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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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의 위기
  • 글/이상현 부장
  • 승인 2006.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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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조차 외면하는 이공계, 해법은 없나
대학도 구조조정 분위기, 사회경제적 보상 필요
최근 잇따른 정부의 이·공계 우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광주·전남의 과학영재가 진학하는 광주과학고와 전남과학고의 올 신입생 중 10.7%가 의사나 한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등 25%가 이공계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5.7%가 가고 싶은 대학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꼽는 등 대부분 타지역 대학 진학을 선호하고 광주·전남권 대학 진학 희망자는 한 명도 없어 지역 대학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 같은 결과는 한 일간지가 광주과학고 1학년 61명과 전남과학고 1학년 70명 등 1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조사결과, 장래 희망 직업을 묻는 질문에 의사와 한의사가 각각 9.2%(12명)와 1.5%(2명)으로 모두 10.7%에 달했다. 연구원이나 교수라고 응답한 학생은 71.8%(94명)에 그쳤다. 이외 엔지니어 2명, 컴퓨터 프로그래머 및 컴퓨터보안전문가 각 1명 등이었다. 10.7%(14명)는 아직 장래 희망 직업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진학 희망 대학에 대해서는 55.7%(73명)이 KAIST라고 답했고, ▲서울대 15.3%(20명) ▲포항공대 6.1%(8명)) ▲연세대 2.3%(3명) 등의 순이었다. 광주·전남권 대학은 한 명도 없었다. 9.9%(13명)은 응답하지 않았다.
과학고 진학동기에 대해서는 83.2%(109명)이 본인 스스로 선택했다고 답했다. 특히 이 중 9.2%(12명)는 2학년을 마치고 조기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과학고에 입학했다고 밝혔다. 부모와 교사의 권유에 의해 진학한 학생은 10.7%(14명)였다.
중학교 재학 중 학원 수강 여부를 묻는 질문에 92.4%(121명)가 다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전체의 60%가량이 2∼3년 동안 계속 학원에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수강과목은 1과목 9.1%(11명), 2과목 33.1%(40명), 3과목 26.4%(32명), 4과목 15.7%(19명), 5과목 14%(17명) 등으로 3과목 이상이 43.8%에 달했다. 수강 과목(복수응답)은 수학 90.9%(110명), 영어 77.7%(94명), 과학 71.9%(87명), 국어(논술) 32.2%(39명) 등 순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각각 65.6%(86명)와 34.4%(45명)였고, 출신 중학교는 공립이 68.7%(90명), 사립이 31.3%(41명)이었다.

참여정부 들어 이공계 위기 심화
한편, 참여정부 들어 다양한 이공계 활성화 정책이 펼쳐지고 있으나 이공계 위기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과학기술시민단체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상임대표 이병기 서울대 교수)은 최근 이공계 대학 교수·연구원·대학생 등 2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8.7%가 ‘이공계 위기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이공계 위기가)해결되고 있다’는 응답은 15%에 그친 반면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율은 36.3%에 이르렀다.
연령, 직업별로는 젊은 대학생에 비해 40대 이상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이공계 위기에 대해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이공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과학기술 관련 직업의 불안정성’(45.2%)과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홀대’(41.1%)를 꼽았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이공계 대학에 진학한다면...’이란 질문에는 ‘자녀의 선택에 맡기겠다’(60.3%)는 답변이 대세였지만 ‘이공계의 현실을 설명하고 다른 전공을 선택하도록 말리겠다’(21%)가 ‘적극 지지하고 격려 하겠다’(18.7%)는 응답보다 많았다.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의 이공계 비중은 OECD 국가중 최상위 수준으로 공급 과잉인 반면 우수한 청소년의 이공계 진학률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라며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적절한 사회 경제적인 보상과 연구개발 이외의 다양한 부문으로 진출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공계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관계자도 “지금까지 이공계 활성화 정책은 교육의 질적 제고와 우수 청소년의 이공계 유치 등 공급 정책과 단기적인 수요 촉진 정책에 치우쳤다”면서 “앞으로는 민간기업의 박사급 연구인력 흡수 능력을 현재의 15%에서 50% 이상으로 확대하고 대학 정원제의 신축적 운영, 교육 내용의 혁신을 통한 대학의 시장 대응력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대학 구조조정 1순위는 이공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이 공과대 정원을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주원인이다.
