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 빚이 1,100조 원에 달하면서 부채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실질가계부채는 1,098조 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52조 1,000억 원이 급증했다. 집주인이 주택을 팔아도 대출금과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 주택’인 담보가치인정비율(LTV) 80% 이상 대출도 3조 원을 넘었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손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하도록 하고 가계대출 증가율도 4% 이내에서 막는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소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권만 옥죄는 건 ‘백약이 무효’일 뿐. 주먹구구식 해법보다는 빚을 지지 않고 국민들이 살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늘어만 가는 ‘가계빚’ 한국 경제의 ‘뇌관’
국내총생산(GDP)과 국내총소득(GDI) 등 여러 경제지표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부동산 및 서비스 투자활성화 대책 등 정부 주도의 각종 경기부양책이 우리 경제 전반에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지만 실제 가계 살림살이 개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창간 53주년을 맞아 서울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기업지원 중심의 공급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경제부양책이 가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쪽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설문 결과 올해 들어 가계빚이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6%로 ‘줄었다(9.1%)’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변함없다’는 66.3%였다. 우리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택구입 또는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주거와 관련된 부채 증가가 30.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자녀교육(27.9%)’ ‘사업부진(25.5%)’ ‘의료비 부담 증가(6.1%)’ 등의 순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가계빚 증가는 자녀교육과 주택마련 등으로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40대에서 두드러졌다. 가계빚이 늘었다고 응답한 40대는 34.2%로 전체 평균인 24.6%를 크게 웃돌았다. 30대는 주택구입 또는 전월세 가격 상승과 관련된 부채 증가가 50.1%로 절반을 넘었다. 40대는 ‘교육비 부담’이 35.8%로 가장 높았고 50대 이상은 ‘사업부진(43.1%)’이 가장 많았다. 50대의 경우 ‘묻지마 창업’ 등 자영업자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주거비 걱정하는 중산층…공공요금 인상도 부담
주거비 부담은 월소득 200만~400만 원 정도의 중산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우리 경제의 허리역할을 해야 할 중산층이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주거비 부담이 늘었다’는 답변을 소득 수준별로 살펴보면 ▲100만 원 미만 35.7% ▲10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 43.9%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 44.4% ▲300만 원 이상~400만 원 미만 39.7% ▲400만 원 이상~500만 원 미만 32.7% ▲500만 원 이상이 35.1% 등이었다.
하반기부터 들썩거리고 있는 공공요금은 가뜩이나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는 서민가계를 더욱 주름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주거비 부담이 ‘늘었다’는 응답자(39.7%)를 대상으로 증가 이유를 물어본 결과 ‘수도세·전기세·유류비 등 주거 관련 공공요금 인상’을 꼽은 답변이 69.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전월세 가격 상승(21.6%)’ ‘주택대출 이자(11.7%)’ 등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에서 ‘주거 관련 공공요금 인상’ 답변이 77.1%를 기록해 평균(62.2%)을 크게 웃돌며 공공요금 인상에 취약했다.
올 하반기 살림살이 더욱 ‘팍팍’
정부는 지난 7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3%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뒤이어 한국은행도 2.6%에서 2.8%로 올렸다. 우리 경제가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2·4분기 성장률도 1.1%로 나아졌다.
정부의 이 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올 하반기의 가계 살림살이가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도 많았다.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반기 살림살이는 상반기에 비해 어떨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4.2%는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더 나빠질 것(22.9%)’이라는 답변이 ‘더 좋아질 것(12.8%)’이라는 응답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가계 살림살이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경향은 나이가 많을수록 강했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답변은 50대 이상 고령층에서 33.1%로 가장 높았고 40대 22.2%, 30대 20.2%, 20대 14.0% 등의 순이었다.
직업별로 보면 자영업자가 최근 구조조정과 부진한 경기를 반영해 부정적인 전망이 37.1%로 가장 높았고 ‘블루칼라’ 역시 부진한 제조업 경기 상황을 보여주듯 하반기 가계 살림살이를 부정적(27.8%)으로 예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각종 경기지표가 호조를 보이는 것과 달리 가계 살림살이는 주거비와 교육비 상승 등으로 가계부채의 덫에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지속되면 경제 불안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 경감과 소비진작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상환 능력 ‘최악’…증시엔 영향 없나
사실 국내 가계부채 문제는 최근에 부각된 것이 아니라 몇 년에 거쳐 꾸준히 제기된 이슈였다. 하지만 그 뇌관이 언제 터질지를 몰라 우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1/4분기 가계부문 금융부채는 800조 원을 돌파했고 실질적인 수치를 표현하는 자금순환표상 가계부문 금융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경제성장시 부채 증가는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현상이지만, 2003년 이후 가계대출 증가속도는 GDP증가폭을 훨씬 웃도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분명 부담인 상황. 이와 더불어 발표된 가계신용을 국민 총처분 가능소득으로 나눈 배율이 2.79배를 기록, 지속적인 상승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부정적이다.
부채 증가가 소득의 증가와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은 정체되어 있으면서 부채가 증가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현재 가계대출 증가세를 우려하는 면은 3가지. 첫째는 가계이자 부담으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 소비의 약화이며 두번째는 가계의 연체율 증가 및 이로 인한 은행의 부실 가능성, 마지막은 소득을 넘어서는 부채증가로 인한 은행의 담보권행사로 인한 주택가격 폭락 및 연쇄적인 경기침체 우려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우려는 다소 과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선 가계이자 부담으로 인한 소비 약화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대출의 50% 이상을 고소득층이 빌린 것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시 소비 감소의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 부정적 요소는 많지만 시장에서 우려하는 경기침체로 이어질만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문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거치방식의 이자상환에서 원리금까지 더해질 때의 문제점도 시기상조라고 본다.”며 “은행에서는 이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인식하고 있어 원리금 상환 시기는 롤오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부정적 시나리오 가능성은 낮다는 게 그이 지적. 현재 정부에서도 가계대출에 대한 문제점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을 다소 느슨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정부, 가계부채 해결 대책 발표 예정…효과는
현재 정부에서 검토하는 방법은 우선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높여서 은행들의 BIS비율 관리를 보다 엄격히 하는 방법과 더불어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제2금융권에 대한 대손충당 적립비율 상향조치 및 동일인 대출한도 규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거치식 변동금리 보다는 비거치식 고정금리로 대출자들을 유인할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 방안은 단기적으로 경기에 부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은행들의 BIS 비율관리를 엄격히 하면 은행들의 대출 축소 가능성이 있다. 신용리스크가 낮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증대되면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낮추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행들이 중소형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확대시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의 추가하락 가능성도 감안해야할 듯하다. 무주택자의 입장에서는 집을 사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대출조건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매매보다는 전세나 월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매매가격 하락세가 강해질 수 있다. 그동안 거치식금리가 주었던 긍정적 효과가 부메랑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니 고통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하는 시점으로 보인다.
현재의 물가상승을 감안해볼 때 하반기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이로 인한 대출금리 상승은 필연적이며, 결국 하반기 내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분명 국내 코스피 지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요소이다. 또 가계부채 문제가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경제지표 흐름은 하반기 국내 내수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건설투자 증가율은 역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및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게 되면 우리의 수출도 호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2005년 이후 코스피와 한국 수출액의 상관관계는 0.8이 넘었다. 따라서 하반기 코스피 지수는 내수는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수출이 견인하는 장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