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후배 FC들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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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후배 FC들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 박상목 부장
  • 승인 2013.08.02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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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판매사원으로 출발, ‘영업의 꽃’ 보험에 도전해 성공가도

ING 김우중 SM은 살면서 몇 명의 롤모델을 만났다. 아니, 만들었다는 표현이 맞다. 그의 기준에서 성공에 다다랐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면 누가 됐든 롤모델로 삼아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했다. 작은 습관부터 마인드까지, 그가 배우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몇 명의 롤모델을 지나 온 그는 이제 누군가의 롤모델이 돼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여 온 김우중 SM은 운동을 전공했고, 운동 특기생이었던 탓에 학업 대신 운동에만 집중했다. 그렇지만 그는 대입을 앞두고 집안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 대학 대신 군입대를 결정했다. 등록금도 등록금이었지만 졸업을 한다 해도 마땅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군복무 기간 동안 끊임없이 취업을 고민했다. 전역을 하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그였다. 하지만 배운 것 없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불안했던 그는 책을 통해 그 해답을 얻어 보려 했고, 그러던 중 ‘패기와 열정, 무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영업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영업’뿐이었다. 

전역 후 스물한 살 어린 나이였던 그가 할 수 있는 영업은 별로 없었다. 첫 영업은 휴대폰 판매사원이었다. 전역 당일 휴대폰을 사러 갔던 매장의 사장이 “오늘 제대했느냐.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말도 잘하는데 휴대폰 판매사원 해볼 생각 없느냐”면서 월급통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500만 원이 찍혀있는 통장을 보고 김 SM은 순간 매료되고 말았다. 그렇게 첫 3개월 동안 월급 50만 원을 받으며 배워보겠다는 각오로 휴대폰 판매를 시작했다.

막연하게 엄청난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휴대폰 진열대 닦기, 판매기법 외우기였다. 그 중에서도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이 기술된 A4용지 50장 분량의 판매 기법은 ‘고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상품을 설명할 것’, ‘바르게 웃을 것’, ‘책상에 기대어 건방지게 설명하지 말 것’ 등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디테일했다. “처음 한 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었다”는 김 SM의 마음속에는 ‘이대로 3개월이 지나면 그 후에도 계속 기본급만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절망감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걸레질만 하던 어느 날, 김 SM은 한 판매사원을 유심히 보게 됐다. 사장이 아님에도 단순히 고객 응대만으로 월 300만 원이 넘는 돈을 버는 그를 보면서 그동안 외운 매뉴얼이 모두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김 SM은 그 날로 그 판매사원을 롤모델 삼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개성에 따라 다른 응대, 그 안에서도 공통적인 말들은 수첩에 메모를 했고, 롤모델의 억양, 패션, 헤어스타일까지 따라했다. 그렇게 따라 하기를 3개월. 꼭 닮아버린 모습에 주위 종료들로부터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그 매장에서 3년을 일하는 동안 450만 원까지 월급을 올릴 수 있게 됐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보험영업을 만나 심장이 뜨거워졌다 

회사에서 판매 성과를 인정받아 강남 매장으로 옮겨 근무하게 된 그는 집이 가난해 평생 타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자가용도 갖게 됐다. 반복적인 일상이었지만 금전적으로나 회사에서의 위치로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변화는 우연한 곳에서 시작됐다. 친척 돌잔치에서 백세곤 SM을 만나면서 영업의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됐고, 다시금 심장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SM이 생각하는 보험회사는 억대 연봉이 가장 많은 ‘영업의 꽃’, 미래에는 꼭 도전해봐야 할 ‘과제’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하거나 주변에 지인이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쯤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그에게는 너무나 먼 미래였고, 보험회사에서의 성공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로 여겼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보험회사의 억대연봉자인 백 SM을 만나게 된 김 SM은 편안하고 친근하지만 카리스마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백 SM을 보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이미지와 다른 보험회사를 접하게 됐고, 어느 덧 그와의 대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도 받았다. “그동안 내가 세상에서 말을 가장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카리스마가 있었다”는 김 SM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말하는 그 화술이 신비스럽기까지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나도 똑같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이끌림으로 몇 차례 백 SM을 만났다. 만나면 만날수록 보험영업에 더욱 빠져들게 된 그는 과감하게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고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까지 정리했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도 빨랐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특히 아버지는 호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하실 정도로 극심하게 반대하셨다”는 그는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 SM은 반대하는 부모님께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믿음을 줬고, 아버지께는 평생소원이던 작은 낚시 가게를 차려드렸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고 있다.


그 어떤 재산과도 비교가 안 될 값진 경험

보험은 회사나 상품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리해주는 사람의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김 SM은 항상 고객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마치 면접을 보는 신입의 마음으로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FC는 내 사업이나 마찬가지다. 창업비용이 들어가지 않고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금융 지식을 배울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보장된다는 것도 이점이다. 무엇보다 ING에서 배운 경험은 살면서 그 어떤 재산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값지다.”

 
그는 ING에서 자신감을 배웠다. 타국에 맨 몸으로 떨어져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 그는 고객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가진 설계사에게 보험을 맡겨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닌다. 처음에는 나이가 어려 주변에서 ‘저 친구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반응에 자극을 받아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젊고 건강한 FC가 고객을 오랫동안 지켜줄 수 있고, 자녀들에게도 평생 동반자가 돼 줄 수 있다”는 콘셉트로 승부했고, 지금은 그런 시간을 지나 어느덧 후배 FC들을 거느린 SM이 됐다. 그때의 노하우를 후배 FC에게 가르치며 그들의 성공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김 FC. 젊어서 두려울 것 없고,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러운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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