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油)테크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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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油)테크 전성시대
  • 글/ 이선영 기자
  • 승인 200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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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행진에 이은 에너지대란, 전 세계 비상경보
원유 도입단가 배럴당 60달러 돌파, 경제성장률 하락 예상에 서민들 물가 부담 될 듯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원유 평균 도입단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앞으로 고유가 추세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좀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아 고유가 충격이 더욱 확대·심화되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석유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많은 관심이 이어지면서 대체 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원유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설과 이란의 석유수출 중단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가 정정불안으로 산유량을 25% 감축한 것도 유가 상승에 한 몫 하고 있다. 무장세력의 석유시설 공격이 끊이지 않는 나이지리아에서 공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원유는 하루 평균 50만 배럴로, 나이지리아 전체 생산량의 약 5분의 1에 해당된다.
여기에다 지난해 국제유가를 배럴당 70달러로 끌어올렸던 허리케인이 올 여름에 또다시 석유시설 밀집지역인 멕시코만을 강타할 것이라는 기상예보도 유가를 심리적으로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이같은 고유가 시대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석유 전문가들은 고유가의 원인에 대해 이란 핵문제라는 ‘일시적’ 요인뿐 아니라 전 세계 석유 수급 사정의 불안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 소비국인 중국의 석유 수요가 예상보다 급격히 늘고 있는 데다 인도의 석유 소비량도 만만치 않다. 공급 차질에 수요 폭증이 겹치면서 고유가 행진은 올가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멈추지 않는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
급격한 유가 상승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인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심각한 적신호가 되고 있다. 재정경제부ㆍ산업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우리나라의 평균 원유 도입단가가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 현재 7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당장 국내 휘발유 가격이 L당 1,600원을 넘어서면서 중형차를 가득 채우는 데 1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이러다 국내 휘발유의 L당 소비자가격이 2,000원으로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석유 자급률이 3%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은 확대일로에 있다. 실제 2005년 휘발유ㆍ등유 등 석유 소비량은 7억 6,000만 배럴(1,200억 리터)로 63빌딩을 320번,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50번 채울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0위권이지만 에너지 소비량 규모는 미국ㆍ중국ㆍ일본ㆍ독일ㆍ러시아ㆍ인도 등에 이어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에너지 소비 증가율 면에서는 원자재 블랙홀로서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중국ㆍ인도를 능가할 정도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990~2001년까지 한국의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110%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인도(45%), 중국(30%), 일본ㆍ미국(20%)보다 최고 5배가량 많다. 문제는 고도성장이 멈춘 뒤에도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가 좀처럼 둔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김신종 자원정책실장은 “저유가시기를 거치면서 절약의식을 잃어버린 측면이 많다”며 “고유가 대책의 첫째는 절약, 둘째는 효율 높이기, 셋째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서민 물가부담, 경제성장률 하락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고유가가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켜 위기 발생 위험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IMF는 유가 상승이 국가간 경상수지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며, 불균형이 어느 순간에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음을 경고했다.
특히 고유가로 인해 급증한 산유국들의 오일달러가 미국 채권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이것이 저금리와 소비 확대를 유발해 미국의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과거에는 유가 급등이 금리 상승과 경제 성장률 및 소비 둔화를 야기함으로써 경상수지에 미치는 악영향도 단기적이고 제한적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세계경제 위기 발생 가능성 지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최근 유가 급등세가 재연되고 있고, 지난해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도 확대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나온 IMF 경고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미국 채권에 투자한 오일달러가 대거 이탈하는 사태라도 발생한다면 미국의 금리 폭등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 IMF의 경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무엇보다 미국 등 세계경제가 미래 어느 순간에 혼란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경기의 갑작스러운 후퇴와 이로 인한 경상수지 악화와 성장률 하락 등 거시경제 변수에 적지 않은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미국의 경상 수지 적자 확대는 당장 달러화 약세(원화 강세)를 통해 수출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경상수지를 악화시킬 것임은 물론이다.
유가 상승은 미국 등 세계경제를 통하지 않더라도 수입 증대, 물가 상승 등을 통해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 유가인 두바이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넘나들고 있어 우리 경제가 받을 악영향이 걱정된다.
