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침체에서 허덕이던 유럽 경제가 최근 들어 회복신호를 보이고 있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2분기 유로존 경제는 1분기에 비해 0.3% 성장했다. 1999년 출범 이후 가장 오랜 기간 침체를 겪어 온 유로존 경제가 2011년 4분기 이후 6분기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 또한 국가 간 경쟁력 불균형도 다소 완화되고, 재정위기 국가들의 유로존 탈퇴 및 붕괴 발생 가능성도 낮아져 금융시장도 안정세를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유로존 산업생산은 전월대비 0.7% 증가했다. 전년동월대비로는 0.3% 증가하며 20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에서 벗어났다. 구매관리자지수(PMI)도 긍정적인 전망을 가능케 했다. 제조업 PMI는 7월에 경기확장 기준선인 50을 넘었고 8월에도 51.7을 기록하며 2개월 연속 확장세를 보였다. 서비스업도 19개월 만에 경기 확장 기준선을 상회하는 50.2%를 기록했다.
IMF, OECD, ECB 등 주요기관의 유로존 경제 전망도 낙관적이다. OECD 선행지수는 지난 3월, 1년 4개월 만에 기준선(100)을 상회한 이후로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으며, 유로존 경기기대지수 8월, 역시 44개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9월에도 기세를 몰아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9월27일 “유로존의 9월 경기기대지수가 전달보다 1.6p 오른 96.9를 기록했다”면서 “산업 전 분야에서 신뢰가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건설과 소매 판매 부문에서 개선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자들도 유럽의 경기회복에 낙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가 매월 실시하는 투자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8월 유럽담당 펀드매니저의 88%가 향후 12개월 간 유럽의 투자 전망이 밝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장 불안심리 크게 완화, 스트레스 최저치
낙관적인 전망 덕에 금융시장도 안정세를 찾고 있다. 지난해 7월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ECB에 부여된 책무 안에서 유로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한 이후 금융시장의 불안심리가 크게 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유로존 존속과 개혁에 대한 유럽당국의 강력한 의지 표명도 이어지면서 유로존 붕괴와 같은 극단적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한층 낮아졌다. 이에 유럽 금융 시스템상의 불안정 정도를 측정하는 ECB의 구조적 스트레스 종합지수도 안정세를 나타내면서 지난 8월에는 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금융시장의 안정세에 가속도가 붙자 각종 경제심리지수도 반등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에서 발표하는 유로존 경기체감지수(ESI)는 2011년 이후 지속된 하락세가 2012년 12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기업의 경기 판단과 기대를 나타내는 기업환경지수(BSI)와 소비자의 경기 인식과 전망을 나타내는 경기신뢰지수(CSI)도 각각 지난해 10월과 11월부터 반등해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경제규모 상위 2개국인 독일, 프랑스가 회복 주도
2분기부터 유로존이 6분기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데에는 수출이 급반등한 것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2분기 연속 감소했던 수출은 올 2분기 1.6%로 반등에 성공했고, 내수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면서 경기회복에 기여했다. 투자도 마이너스 성장을 멈추고 플러스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 2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다가 지난해 4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세로 전환된 이후 최고 0.4%까지 증가하며 내수 회복에 힘을 보탰다.
유로존 중심 국가들의 경기 개선도 플러스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유로존 국가 중 경제규모 기준 상위 2개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서 유로존 회복을 주도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전분기 대비 각각 0.7%, 0.5% 성장했다. 유럽 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2013년 1분기 0.1%에 이어 2분기 0.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2012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회복세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2개의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연이어 국가신용등급 하향 판정을 받아 우려를 자아냈던 프랑스 경제도 2분기 중 반등에 성공했다. 전분기 -0.2%였던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 +0.5%를 기록하며 2012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률을 나타냈으며 수출 역시 1분기 -0.5%에서 2분기 2.0%로 증가했다.
하지만 상위 5개국 중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의 경기는 여전히 먹구름이다. 이전의 침체 폭보다는 개선되는 모습이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의 2분기 성장률은 각각 -0.2%, -0.1%, -0.2%를 기록하면서 부진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크게 감소한 가운데 수출이 증가하면서 경기침체 속도를 줄였고, 스페인은 올해 2분기 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회복세를 기대할 수 있게 했으며, 네덜란드 역시 소비 감소로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역성장 폭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독일, 프랑스에 비해 규모도 작을뿐더러 2분기 들어 침체 폭도 축소되면서 성장에 대한 기여율은 -20.7%에 그쳤다”면서 “결과적으로 이들 국가의 역성장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상위 2개국이 선전하면서 전체 유럽경제의 성장이 모처럼 플러스로 전환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로존 위기 원인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 완화
유로존 중심 국가들의 수출회복세가 경기 개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경상수지 불균형 완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국가 간 불균형은 그동안 유로존을 위기에 빠트렸던 원인 중 하나였다. 이러한 점에서 경기가 회복되는 동시에 위기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 네덜란드 등의 북유럽 중심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시현했던 ‘GIIPS’ 국가들이 적자폭을 크게 줄이면서 나타나고 있다.
