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후 현재까지 보여준 리더십 스타일은 큰 틀에서 ‘원칙과 신뢰·위기극복·섬세’로 요약된다. 비록 정권 출범 직후엔 여론 지지율이 부진했으나, 그 이후엔 지지율이 전체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따뜻한 원칙주의’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원칙의 리더십
집권 초기 북한발 안보위기를 넘기고 개성공단 정상화, 나아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할 토대를 마련한 것은 박 대통령이 정치적 생명줄 처럼 여기는 ‘원칙과 신뢰’가 낳은 뜻있는 결실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 등 ‘잘못된 행동’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북한을 상대로 ‘상식과 국제 스탠더드’를 관철했기 때문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자신의 국정철학과 비전을 공직사회에 심은 것도 ‘박근혜 리더십’의 특징으로 꼽힌다. 회의석상이나 업무보고에서 ‘첫째, 둘째, 셋째’로 이어지는 수많은 주문을 내놓으면서 이른바 ‘깨알 리더십’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이러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은 국정수행 지지도에서 대체로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리더십’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원칙을 지나치게 고수한 나머지 유연성이나 주변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만기친람(萬機親覽)’한다는 것이다. 윤창중 사태 등을 가져온 정권 초의 인사 파동은 박 대통령의 소통부족으로 말미암은 사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첩 인사’와 더불어 한번 기용한 사람은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지닌 이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세제개편안 발표에 앞서 국민을 상대로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나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 거센데도 세출절감이나 지하경제양성화 외에 복지재원 확충이나 복지순위 조정 등의 대안에 박 대통령이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소통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집권 6개월간 ‘위기’로 여겨진 고비마다 이런 대목들이 문제점으로 제기된 바 있다.
독특한 소통의 리더십
박 대통령이 그간 보여준 독특한 스타일 중의 하나는 ‘전화 정치’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9명, 장관 17명이 모두 대상이다. 통화시간이 30분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이 워낙 현안들을 깊이 꿰뚫고 있는 데다 기억력이 좋아 구체적인 수치까지 물어본다”고 한 수석은 전했다. 자신이 모르는 걸 대통령이 물어볼 땐 이실직고하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간 이어지는 질문 공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직접 면담보다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데서 드러나듯 박 대통령은 수석이나 장관들과의 회의에서도 감정을 표출하거나 특정인에 대한 호오(好惡)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묵묵부답이거나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고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그래도 회의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뭔가 티가 나는 것 같다. 그걸 눈여겨본 기자들이 지난달 초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자 ‘걱정됐던 인사들이 경질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전화 정치가 의원 시절부터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하루 수백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팔에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전화 통화를 선호했다”며 “특히 당 관계자들의 전화엔 반드시 리턴콜을 해줬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박 대통령은 5선 의원을 지내며 국정 현안마다 그 배경과 연혁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한정된 범위의 정책만 다뤄온 청와대 수석이나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의 전화 질문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부대표는 “대통령 취임 이후 당 쪽으로는 전화를 하지 않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4대 강 사업이나 미디어법 등 자신의 관심 사안과 관련, 여당 지도부에 자주 전화하며 진행 상황을 챙겼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은 업무 라인이나 계통을 존중하는 스타일”이라며 “대통령이 된 만큼 국회는 당에 맡기고 자신은 청와대와 정부를 지휘한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전화 통화를 통해 수석이나 장관들의 업무능력도 자연스레 파악했을 것”이라며 지난달 초 청와대 비서진 개편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전화 정치’에 대해 야권에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불통(不通)의 상징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청와대 고위 비서진 37명이 모두 정치색 없는 참모·관료형 인사들로 채워진 점을 거론한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수석은 “이견이 있는 경우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얘기를 넣거나 편지·이메일 등의 경로로 얘기하면 대부분 의견이 수용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과거 다른 정부도 수석이나 장관이 대통령 면전에서 바로 ‘그건 아니다’고 직언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야 ‘스킨십’ 부족 지적도
취임을 전후로 박 대통령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장·차관 등 고위직의 인사 파동이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여론검증을 통해 제기된 각종 의혹을 버티지 못하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특히 ‘박근혜 인사 1호’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 성추행 의혹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 첫 여성대통령인 박 대통령에게 커다란 타격을 줬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수첩에 적힌 인사를 기용하는 인사패턴이 부실한 검증으로 이어지면서 잇단 인사 파동을 낳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윤창중 사태’ 이후 잦아드는 듯했던 인사 논란은 ‘제2기 청와대 참모진’과 공공 기관장 인선 과정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불법적으로 당시 여당 후보 선거대책을 논의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한창인 시점에서 부적절한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취임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주요 공공기관장 인선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인재풀의 빈약함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정부조직법이 국회에 제출된 지 52일이나 지나 늑장 처리되는 과정에서 여야 모두의 책임론이 나왔지만, 박 대통령도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야당을 지나치게 몰아붙여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야 스킨십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거론된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만나려고 했지만 야당이 거부했다”고 주장하지만, 여당 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야당에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단독회담 제의나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3자 회담 제의를 수용하는 대신,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5자 회담을 역제안한 것은 야당 존중과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신율 교수는 “박 대통령 인사의 문제점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나, 선친 때 같이 일했던 사람 혹은 그 자제를 쓴다는 것인데 이런 점은 탈피해야 한다”면서 “또 대통령은 야당, 시민사회와도 자주 만나 정치가 거버넌스, 즉 협치라는 점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대 정부와의 차별화
박 대통령의 국정 화두는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로 요약할 수 있다. 낡은 것들과의 이별을 통한 이른바 박근혜식 과거청산을 표방하고 있다. 역대 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박 대통령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원전비리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4대강 감사 등에 정권 차원의 무게를 실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우선 박 대통령은 원전비리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개인의 사욕과 바꾼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며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쌓여온 일”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추징급 미납에 대해서도 “역대 정부가 해결을 못해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부와의 선긋기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청와대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박 대통령이 이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반면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는 매우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야당이 이 문제를 거론하자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관여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7월에는 국정원에 자체 개혁안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에 반해 야당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록 공개의 책임을 물어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 개혁도 셀프개혁이 아니라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후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절반의 성공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지만, 취임 후 현재까지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한국경영학회가 최근 경영학자 253명을 대상으로 국정과제 전반에 대한 성취도와 중요도 등을 조사한 결과, 일자리 창출과 민생경제 회복 등은 중요도에 비해 성취도 점수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후반기에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국민들께서 체감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호의적이지 않다. 경제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시지 않은데다, 세금논란과 전 월세난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우려는 커져만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기점으로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물을 내놓느냐는 후반기 국정운영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대선 당시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섰다. 실제 국회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을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공정거래법), 가맹점주의 권리 강화(가맹사업법), 불공정특약 금지(하도급법) 등 굵직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처리됐다. 박 대통령은 이제는 하반기 국정운영 화두인 경제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위한 기업의 투자의욕 확대에 중점을 두겠다는 입장이다. 8·15 경축사에서도 “그동안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틀을 구축해왔다”며 “앞으로는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정책 역량을 더욱 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대선 약속인 경제민주화는 흔적조차 자취를 감췄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정부가 재벌의 엄살에 맞장구를 치면서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며, 여기에 새누리당도 경제살리기, 속도조절론 등을 제기하며 추가적인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경제살리기’라는 화두와 민주당의 ‘대기업 횡포 억제 및 을(乙) 살리기’라는 주장이 경제민주화 공약실행이라는 측면에서 취임 6개월을 계기로 또 한 번 정면 대결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