우수 학생이 법대, 의대 등으로 몰리면서 공대는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 이는 대학들이 공대 정원은 12∼17% 줄이면서도 법대, 의대 정원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들 3개 대학뿐이 아니다. 한양대는 2007학년도까지 정원 564명(전체 정원의 10.27%)을 감축하는 가운데 이공대에서 228명(현 공대 정원의 11.1%)을 줄인다.
성균관대도 감축정원 400명 중 130명이 공대 정원이다. 공과대 정원 감축과 관련, 정원을 줄여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자는 의견과 정원 감축이 오히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서울대 공대 A교수는 “1990년대 공대 정원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학생들이 의·치대 등으로 몰리면서 학생 수준이 낮아졌다”며 “예전에는 학생들이 우수해 수업 수준이 높았는데 요즘엔 한 수업에서도 학생 간 학력차가 커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면 많은 학생이 이해를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는 입학생의 수능점수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대입 수능점수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1994년 입학생의 평균 점수가 99.3점에 달했던 A공학과는 2003년 96.03점으로 떨어졌다. I대 공학과의 경우 1994년 94.34점이었으나 2003년엔 78.17점으로 무려 16.17점이나 추락했다.
입시학원인 대성학원이 만든 2005학년도 수험생 배치등급표에서도 전국의 모든 의대와 한의대가 1∼4급간에 들어있다. 강원대 의대와 서남대 의대를 제외한 나머지 의대는 모두 3급간에 들어있다. 그러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는 3급간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마나 공대에 들어온 우수 학생들이 학부 과정에서 유학가는 사례도 많다. 이에 따라 공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도 정원 감축의 주요 이유다.
연세대 관계자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적정 수준으로 학생 수를 낮추자는 내부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선도적 역할을 해온 대학들이 공대 정원 감축에 나서면서 전국 공대에 파장이 일고 있다. 각 대학이 구조조정을 할 경우 공대가 가장 먼저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기술정책대학원과정)는 “학생의 질적 저하에 이어 공대 정원까지 줄이면 이공계 기피가 더 심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이공계 출신이 많아야 가치가 창출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진다”며 “출산율이 낮아지고 인구가 고령화되는 마당에 공대 정원 감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기술 변화에 따라 이공대도 변화가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우수 대학들은 사회적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보다 이공계 교육을 활성화시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술한국 뿌리가 흔들려
기능한국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5회 연속 및 통산 14차례 종합우승을 거두며 세계의 주목을 끈 한국선수단은 2일 끝난 제38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둬, 기능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기능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싣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시절(1985년까지)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어쩌다 이렇게 됐냐”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핀란드 헬싱키에서 벌어진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를 땄다. 메달을 점수로 환산하면 77점을 얻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대회까지의 집계방식인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 하면 6위로 무려 5단계나 떨어졌다.
