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북측은 이번 연기의 책임은 “남조선 보수패당에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에 대한 반감과 악의를 선동해 북남관계 개선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반민족적 기도의 발로“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가장 큰 외화 자금줄 가운데 하나였던 금강산 관광산업 재개에 있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자 남측을 압박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연기 발표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 준비를 위해 현지에 체류하며 행사를 준비하던 우리측 선발대 및 시설점검 인력 70여명은 22일 금강산에서 전원 철수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화와 협상의 정상적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상봉 행사를 연기할 것이며 10월 2일로 예정된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도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조평통은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금강산관광 관련 회담을 연기한 배경과 관련해 “북남관계가 남조선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소동으로 하여 또다시 간과할 수 없는 위기에로 치닫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우리 정부가 최근 남북관계 성과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결과’니, ‘원칙있는 대북정책’의 결실이라고 떠들고 있고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돈줄’ 등을 언급하며 중상했다”고 주장했다.
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구속 사건과 관련해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와 억지로 연결시켜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과 통일을 주장하는 모든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대 ‘마녀사냥극’을 미친듯이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측이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자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준비한 상봉을 불과 4일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북측의 연기는 며칠 후면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푼 200여 가족의 설렘과 소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것”이라며 비판했다.
북한의 갑작스런 지연 소식을 전해들은 이산가족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남북이산가족협의회의 심구섭 회장은 “이산가족들은 벅찬 기대감에 매일 밤을 뒤척였고 그와 동시에 지난 60년간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만나면 어떨지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며 “굉장히 낙담한 상황이지만 북한이 취소가 아닌 지연이라고 했기 때문에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대를 모았던 상봉이 암초를 만나면서 청와대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북측의 연기 통보에 대해 보고받고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상봉이 무산되더라도 기존의 원칙론이 변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북측이 금강산 관광재개를 연계하기 위해 상봉을 연기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의도대로 양보하진 않을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남북이 일시적 냉각기를 맞더라도 대북원칙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편,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지난 5년간 중단됐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정부는 북한이 해당 사건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관광객의 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