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금감원에서 공문이 내려와 횡령과 관련 실태조사를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해당지점 계좌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해 경찰에 신고조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객 중 컴퓨터를 잘 못 다루는 분들에게 업무상 필요를 이유로 비밀번호를 알아내 증권카드 등을 입수해 돈을 빼돌렸다”며 “출금 전표를 필요 이상으로 발급받는 등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직원 업무내역을 일일이 지켜볼 수 없기 때문에 범행 파악이 늦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직원이 고객 돈을 횡령하는 유사한 금융 사고는 앞서도 발생했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B증권사의 모 지점 영업사원 C씨가 올해 3월부터 수개월간 고객 돈 2억 5,000만 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자체 감사에서 적발됐다. C씨는 고객이 맡긴 계좌의 비밀번호를 알고서 돈을 인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횡령 건은 사측에서 고객에게 통보되는 잔액통보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자 한 고객으로부터 “계좌에서 잔액이 줄어든다”는 항의 전화를 받은 후 자체 감사를 벌여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고객은 1명인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고, 횡령액은 피해 고객에게 전액 보전된 상태다.
B증권사는 최근 금융감독원에 이 같은 금융사고 사실을 통보했고 금감원은 해당 증권사에 감사 결과와 내부통제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점검 결과를 통보하도록 주문했다. B증권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내부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범행이었다”며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내부 시스템을 점검, 강화하고 직원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증권사는 관련된 직원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상태다. 이는 해당 사건에 대해 자체적인 조사를 마무리한 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다음 경찰 신고를 한다는 내부 방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B증권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고객 돈에 손을 댄 직원은 퇴사 조치가 확실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근본적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 필요
증권업계가 불황으로 침체의 늪에 빠지다 보니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경기 부진으로 증권사 실적이 좋지 않고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이 과정에서 불법·편법을 통한 사건·사고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
실제 증권사들의 금융사고는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22건으로 전년 16건 대비 37.5% 늘어났다. 사고금액은 80억 5,000만 원으로 2011년(84억 5,000만 원)에 비해 소폭 줄었다. 연도별로는 2008년 11건, 2009년 8건, 2010년 20건을 기록했다.
이는 증권사들의 실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다 보면 탈법, 편법 등의 무리수를 동원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해 불경기에 고객의 돈에 유혹의 손길이 뻗칠 수 있음으로 금융회사가 내부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금융당국이 철저한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금감원은 반복되는 증권업계 횡령사고와 관련해 전 증권사에 공문을 보내 내부통제에 대한 자체점검에 착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달 말까지 증권업계의 보안 사항을 점검하고 개별 증권사별로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금감원 측은 일부 보도를 통해 “현재 개별 증권사별로 보안 상태를 점검 중”이라며 “점검 후 문제가 있는 곳은 검사를 진행해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단히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직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근본적인 시스템상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언론을 통해 “사고가 터지면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돌리니까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개인과 회사를 엄격하게 제재하는 수단을 강화하고 거래 상황을 매일 감시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