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가장한 18조 원 불법게임 ‘한탕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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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가장한 18조 원 불법게임 ‘한탕의 유혹’
  • 김득훈 부장
  • 승인 2013.08.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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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에서 태블릿PC 이용한 인터넷 도박까지 … 갈수록 수법 교묘해져

 서울 송파구 상일동에서 2010년 11월부터 PC방을 운영하던 김 모씨(37)는 PC방만으로 큰돈을 벌기 어렵다고 생각해 ‘다른 부업’을 병행하게 됐다. PC방 손님들을 상대로 인터넷 도박을 할 수 있게 하면서 수수료를 챙기는 불법 인터넷 도박장이었다.

 
김씨는 손님들에게 현금을 받아 인터넷 도박게임에 접속 가능한 쿠폰을 제공했다. 게임은 화면에 고래나 상어 같은 특정 동물이 등장하면 점수를 획득하고 딴 점수에 따라 베팅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게임을 마친 손님들은 누적 점수와 송금받을 계좌번호를 환전사이트에 입력하면 수수료 10%를 공제한 금액을 송금받을 수 있었다. 부업이 쏠쏠해지자 김씨는 석 달 만에 PC방을 접고 아예 사행성 게임장을 차려 게임기 40대를 설치해 운영하다가 결국 경찰에 적발됐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는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벌금 1억 2,650만 원을 선고받았다. 동부지검에선 지난 6월에도 외화 환차익 사이트인 것처럼 가장한 인터넷 도박장을 만들어 운영한 일당이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수법 더욱 교묘해진 불법 사행성 도박장
경기 불황 그늘이 짙어지면서 주춤했던 불법 사행성 도박장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최신 기기가 보급되면서 손쉽게 업종을 속일 수 있는 인터넷 도박장이 성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인터넷 도박장은 단순 인터넷 카페와 구분하기도 어려워 일선 경찰관들은 단속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들 불법 게임장은 월 30만 원으로 제한돼 있는 이용금액을 초과하거나 게임을 개·변조하는 등 편법 운영으로 범법 행위를 자행한다.
최근에는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이용한 인터넷 도박도 많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패드방’은 아이패드를 손님에게 빌려주고 여기에 깔린 사행성 도박게임 앱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주로 그림을 맞추는 릴게임류 앱이 많이 깔려 있고 포인트에 따라 환전을 받을 수 있다. 오픈마켓을 기반으로 한 안드로이드는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앱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어 다운받는 데 어려움도 없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1~2년 새 불법 도박으로 적발되는 아이패드방이 더욱 늘고 있다”며 “업주가 앱을 직접 다운받거나 게임할 수 있는 아이디를 직접 제공하면 처벌 대상이나 온라인 도박은 단속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단속으로 주춤하던 아케이드 형태 게임기를 설치해 영업하는 사행성 도박장들도 증가 추세다. 아케이드 게임은 전체이용가 게임이 게임장으로 유통되면서 자동진행되게 바꿔 놓는 등 도박을 위해 개·변조하면서 불법 게임으로 탈바꿈하는 사례가 많다.
게임물등급위원회 관계자는 “단속 나가면 영업장을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문을 닫거나 이중 삼중으로 문을 만들어 뜯고 들어가면 이미 전원을 꺼놓은 곳도 있었다”며 “갈수록 수법이 더욱 교묘해져 스위치를 누르면 불법 게임이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으로 바뀌도록 해 단속을 피하는 등 갈수록 단속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결과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포커와 승마 게임기 등을 수십 대씩 설치해놓은 기업형 사행성 게임장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박장과 관련 없는 업소에 설치돼 단속되지 않고 있는 불법 아케이드 게임기도 여전히 많다. 