정부는 “유가 상승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재경부 김석동 차관보 말처럼 안이한 태도를 가질 게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발생할 잠재적 위기에 유비무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후진국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면서 석유의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술개발 수준이나 투자규모는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에너지 소비 가운데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한 비중은 고작 2.2%에 불과하다.
석유 값이 쌀 땐 많은 비용을 들여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보급할 필요성조차 없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대체 에너지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센터 이성호 소장은 “유가가 100불에 도달하면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에 이제는 미래에너지가 아닌 현재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대한 기술력은 후진국 수준이다. 기술격차가 선진국과 너무 벌어진데다 연간 투자 규모도 선진국의 4%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부가 지난 2003년에서야 신재생에너지 기본 계획을 만들어 투자를 권장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이에 산자부 신재생에너지 김영삼 과장은 “2011년까지 에너지의 5%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하에 올해 4천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는 등 예산을 지속적으로 증액시킬 방침이다”고 계획했다.
하지만 민간투자는 더 부진하다. 지난해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연구개발비로 795억원을 투입한 반면 민간은 424억원 투자에 그쳤다. 민간부문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세제지원 확대와 대국민 홍보 등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들이 석유 중독증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모든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 정부와 국민이 구체적인 정책과 행동으로 초고유가시대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반도체, 자동차, 배, 휴대전화로 벌어들인 외화를 원유 수입에 쓴다. 작년 에너지 수입액은 667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25%였다. 그런데도 에너지 다(多)소비형 경제구조 및 국민의식을 개선할 방책에 대한 국가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는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값비싼 돈을 들여 석유 등 에너지를 들여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면 그나마 나은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GDP 대비 에너지탄성치가 1990년대 중반 1.4를 기록한 후 1999년부터 1을 밑돌다가 2005년 1.03으로 다시 악화된 것. 탄성치가 1을 상회하면 비싼 돈을 들여 에너지를 수입해도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때
초고유가 시대에 국가 생존전략의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장려하고 있다. 정부도 에너지 자원 확보를 국정 핵심 과제로 격상해 국가에너지기본법, 국가에너지위원회, 에너지전담 복수차관제 등 다양한 행정적ㆍ입법적 대책을 마련했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5월 1일 지난해부터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임에 따라 올해 석유예산을 지난해보다 3,579억원 늘린 2조 578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전체 재정지출 증가율 6.5%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
부문별로는 비축유 구입과 비축기지 건설 등 석유비축 사업에 지난해보다 60.7% 늘어난 3,445억원을, 국내외 유전개발 사업에 31.4% 증가한 3,833억원을 배정했다. 또 태양광이나 지열, 조력,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사업에도 지난해보다 41.5% 증가한 1,331억원을 책정했다. 또한 태양광 보일러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때 지원되는 보조금 규모도 지난해보다 44.8% 늘어난 1,638억원을 책정했다.
에너지절약형 전기기기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전력수요 관리사업에는 1,474억원, 신재생에너지 보급 시 자금을 대출하는 사업에는 1,213억원, 우리나라와 산유국간의 국제협력 사업에는 처음으로 8억원을 편성했다.
산자부 이원걸 차관은 “최근의 고유가 현상은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는 만큼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당연히 자원확보를 위한 각국의 경쟁도 한층 격화될 것이다”며 “정부는 자원개발 역량의 확충, 적정한 에너지 믹스를 통한 에너지안보 강화, 질좋은 에너지이용 시스템 구축, 미래 에너지기술 개발 등에 중점을 두고 에너지강국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오는 9월 신설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국가 의제(어젠다)로 삼아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라고 고유가 대처 방안을 제시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방기열 원장은 “에너지효율개선 측면에서 석유소비의 36%를 차지하는 수송부문에 집중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10부제 같은 강제 정책보다는 대체연료의 개발이나 교통시스템 개선 등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석유공사 황두열 사장은 “산유국과 직접 교섭을 벌여 유망 광구를 확보하고, 핵심전략지역 중심의 사업진출 강화가 필요하다”며 “석유공사는 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가스하이드레이트와 GTL(천연가스액화기술), 석유를 함유하고 있으나 상업성이 낮아 개발이 되지 않던 오일샌드 등 비재래 에너지개발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심해 및 극한지역 탐사기술 등 신기술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대처법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 운동 시책을 내놓는 한편 해외 자원개발 사업으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등 근원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개발은 막대한 자금과 오랜 기간의 시간이 걸려 당장 눈앞에 닥친 고유가 상황을 어떻게 무사히 넘기고 ‘에너지 자원 독립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궁극적으로는 해외자원개발사업이 가장 좋은 방책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하지만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될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방 원장은 “민간부문에서 많은 자금들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유전개발펀드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라고 재원 마련의 길잡이를 표했다.