2010년 3분기 이래 아일랜드는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스페인도 경상수지 흑자 대열에 합류했고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등 나머지 주변국들도 적자폭을 줄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4%∼15.5%에 달했던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2013년 1분기 0.1%∼2.2%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서 독일, 네덜란드의 GDP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3년 1분기 각각 11.0%, 7.1%로 위기 이후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중심국가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주변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줄어든 것은 중심국의 무역 구조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위기 이후 북유럽 수출 주도 국가들은 유로존 역내에서는 수입을 확대하고, 역외에서는 수출을 확대해 왔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역내 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하던 독일이 위기 이후 중국, 브라질, 미국 등 역외 국가와의 무역에서 흑자 폭을 크게 늘리고 있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2010년 1분기 유로존 역내의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역전된 이후 올해 1분기에는 역외에서의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71%로 2004년 이후 최대치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유로존 불균형 개선이 주변국의 긴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회의적이다. 긴축을 통해서 내수 침체를 장기간 유발시켜야만 지속할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며, 실제로 최근 유로존 곳곳에서 긴축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로존 주요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히고 있다. 또한 긴축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EU에 대한 저항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장기간의 내수 공백은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게 되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또 이에 따라 인적 자본 등에 대한 투자를 약화시키고, 고급인재의 해외유출을 가속화시켜 장기적으로 경제에 손실을 입히게 된다.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 경기회복 제약 요인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는 유럽의 수출 증대를 통한 경기 회복세를 제약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유로존 중심국은 내수가 부진한 주변국을 대신해 신흥국에 대한 수출을 크게 늘려왔다. 이렇듯 중심국이 무역 포트폴리오 변화를 통해서 유로존 역내 수출을 줄이고 중국, 브라질, 인도, 태국 등 신흥국에 대한 수출을 확대했기 때문에 역내 경상수지 불균형 완화가 가능했다. 주변국의 경상수지 불균형 개선과 금융 불안 완화는 유로존 회원국 간 실시간 총액 결제시스템(TARGET2)의 불균형 완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까지 균형에 가깝게 유지되던 TARGET2 계정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국가 간 불균형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재정위기의 시작점인 주변국에 대한 자본이탈이 급증하는 가운데 주변국의 무역적자가 지속되면서 발생한 국제수지 불균형을 ECB에 개설된 TARGET2 계정 상에서 중앙은행 간 공적 차입을 통해서 해소해 왔던 것. TARGET2 계정의 불균형은 작년 8월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모양새다. 주변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축소되는 가운데 은행 간 자금시장의 신용이 개선되고, 뱅크런 우려를 자아냈던 주변국에서의 예금 이탈, 주변국 국채의 투매 등 자본도피가 완화되면서 TARGET2 계정의 불균형도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taper) 발언으로 신흥국에 대한 자본 유출이 확대되면서 신흥국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변국에 대한 수출 부진을 신흥국 시장에서 메워왔던 중심국의 성장 방식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신흥국의 위기로 인한 독일 수출 둔화는 독일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생산체인으로 연결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동유럽 국가의 경제에도 큰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흥국 위기로 인한 유로존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침체 벗어나도 빠른 회복세는 어려워
2012년 하반기 드라기 총재의 “유로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유로존 지원 발언 이후 유로존 붕괴 위험이 줄어들고 금융시장이 안정화 되는 가운데 올해 2분기 주요국 수출의 호전으로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전환됐다. 특히, 독일 등 중심국에서 위기 이후 역내 경상수지 흑자규모를 대폭 줄이고, 역외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늘림에 따라 중심국과 주변국의 수출이 모두 회복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의 성장세가 중심국의 신흥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 확대와 주변국의 내수 위축에 기반하고 있어 본격적인 회복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주변국의 수출경쟁력 개선은 아직 더딘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은 위기 이후 환율 조정이 불가능한 대신, 임금 삭감과 물가 하락 등을 통해 경쟁력 회복을 도모하는 내적 절하 과정을 진행해 오고 있다.
유로존이 위기에 빠지기 전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중심국의 임금은 생산성 향상에 비해서 억제되고, 주변국의 임금은 생산성에 비해 가파르게 상승했다. 위기 이후에는 이 같은 추세가 역전되고 있다. 생산성대비 임금수준을 나타내는 단위노동비용의 경우 주변국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위기 임금상승을 억제해 왔던 독일은 위기 이후 임금 상승이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유로존 출범 이후 10여 년간 누적됐던 경쟁력 격차가 조정되는 데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리 빨라도 2015년 후반기 이후에나 중심국과 주변국의 단위노동비용이 수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인한 사회문제 대두, 기업 부도,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인한 역내 금융기관의 부실 지속 등의 위험 요인이 유로존 내부에 여전히 함께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출구전략과 신흥국의 경제 위기 등 외부의 위험 요인도 도사리고 있어 향후 유로존 경제는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더라도 빠른 회복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극복해야 할 정치적 난관들 산적
내수위축과 물가하락으로 인해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경우 유로존 경제는 과거보다 더한 파국에 치달을 수 있다. 현재까지는 유로존의 존속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유로존 경제의 미래는 단기적으로 긴축 정책의 수정 여부와 장기적으로 재정통합으로의 이행 과정이 얼마나 원만히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독일이 주도한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 유럽집행위원회의 재정적자 감축 기한 연장을 계기로 긴축정책에서 성장정책으로 정책 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 은행동맹, 유럽부채상환기금 등 재정통합으로 가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금융거래세의 신설을 통한 연방재정 확보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유로존의 구조적 결함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정치적 난관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가운데 드라기 총재는 23일 브뤼셀 유럽의회에 출석해 “유로존 경제가 더딘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기 총재는 “최근의 경기 지표로 볼 때 3분기에도 회복세가 계속될 것이지만 회복은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며 “굳건한 회복을 위해서는 확고한 기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유럽의회는 지난 12일 ECB에 유로존 6,000개 은행에 대한 통합감독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은행연합 구축의 핵심 제도의 하나인 단일은행감독체제가 출범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는 “은행단일감독기구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히면서 일괄적인 부실은행 처리 방안도 2015년까지는 마련할 수 있도록 유럽의회의 협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