도박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30일에는 당구장을 운영하는 이 모씨(30·서울 중곡동) 역시 당구장 내에 등급 미분류 게임인 ‘체리마스터’ 게임을 설치했다가 관할경찰서에 적발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현행법상 등급 미분류 게임은 설치는 물론 진열하거나 보관만 해도 불법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구장 다방 등에 설치된 불법 아케이드 게임들도 적발되지 않고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실은 경찰 단속 통계로도 나타난다. 경찰청은 지난 6월24일부터 7월17일까지 4주 동안 불법 사행성 게임장에 대해 집중 단속을 펼친 결과 총 1,028건을 적발해 906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이 중 불법 상품권 환전 등 죄질이 무거운 16명을 구속하고 게임기 9,878대와 현금 3억 5,300만여 원을 압수했다. 특히 이 기간에 올해 경찰 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지난해에 비해 66.3% 늘어났다.
경기 불황 그늘이 짙어지면서 올해 경찰 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지난해에 비해 66.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사행성 게임장에서 적발된 주요 위반 사항은 불법 환전 602건, 등급 미필(바다이야기류) 205건, 개조·변조 게임 운영 102건 등이었다. 사행성 게임기를 50대 이상 들여 놓은 대형 게임장도 지난해에 비해 19.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단속 빈틈 노린 업소들 빠르게 확산
박근혜정부의 복지 예산이 97조 원이 넘으면서 세수 확보가 최대 국정과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오히려 지하경제만 커졌을 뿐 세수확보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그 중 불법사행행위(슬롯머신, 인터넷포커, 고스톱 등 불법으로 자행된 웹보드게임)는 지하경제 중에서도 규모가 아주 큰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음성적으로 활성화 돼 있어 단속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정부 단속의 빈틈을 노린 업소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문제로만 지적될 뿐이다.
불법사행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다이야기’로 불리는 슬롯머신 오락게임. 2004년 스크린 경마 게임을 만들던 회사 에이원비즈에서, 일본의 파칭코 게임인 우미모노가타리 시리즈에 착안해 만들었다.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를 도용한 불법오락기 제조가 시작됐다. 일명 ‘돈 넣고 돈 먹기’식의 게임 진행방식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몰리면서 엄청난 시장을 형성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상품권 환전’을 합법화해주면서 그 시장이 더욱 커졌다. 당시 도박 산업의 규모가 수십조 원에 달한다는 집계가 나돌았을 정도다. 업장을 20여 일만 운영하면 운영자가 가져가는 순수 이익이 수억 원에 달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업자 A씨는 “당시를 회상하면, 오락기기와 소프트웨어 구입은 용산전자상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한대 당 30~40만 원이면 구입이 가능했다”며 “업소 부지는 산이나 땅값 비용이 저렴한 곳을 선정한 후 주변 업소를 신고해 경찰 조사로 소탕 한 뒤 업장을 오픈하면 5일 이내에 원금을 찾고, 20일이면 수십배에 달하는 목돈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20일이 지나면 또 다른 업소의 제보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속사정을 귀띔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엔 이 산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뒤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서민피해가 확산됐고 그 부작용이 심하다는 이유였지만, 음성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단속은 쉽지 않다. 오히려 오락실 환전용으로만 쓰이던 문화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면서 정상적인 소비활동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지하경제만 살찌우는 계기가 됐다.
문화상품권을 사용하는 일부 업소도 이 상품권을 들고 인근 게임환전소에 내면 수수료를 뺀 만큼의 차익을 현금으로 돌려줬다.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돈이 음성적으로 거래가 된 셈이다.