유럽도 지난 90년대 초까지 자원개발사업의 재원조달에 대한 정부보증제도를 폈고, 일본은 지금도 해외자원개발사업자가 금융기관 융자시 정부가 50%까지 채무보증을 해준다.
이에 정부는 기본적으로 전략지역에 대한 자원외교 강화, 다양한 재원확충 및 기업들의 역량 결집 등 활성화 전략을 지속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원협력위원회 등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고, 성공불융자 확대와 수출보험공사의 자원개발보험 도입 등 민간의 사업 리스크 완화도 추진할 예정이다.

유(油)테크 시대
고유가시대 맞은 시민들 ‘유(油)테크’ 아이디어 실천

고유가 행진의 그림자가 서민생활에까지 짙게 드리우고 있다. 고유가로 자가용 이용이 줄어들면서 서울시내 도로는 러시아워에도 한산해지는 대신 버스와 지하철은 며칠 새 부쩍 이용 승객이 늘어났다. 이 밖에 시민들은 가지가지 '유(油)테크' 아이디어를 실천하며 고유가 시대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 대중교통 이용 증가=고유가 파동의 영향은 곧바로 열차와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1일 평균 버스 이용 승객 수는 522만 400여명으로 지난해 5월 (513만 200여명)에 비해 10만명 가량 증가했다.
승용차 이용이 줄어들면서 남산 1ㆍ3호 터널의 유료이용 차량 대수도 급감했다. 4월 한 달간 남산 1ㆍ3호 터널의 유료이용 차량 대수는 69만 8,092대로 3월 81만 5,862 대에 비해 12만대가 줄었다. 봄철 차량 이동량이 늘어나는 추세를 역행한 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유료 이용 차량 78만 3,168대(3월)와 73만 5,599대(4월)에 비해서도 6~12%가량 급감했다.
자가용을 이용한 여행이나 출장을 줄이는 대신 열차를 이용하는 사례도 급증했다. 철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KTX 이용 승객은 41만 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만 4,000명)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회사원들이 출장 목적으로 계약하는 ‘KTX 출장’은 올 1분기 동안 31만 8,000명이 이용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이용 인원이 105% 늘었다.
▲자린고비형 운전자=기름값이 폭등하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자린고비형 운전자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주유소 기름값 비교 사이트인 오일프라이스워치, 오일프라이스 등에는 한 푼이라 도 아껴 ‘유(油)테크’를 하려는 짠돌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연료통을 가득 채우기보다는 조금씩 자주 넣어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1,000원 단위로 주유하는 자린고비형 운전자도 적지 않다.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김희윤 씨(29ㆍ여)는 최근 100㏄ 소형 스쿠터를 장만했다. 그는 “디젤 승용차를 몰 때보다 기름값이 3분의1밖에 안든다”며 “주차 문제도 편해 출퇴근용으로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사휘발유 판매 기승=유가가 폭등하자 불법 면세유나 유사휘발유 판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최근 러시아 등 외국 선박 선원들이 빼돌린 면세유를 사들여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로 박 모씨(55) 등 2명을 구속하고 유류판매업자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과 주유소협회 등은 이처럼 고유가를 틈타 유사휘발유 업자들 이 급증하자 ‘불법 석유류 유통 대책’까지 세우고 나섰다. 한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유사휘발유 판매도 서울 주변 국도변을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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