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계층을 중심으로 맞춤양복이 인기를 얻고 있다. 1960~70년대 기능올림픽의 기점으로 맞춤양복이 전성기를 이뤘으나 1980년대 쇠퇴기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획일화된 패션보다 개성을 창출하고 싶은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하는 양복재단사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맞춤양복 재단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노하우와 경력을 인정받아 세계에서 인정받은 이가 있어 찾았다.

40년 전통기술, 금창테일러
1969년에 출범한 ‘김석창테일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맞춤양복 전문점이었다. 그 시절 맞춤양복은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정치·사회나 재계인들, 또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로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 장인 아래에 최원래 대표는 1983년에 김석창테일러에 입사해 수제자로 일했다. 오랜 시간 옆에서 일해 온 그는 김석창 선생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약 20여 년 전, 김석창 대표가 작고한 뒤 경영을 이어받아 현재 ‘금창테일러’(부산시 중구 동광동 2가 2-2 / http://kuemchang.alltheway.kr)로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가 양복업계에 입문한 것은 지난 1978년경. 그는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맞춤양복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갈 때였고, 300여 곳의 양복점이 광복동 일대에서 호황을 누렸다”고 회상했다. 최원래 대표는 부산 광복동 일대에서 명성이 높았던 김석창테일러를 찾았고, 당시의 김석창선생이 어린 최원래 대표의 뛰어난 눈썰미와 응용력, 빠른 기술과 습득력 등 차분한 성격과 꼼꼼한 일처리를 눈여겨보며 매우 흡족해 했다고 전했다. 기술을 빨리 습득한 최 대표는 1980년도 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했고, 85년도 전국주문신사복 기술경진대회에서 당시 최우수대상을 수상했다. 최원래 대표는 “언제나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40년 전통의 기술과 세심한 정성으로 항상 고객의 중후함과 풍부한 기품을 표현하고자 한다”며 “특히 내 자신은 진정한 MASTER TAILOR로서 자부한다”고 밝혔다. 즉, 마스터테일러는 양복 한 벌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장인을 뜻한다.
실력 인정받아 많은 수상경력을 쌓다
금창테일러 최원래 대표는 지난 8월5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35차 세계주문양복연맹 총회 기술경진대회에서 ‘아이보리 턱시도’를 출품해 세계 각국 참가자들과 겨뤄 최고의 대상(고용노동부장관 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전체적인 실루엣과 세심한 기능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에 최 대표는 “세계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돼 어느 상보다도 값진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계기로 더욱 기술개발과 후배양성에 노력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턱시도는 예복이다 보니 일반 양복에 비해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에 기술력을 높게 평가 받았다”라며 “턱시도는 깃과 전체적인 실루엣이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곡선미가 생명”이라 강조했다. 덧붙여 “깃 부분 소재가 인견이고 아이보리 색상이다 보니 흠이 잘 날 뿐만 아니라, 작업 중 손에 땀이 나면 얼룩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손을 수십 번씩 씻어가면서 작업을 했다”며 “국제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해 정말 뿌듯하다”고 기쁨을 전했다.

자부심으로 맞춤양복 명성을 이어갈 것
금창테일러의 가장 큰 장점은 원단의 성질이 다르며 기성복과는 달리 고급의 원단을 소재로 직접 제작한다는 점. 만들 때 원단 사이 심지를 넣어 한 번 더 고정을 하기 때문에 옷의 변형을 막고 드라이를 자주하거나 오래 입어도 원형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어 생명력이 길기 때문에 기성복에 비해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맞춤양복은 한 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재손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15일 정도의 시일이 소요되지만, 품질 우수성을 생각한다면 작품을 완성하기에는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다. 따라서 “장인정신으로 한땀 한땀 정성이 깃든 옷이기에 보다 애정이 더 간다”고 전하는 최원래 대표는 ‘100% 완벽이란 것은 없다’라며 “아무리 자신 마음에 드는 작품일지라도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은 실패작이다”고했다. 이어 “심혈을 기울여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왔을 때는 그것보다 더 큰 희열감을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하며, 고객의 마음까지 맞춰줄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한 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그는 찾아오는 고객들의 스타일이나 취향 등 한눈에 통찰하며, 고객들의 직책이나 직위, 종사업종에 잘 맞춰 양복을 재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디자이너는 진정한 장인이 되어야 하며, 고객의 마음까지도 놓치지 않고 작품 속에 담아내야한다”고 피력하는 그는 맞춤양복은 기성복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며, 외국에서역시 우리나라 기술은 인정받는다고 한다. 기성복이 보편화되고 언젠가부터 맞춤복이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장인정신을 이해해주는 소수의 고객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하는 최원래 대표. 그의 자부심과 값진 열정으로 앞으로의 맞춤양복의 우수성과 예술성이 빛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