기는 ‘단속’, 나는 ‘신종 불법 게임’

▲ 불법 게임장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출입구를 철문으로 막아 놓은 채 단골손님들에게만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한 달, 경찰의 특별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모두 천여 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급증했다.
정부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인 근절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충남 논산경찰서는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의 폐창고에서 사행성 게임기를 설치해 놓고 영업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현장을 급습해 업소에 설치된 ‘바다이야기’ 게임을 하는 모습을 포착, 업주 및 종업원을 검거했다.
검거된 업주 피의자 B씨(39세)등 4명은 검거당일까지 주택가 인근의 폐창고에서 무등록게임장을 운영하면서 사행성 유기기구인 ‘바다이야기 30대, 오션파라다이스 30대’ 등 총 60대를 설치하고 손님을 모아 영업하며 현금으로 환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업주인 피의자 B씨는 경찰의 단속에 대비해 농촌지역 폐창고를 임대해 영업장을 개설했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영업사실을 문자메세지로 전송한 후, 연락이 올 경우 미리 준비한 차량에 태워 영업장으로 손님을 태우고 온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특히 차량에 손님을 태울 경우 영업장소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차량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도록 차량의 유리창을 가려 영업장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다.
김효수 논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장은 “최근 경찰의 집중적인 사행성게임기 단속에 대비해 농촌의 폐창고, 비닐하우스 등으로 영업장소를 옮겨 사행성 유기기구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유기기구 단속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도박사업자 대부분이 이젠 온라인 도박에 집중하고 있어, 단속도 잘 안되고 수입도 수 십억원에 이르기에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여전히 바다이야기가 성행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그는 “PC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릴게임 등 다양한 방식의 신종 불법 게임이 등장하면서 그 수법이 더욱 교활해졌지만 지속적인 단속을 통해 근절대책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게임 특성 상 인터넷 연결만 되면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설치할 수 있고, 불특정 다수가 집이나 사무실에서 사이버머니를 충전해 불법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 주요 포털사이트와 게임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는 ‘대한민국대표 릴게임’, ‘최고 X300 배당의 고배장’ 등의 광고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합법을 가장해 지하경제를 키우는 산업도 있다. ‘게임 아이템’거래다. 문제는 이것이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일부 불법 사업자들은 ‘아이템 공장’이라는 것을 운영한다. 조그만 방에 컴퓨터 여러 대를 설치 한 후 게임을 통해 습득한 아이템을 거래 시장에 유통하는 것이다. 이 역시도 당사자간의 현금으로 거래 돼 세금 징수를 피하고 있다.

정부-업계 ‘아케이드게임 살리기’ 온도차

▲ 전문가들은 지난해 불법 사행성 게임업은 매출액 규모만 18조 7,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최신 기기가 보급되면서 손쉽게 업종을 속일 수 있는 인터넷 도박장이 성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인터넷 도박장은 단순 인터넷 카페와 구분하기도 어려워 일선 경찰관들은 단속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사행성 낙인이 덧씌워졌던 업소용 아케이드 게임 업종에 대한 해금을 두고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속도와 방안을 두고 현장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양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건전 게임 지원 등의 진흥책과 민간 자율심의 등의 안을 내놓고 있으나 업계 일각에선 기존에 유지돼온 규제 완화를 청구하며 더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양상이다.
지난달 유진룡 문체부 장관은 건전 아케이드 게임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업체 대표들과 미팅을 갖고 산업 내 현안 전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가졌다. 유진룡 장관은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아케이드 게임 지원을 논하면 사행산업을 조장하는 것으로 오해를 샀다”고 말문을 연 뒤 “일부 사행성 게임을 제외하면 건전 아케이드 게임, 기능성 게임은 여가문화와 사회 인식 개선 등에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를 육성해 나갈 필요 또한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체부와 게임물등급위원회는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보수적인 심의기준과 각종 규제를 적용하며 해당 업종의 사행화 방지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이 이어짐에 따라 전임 최광식 장관시절부터 조금씩 해당 업종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왔는데, 현장에 복귀한 유진룡 장관이 7년만에 해당 업종에 대한 진흥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문체부는 사행성 우려가 없는 건전 우수 아케이드 게임에 한해 사전제작 지원금을 지급하는 진흥안을 우선 내놓은 바 있다. 업계 인사들은 “게임 출시 전 전기안전검사 등의 사전점검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만큼 이를 단축해야 한다. 해외 진출을 위한 사전 테스트가 필요하나 시장 여건상 이를 수행하기 어렵다” 등의 고충을 털어놨다. 유진룡 장관은 이에 대해 “산자부에 협조를 요청,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국내에 테스트베드를 개설하는 안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는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게임제공업소용 게임물에 대한 사행성 기준을 마련하고 청소년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점수보관 불허, 경품을 배출하지 않는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이용정보 표시장치 부착 의무 등의 규제를 철폐해달라는 취지의 청구를 제기했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뚜렷한 기준 없이 개별 게임이 사행화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심의를 내주지 않는 사례가 많았던 만큼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며 점수 보관 불허, 운영정보 표시장치 부착은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와 관련,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 관계자는 “신설 게임물관리위원회 출범 이전 사행성 게임물에 대한 정의를 도출해낼 예정이며 점수 보관 불허, 이용정보 표시장치 등은 게임의 사행화를 막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해온 만큼 그 유지가 필요하다”며 “제작 및 유통사의 활성화와 일반 이용자들의 보호 두 가지 측면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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