1977년 우리가 첫 종합우승을 거둔 23회 네덜란드 대회에 출전했던 류병헌 씨(48·금형업체 운영)는 “이번 기능올림픽 소식을 접하고 눈물이 났다”면서 “기능인 출신임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 왔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1999년 캐나다 대회를 제외하고 줄곧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금메달 수가 반의 반 토막이 난 것은 분명 ‘운’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동계 전문가는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술 기피현상과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 직업관이 기능 인력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등 최근 뜨는 첨단산업분야도 중요하지만 기간산업을 외면하고는 절대 강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손기술뿐 아니라 산업변화에 맞게 지식연동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내실화가 절실한 것으로 요구된다.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부실화는 이제 정부 내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최근 감사원은 전국 23개 기능대학과 21개 직업훈련학교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저출산, 대학정원 과잉 등으로 2002년 이후 기능대 입학생은 정원 대비 80%대에 불과하다”면서 “또 중도탈락률이 32%로 정원대비 절반 정도의 재학생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다수 있다”고 밝혔다. 기능대학은 이에 대해 “군 입대자까지 중도탈락으로 집계돼 통계가 부풀려졌다”고 말했지만 재학생들의 자부심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중간기술자를 양성하는 목적의 직업학교 역시 134명 교육에 교직원 44명, 운영비 22억여 원을 투입하는 등 부실운영이 지적됐다. 그러나 직업훈련에 대한 국가적 육성과 지원이 없는 이상 구조조정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사회에 ‘새 피’ 역할을 해야 할 젊은이들의 활발한 기술습득만이 기능 인력난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젊은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5년째 필요한 기술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다는 박용호 사장(장비 제조업체 운영)은 “면접을 봐도 화이트칼라 쪽에만 지원을 하고 정작 필요한 생산직이나 기술연구직은 기피 한다”면서 “어쩌다 지원자가 있어도 능력미달인 경우가 많다”면서 현장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는 “화이트칼라와 똑같은 연봉을 주겠다는데도 사람이 안온다”면서 “기술인력 양성에 대한 집중적 지원과 국가적 홍보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정부, 이공계 고부가 인력 양성
정부가 3~4학년에 재학 중인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첨단 기술과 관련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단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교육에 참가한 기업에 취업할 때 가산점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 교육과 기업 실무 간 괴리를 좁히기 위해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와 함께 '고부가가치 산업인력 특별양성과정'을 신설, 공동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개설된 프로그램은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반도체 등 3개며 매해 2,000명가량의 대학생을 교육시킬 계획이다. 프로그램 시행 첫해인 올해는 1,300명 내외만 선발한다. 교육과 예산 지원은 사업단별로 이뤄진다. 대학이나 정부연구소가 기업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모하면 정부가 1억5,000만원에서 7억원 가량을 지원한다.
지역별로 사업단을 골고루 안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교육 후 가산점 등 취업과 관련한 혜택을 줄 용의가 있는 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뤘거나 첨단 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가능한 교육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대학을 우대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다.
강사의 50% 이상이 기업에서 파견된 실무자로 구성된다. 사업단 구성에 참가한 대학 학생들에 한해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나 대학이 아닌 연구소가 주축이 돼 사업단을 꾸렸을 경우 연구소가 지정한 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의 수업료는 무료다. 사업단이 부담하게 될 정부 지원 금액의 20%에 해당하는 대응투자비에서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

대한상의, “이공계대학 미취업자 우리 손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이공계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인재 ‘담금질’에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는 5월 8일부터 6개월간 강원인력개발원에서 산업현장 인력수급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미취업상태인 이공계대학 졸업생(전문대 포함)을 대상으로 직업능력개발연수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수를 위해 강원인력개발원은 ‘3D모델링 및 가공’, ‘메카트로닉스’ 2개 과정에서 총50명의 연수생을 선발했다. 연수는 전공 관련 기초이론을 습득하는 ‘단체교육’ 2개월, 현장기술 연수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전문연수’ 2개월, 기업체 실무 연수 2개월로 총 6개월간 실시된다.
연수생들은 단체교육 2개월 동안 30만원, 전문연수와 기업연수 4개월 동안은 50만원의 연수수당도 지급 받게 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연수단은 현장체험을 통해 적성에 맞는 직업선택의 기회를 갖게 돼, 고학력 청년실업 해소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밝히고 “금년 시범사업을 계기로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운영해 나갈 방침”이라 전했다.
대한상의는 이번 연수사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기업체를 대상으로 전문인력 수요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연수단 취업알선을 위한 기업체 방문 및 서울, 경기, 강원 지역의 취업센터 방문 등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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