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시작한 국정조사, 출발부터 ‘삐걱’
지난 7월2일 국정조사 계획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야심차게 시작됐다. 하지만 특위위원의 구성문제로 출발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본회의 통과 후 열린 첫 국조특위 회의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의 제척을 주장하며 퇴장해버린 것이다. 여야는 이 문제를 놓고 강공으로 맞섰고 결국 7월17일 김현, 진선미 의원이 “더 이상 (국조가) 늦춰지는 건 국조를 무산시키려는 새누리당에 말려드는 일”이라며 자진사퇴해 국조특위는 16일 만에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국조특위는 이어 ‘국정원 기관보고 공개여부’라는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새누리당은 국회 정보위원회가 비공개로 국정원 기관보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정조사 역시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국정조사법에 따르면 일단 공개하되 비공개를 위해서는 표결을 거쳐야 한다고 맞섰다. 여야는 결국 7월29일 국정원장 인사말과 간부소개, 여야 간사 및 여야 간사가 지명한 각 1명씩 총 4명이 각각 기조발언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공개하고 기관보고와 질의답변 자체는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8월5일 열린 국정원 기관보고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은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국가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했고,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아니라 민주당이 국정원 전·현직 직원을 매수해 일으킨 정치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댓글을 작성한 것과 관련, “국정원 직원 신분이 아니라, 개인 신분으로 했지만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여직원의 감금여부를 묻는 민주당 김민기 의원에 질문에는 한동안 답변을 못하다가 “다시 파악해서 보고 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국정원 댓글 사건이 지난 대선에 영향이 있었느냐”고 묻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의 질문에는 “답변이적절치 않다”면서도 “선거 개입은 동의하지 않는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기관보고를 마친 여야는 청문회에 증언할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다시 부딪혔다. 야당은 핵심 증인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국정원의 NLL 대화록 유출과 관련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은 김 의원과 권 대사에 대한 증인채택은 이번 국조의 취지에 맞지 않다며 극구 반대했다. 여야는 결국 김 의원과 권 대사는 제외하고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 외 국정원·경찰 관계자 등 총 29명의 증인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우선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이 8월14일 열리는 청문회에 출석토록 하고 나머지 증인은 21일에 소환하기로 했다.
원세훈·김용판 불출석, “두 증인의 무례한 태도에 유감”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이 당초 14일로 예정된 청문회에 불출석을 통보했다. 두 증인은 12일 신기남 국조특위 위원장 앞으로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건강문제 등을 이유로 이날 청문회 출석이 어렵다는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에 논쟁의 초점은 두 증인의 출석강제여부로 모아졌다. 민주당은 이들이 핵심증인인 만큼 출석이 담보돼야 한다며 동행명령장 발부를 촉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재판 중이라는 사실은 국조에 불출석하는 정당한 사유”라고 주장했다.
결국 14일에 열린 첫 청문회는 두 증인의 불출석으로 여야 간 치열한 책임 공방만이 난무했다. 신 위원장은 “두 증인의 무례한 태도에 엄중히 유감의 뜻을 밝힌다”면서 “증인의 출석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노력을 다한다는 여야 합의가 있는 만큼 여야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이 따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 증인의 불출석으로 여야는 오는 16일 추가 청문회를 개최할지를 놓고 날선 신경전이 오갔다. 민주당은 청문회 일정을 새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새누리당은 29명의 증인 가운데 14일, 19일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 증인에 대해 21일 청문회가 예정돼있는 만큼 민주당의 ‘16일 청문회’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증인 불출석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민주당이 마치 두 증인의 불출석이 여당의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허위주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이들의 불출석에 대해 “국민과 함께 규탄한다”면서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동행명령장 발부와 ‘16일 청문회’ 일정 합의를 새누리당에 촉구했다.
이에 국조특위는 청문회 일정을 하루 더 추가하기로 합의하고, 표결을 통해 두 증인의 출석을 강제할 동행명령장 발부를 결정했다. 표결은 총 18명의 국조특위 위원 가운데 16명이 참여해 찬성 9, 반대 5, 기권 2표로 가결됐다.
청문회 선 원세훈·김용판 선서거부,
“증언시 진위 왜곡돼 재판 영향 줄 수 있어”
논란 끝에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이 16일 국정조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재판 중임을 들어 국정조사 중인 선서를 전격 거부했다.
김 전 청장은 이날 청문회에 출석해 “헌법과 법률에 주어져 있는 기본권 방어권에 따라 선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소명서를 통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진행하는 특위 국정조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 사건으로 인해 국정조사와 동시에 증인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원칙적으로 증언을 거부하지만 질의의 성격에 따라서 대답해야 할 것은 성실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도 “보내주신 심문 요지가 제 형사재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항들”이라며 “선서하지 못함을 양해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에 신 위원장은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할 때에는 나중에 고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당 대표들도 선서거부는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의원은 “뻔뻔하다”고 면전에서 비난했고, 같은 당 박영선 의원은 “증인선서는 진솔하게 정직하게 답변하겠다는 국민에 대한 선서인데 거부한다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또 “수석전문위원을 비롯해 대책을 논의해주고, 증인 선서를 거부한 것 자체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이다. 떳떳하면 왜 선서를 거부하느냐”며 “아마 국회사상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이들에게 “증인을 향해 뻔뻔하다는 등의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은 국회 품격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은 박영선 의원을 향해 “막말 파문에 이어 증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인권탄압 국회의원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용판 검찰 수사 전면 부인, “공소장 전혀 인정 못해”
김 전 청장은 이날 증인 선서를 거부했지만 실제 질의·답변에서 “검찰의 공소장 전제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수사 은폐·축소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정면으로 대응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16일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허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판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며 “당시 직원들이 허위로 분석했다는데 동의하지 않고 지금도 직원들을 신뢰한다”고 전했다. 이어 “12월16일 심야에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 사건이 정치권의 핫이슈인데다가 몇몇 언론이 특종보도를 하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민주당의 감금이 맞느냐는 질문에는 “당시 충분히 된다고 보고 받았다”며 말을 아꼈다.
