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에 따르면 2012년 2월 현재 보험설계사는 전국적으로 14만 7,000여 명에 이른다. 인구 1,000명 당 6명이 보험설계사라는 말이다. 보험가입이 가능한 경제활동 인구에 대비해 보면 보험설계사 비율은 이보다 더 높아진다. 이 같은 비율은 고객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해 적어도 2~3명의 설계사가 경쟁을 벌여야 함을 뜻한다. 이에 대해 메트라이프 김동규 FSR은 “고객은 1%라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설계사를 선택한다”고 말한다.

김 FSR은 올해로 보험업계 입문 10년 차를 맞는 베테랑 컨설턴트이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업계입문을 결심했다. 영업, 특히 보험영업은 힘든 직업군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그는 단지 ‘노력한 만큼 받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거리낌 없이 보험영업을 택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2003년 5월 25일, 27살. 보험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날입니다. 이 전에는 학교를 휴학하고, 새벽에 통통배를 타고 나가 광안대교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했었고, 밤에는 ‘구루마’라 불리는 노점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햇살에 눈살을 찡그리며 술에 찌든 부스스한 얼굴로 퇴근을 해야 했던 웨이터 생활도 몇 년을 했었네요. 보험업을 하면서 이제는 소주 3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는 철칙이 생긴 것도 이때의 기억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내 몸 하나로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들은, 현재의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게 만드는 ‘행복한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는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고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고, 하루에 명함을 10장 받아오지 않으면 퇴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함 한 귀퉁이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고객에게서 받은 인상을 적었다. “벌써 10년 전 일인데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한 번은 시장개척을 위해 병원을 무작정 찾아 갔는데 그곳에서 그야말로 찬밥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때 전 그 병원에서 받은 명함에 이렇게 날려 적었더군요. ‘안경 쓰고 통통한 얼굴, 얼굴 마주치지도 않음, X가지’. 지금 보니 웃음이 납니다.”
그가 업계에 입문하던 시기 인터넷 재테크 상담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었다. 그 당시 그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날개버린용’이라는 필명으로 재테크 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유명세도 탔다. “인터넷 재테크 상담은 한 번 질문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십여 개의 답변이 달립니다. 이 모든 일들이 실시간으로 이뤄지지요. 고객은 이렇게 올라온 답변 가운데 단 하나를 선택합니다. 고객의 질문은 간단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보험 가입 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요?’, ‘세금 때문에 골치 아파요’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고객은 이 사람이 상품 하나 판매하려고 답글을 다는지, 아니면 정말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려는지 금방 알아봅니다. 이렇게 인터넷 상담을 하면서 얻은 것은 잡다한 지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고객이 나를 ‘써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고객이 나를 써먹게 할 수 있어야 고객은 ‘내 사람’이 됩니다."
고객의 눈으로 보고, 고객의 입으로 이야기하라

김 FSR은 어떤 상담에 임할때도 고객이 놀랄만큼 철저히 준비하기로 유명하다. “작년에는 원어민 어학원 원장님의 절세와 투자상담을 했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을 영어로 진행해야했기에 20여장의 상담 예상 내용을 워드로 타이핑치고, 이를 하나씩 번역하고 이 번역한 내용을 다시 입에 붙도록 수십번을 외워야 했습니다. 눈감고도 얘기할수 있는 내용임에도 금융, 세무, 부동산관련 단어들을 영어로 풀어낸다는 것이 수능세대인 저에게는 험난한 도전이었습니다. 상담하면서 대화가 통한다는 것 자체로 들떠하셨던 원장님의 모습이 아직 기억납니다. 청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마지막 I really appreciate it.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월 몇 천 만원짜리 계약을 한 것 보다 더욱 짜릿했습니다.”
김 FSR은 고객과 상담 시에 고객의 기대치보다 ‘무조건 하나 더’라는 상담 철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철칙은 까다로운 고객층일수록 더욱 빛이 난다.
“가장 최근에는 직판업계에 계시는 직급자분들의 계약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직판업계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고, 2012년 1월부터 국세청에서 ‘기획세무조사대상’이 될만큼 직판업계 종사자분들의 수입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당이 상속가능한 직판업계 직급자들에게는 보험사의 연금이나 일반적인 종신보험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보험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까다로운 고객층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직판공제조합에 등록된 모든 회사의 개별 재무제표와 수익구조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해당 업종에 계신 분들이 간과해서는 안되는 위험성들을 발견하고, 이 부분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프리젠테이션 했습니다.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계약하신 사장님들께서 ‘수많은 보험설계사들이 왔다 갔지만 처음 받는 솔루션이었다’고 하셨을 정도로 서로에게 만족스런 계약이 되었습니다. 계약의 크기를 떠나 어떤 계약이든 내 입장이 아닌 고객의 눈으로 보고, 고객의 입으로 이야기한다면 그 고객은 ‘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계약건들입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고객이다. 그는 고객과 함께하며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정상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성공관도 바로 고객이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외양만 화려한 명함이 아니라 고객이 되어준 분들 곁에 항상 있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부족함 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성공이다”고 강조한다. 그의 지론은 사소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가 연도대상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때, 벼르던 계약 건 하나가 취소돼 늦은 밤 허탈감을 안고 귀가한 일이 있었다. 그날 그의 어머니가 책상위에 남겨둔 쪽지는 그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단내나는 입으로 풀이 죽어 터벅터벅 들어왔던 새벽에, 어머니께서 책상위에 적어두셨던 쪽지를 잊지 못합니다. ‘사람이 돈만 생각하는 느낌이 들면, 사람의 마음은 떠난다’라고. 이 한마디만 적어두었을 뿐인데, 갑작스런 부끄러움으로 책상에 멍하니 앉아서 꺼억꺼억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돈을 만지는 우리 업(業)이지만 돈을 쓰는 주체도 사람이요, 쓰여 지는 곳 또한 사람이라는 것. 이런 깨달음을 잊지 않으려 늘 애쓰고 있습니다.”
그는 “고객에게 1%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안고 영업에 임한다. 그에게 고객은 단순히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아니라 ‘내 사람’이다. 또 그에게 인생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소중한 스승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