여당 의원들은 김 전 청장에게 “억울하지 않느냐”, “(야당의 지적이) 모욕적이지 않느냐”, “국정원 대선 개입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보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 같은 태도에 야당은 “새누리당이 국선 변호사냐”며 지나치게 두 증인을 감싸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2차 청문회 ‘가림막 공방’, 결국 파행
19일 국정원 전·현직 직원과 경찰 관계자 등 증인 26명을 대상으로 하는 2차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청문회는 증인보호 성격의 흰 천의 ‘가림막’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청문회장 한쪽 입구에서부터 가림막 좌석까지 이어지는 통로에도 가림막이 설치돼 뒤의 증인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애초 새누리당은 청문회의 완전 비공개를, 민주당은 공개를 주장하며 줄다리기를 하다가 국정원 현직원들은 가림막 안쪽에 앉아 증언하는 방식으로 절충됐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서는 가림막 문제로 거센 신경전이 펼쳐졌다.
정청래 의원은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 단장은 장막을 걷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박원동 국장은 핵심 증인일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커넥션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 박원동 민병주는 현재 국정원에 출근하지 않고 아무런 보직도 없다. 그런데 월급을 받고 있다”며 “따라서 박원동 민병주 증인은 커튼을 걷고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림막 문제를 표결로 처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같은 당 신경민 의원도 “(외국에도) 스크린에 숨는 경우가 있지만 저렇게 완벽하게 숨는 경우는 없다.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손을 내놓게 하는 식으로 하든지 제도적 장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당 특위 의원들은 가림막 설치가 야당 특위 위원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며 “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의원은 “2004년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세력에 의해 살해됐고 그때 국정원을 대상으로 국정조사가 실시됐는데 당시 국정원장 이하 7명 증인심문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그때 그것을 주장한 것이 김한길 의원”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 김태흠 의원도 “오늘 민주당이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국정조사에서 나올 것이 없고 여러 가지로 불리하니까 판을 깨려고 하는 구나라는 의도가 감지된다”고 비꼬았다.
공방이 이어지자 새누리당 소속 특위 위원들은 낮 12시10분께 통보 없이 일제히 청문회장을 떠났다. 이에 야당 특위 위원들은 반발했다. 정청래 의원은 “야당 간사로서 어이없고 황당하다”며 “중간에 퇴장하는 것이 벌써 몇 번째냐. 민주당이 안 하려고 한다면서 본인들이 뛰쳐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신기남 위원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한 뒤 일어서야지 일방적으로 일어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일축했다.
권은희 수사과장, ‘경찰 윗선 개입’ 폭로
2차 청문회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다. 권 전 과장은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은폐·축소된 것이라고 폭로했다.
권 전 과장은 “김용판 전 청장이 지난해 12월12일 직접 전화해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등에 대한 압수수색 신청을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면서 김 전 청장이 지난 16일 자신에게 격려전화를 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증언했다. 대선 3일 전인 12월16일 밤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대선에 영향 미치려는 부정한 목적이었음은 분명하다고 본다”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말했다. 권 전 과장은 댓글 여직원 감금 논란에도 “감금은 유·무형적으로 장소 이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라며 “당시 상황으론 감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법리적으로 압수수색이 안 되는 것이고 권 전 과장이 무리한 것”이라며 “외압이라고 하는데 보통 서울청장의 일반적인 지휘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권 전 과장은 “일반적인 지휘는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반론했다.
같은 당 조명철 의원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 경찰이냐”며 지역감정을 운운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권 전 과장은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 “경찰은 누구나 대한민국의 경찰이다”고 말했다. 권성동 의원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아집이 강하다”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이에 야당 특위 위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권 의원은 증인을 데려다놓고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증인에게 강요하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증인에 대한 인권침해로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기남 위원장이 “양당 의원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노력해 달라”고 말하자 권 의원은 “인격을 모독할 생각은 없었다. 인격적 모욕을 받았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최종청문회 野만 참석, 보고서 채택 무산
21일 3차 청문회는 야당만이 참석한 ‘반쪽청문회’로 개최됐다. 전날 새누리당은 새로운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여는 청문회는 정치 공세의 장으로 변질할 뿐이라며 불참을 선언했다.
야당 특위 위원들은 이날 오전 1시간여 동안 열린 청문회에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사전입수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 대사의 증인 채택 불발을 거듭 규탄했다. 아울러 증인 선서를 거부한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 위증 의혹이 제기된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와 최현락 전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등 일부 증인들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청문회 일정을 마친 여야는 23일 최종 결과보고서를 채택을 위해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여야 간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며 결국 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여야의 주장을 반반 섞어서 보고서 채택할 것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서 채택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진실과 거짓의 거리가 멀어서 양측의 의견을 합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진실은 진실대로, 거짓은 거짓대로 따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0~400페이지 분량의 독자적인 대국민 보고서 발간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같은 당 전해철 의원도 “불완전한 국정조사를 통해 도출한 결과보고서는 채택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강조했다.
국조특위는 결국 결과보고서조차 내지 못한 채 53일간의 지난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국정조사는 특위 위원들의 공방만이 난무한 데다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해 ‘무능 국조’ ‘빈손 국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