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 없이 바다 내몬 것은 살인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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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 없이 바다 내몬 것은 살인행위”
  • 박치민 기자
  • 승인 2013.07.3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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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터지는 사고, ‘안전불감증’ 개선 시급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8일 충남 태안군의 한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고등학생 5명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교관의 지시에 따라 바다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캠프가 차려진 태안 앞바다는 물살이 거세 수영이 금지된 곳이었다. 캠프는 해병대와 연관이 없는 ‘짝퉁’ 해병대캠프였으며 교관들은 인명구조사 자격증도 없는 여행사에서 채용된 직원이었다.

교관의 조치는 허술했고 인솔 교사는 현장에 없었다
18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해수욕장에 마련된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훈련을 받던 학생 5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들은 19일 갯벌에 생긴 깊은 웅덩이인 ‘갯골’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날 점심을 먹고 휴식을 가진 학생들은 90여 명씩 2개조로 나눠 노젓기 등 래프팅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친 후 한 교관이 쉬고 있던 첫 번째 조를 일으켜 세워 바다 쪽으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첫 번째 조에 참석해 있던 김 군은 “물놀이를 할 줄 알고 10명씩 줄을 맞춰 바다로 따라 들어갔다”며 “뒤에는 다른 교관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교관 지시에 따라 앞으로 나가던 학생들은 갑자기 깊은 웅덩이인 ‘갯골’로 빠지면서 허우적대기 시작했고 뒤이어 오던 학생들 역시 넘어지거나 우왕좌왕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또 다른 김 군은 “제 키가 작다 보니 물속에 빠졌다 나오기를 반복했다”며 “친구들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서로 손으로 누르면서 물속에 빠지기 시작했고, 수영을 못하는 친구들은 계속 거기에 남아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교관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군은 “교관도 당황했는지 친구들은 구하지 않고 호각만 불어대면서 빨리 나오라고만 재촉했다”며 “출동한 구명보트에 탄 교관이 튜브를 던져줘 다행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종된 한 학생의 가족은 “살아 나온 아이들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아이들을 구해야할 교관은 멀뚱멀뚱 쳐다보고 깃발을 흔들어 구조를 요청할 뿐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사고 현장에는 학생들과 교관만이 있었을 뿐 인솔 교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학생이 개별적으로 참가한 캠프가 아닌 학교 자체에서 2학년 학생 198명을 참여시킨 캠프인데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현장에 함께하지 않았다. “해병캠프에는 학생들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훈련에 교사들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교 측의 이유였다. 캠프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바다에서 빠져나온 뒤 인원점검을 해보니 학급마다 몇 명씩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당시 교사들은 없었고, 친구들을 구조하러 온 경찰이 오후 7시께 선생님들의 전화번호를 물어볼 때까지 이 사고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다음날 실종 학생 시신 모두 발견
태안 해경은 19일 오전5시20분부터 수색 작업을 재개했다. 오전 6시5분께 해안가로부터 6~7m 떨어진 지점에서 이준형(17)군의 시신을 발견한데 이어 15분 뒤인 오전 6시20분께 진우석(17)군의 시신을 찾아냈다. 오후 4시45분과 57분에는 김동환(17), 장태인(17) 군의 시신도 발견했다. 두 학생은 해안가로부터 500~600m 떨어진 지점에서 물에 살짝 잠긴 채 찾아내 인양됐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이병학(17)군의 시신은 오후 7시15분께 사고 해역에서 1km가량 떨어진 곰섬 인근에서 발견됐다. 이 군의 시신은 헬기가 저공비행하면서 수면을 확인하던 중 시신이 떠오른 것을 발견해 수색대에 신호를 보내 인양했다. 이로써 실종된 지 26시간여 만에 실종자 5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해경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수사과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캠프 운영과 관련 위법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황준현 태안해경서장은 “사고 해역은 노가 달린 보트를 타는 것 외에 수영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며 “캠프 교관과 인솔교사 등을 상대로 전반적인 과실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유족들 애끊는 통곡, “우리 아기 어쩌니. 엄마는 너 못 보낸다”
21일 오후 실종된 학생 시신 5구가 공주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 주변은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 취재진 등 수십여 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뒤엉켜 있었다.
숨진 아이들의 시신이 구급차에서 하나 둘 내려지자 유족들은 애끊는 통곡을 쏟아냈다. 한 어머니는 시신을 부여잡은 채 “아가 엄마는 너 못 보낸다. 우리 아기 어쩌니”하며 울부짖었고 다른 학생의 어머니는 “안 된다. 안 된다”를 연신 외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장례식장 내부에선 “내 새끼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었네”하며 오열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여야 대표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유족의 요구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유명을 달리한 학생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인재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또 사고가 나 여당 대표로서 책임을 느낀다. 자라나는 학생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부인 최명길 씨도 당 관계자들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김 대표는 “안전불감증으로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의 삼가 명복을 빈다”면서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빈소에는 광역단체 관계자부터 동네 주민까지 유족을 위로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출근하기 전 빈소에 들렀다는 한 시민은 “공주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던 사대부고 학생들이 이렇게 안타깝게 생을 마감해 정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조문객들의 손을 붙잡고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앞으로 절대 이런 비극이 없었으면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간 것”이라며 “그 뜻을 잘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공주사대부고 대강당에도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학생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오열했고 교사들도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기숙사가 생기기 전 하숙집을 해 학생들과 동거동락했다”는 한 할머니는 영정 앞에서 연신 큰절하며 통곡했다.

태안주민 “수차례 훈련자제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번사고도 ‘안전불감증’이 부른 명백한 인재였다. 사고가 난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인근 해역은 물살이 매우 빨라 사고 위험이 높은 곳으로 유명했다. 사고 인근 장소의 한 주민은 “천수만에서 빠져나온 물이 급류를 이뤄 바다에 앉은 새 다리가 부러질 정도라는 말까지 있을 만큼 물살이 빠른 곳”이라며 “항구에 드나드는 어선 등의 통행도 잦아 사고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민들이 수차례 캠프에 찾아가 위험성을 언급하면서 훈련 자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로 어제도 찾아가 안전관리에 주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다른 주민들도 캠프 측이 사고에 대비한 기본적인 대비조차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주민은 “안전관리요원이 1명뿐이었고 비상구조선도 모터가 달린 고무보트 1~2척만 갖추고 있었다”며 “매일 수백 명이 몰리는 데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캠프의 실제 운영업체는 태안의 한 유스호스텔과 지난해 말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한 경기도 분당의 한 소규모 여행사였다. 해병대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른바 ‘짝퉁’ 해병대캠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학교 측은 물론 학생들도 알지 못했다. 학교의 한 관계자는 “해병대 훈련을 통해 학생들에게 강인한 정신을 길러주기 위해 캠프에 참여했다”며 “해병대 캠프라고 해서 해병대와 관계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교관 2명은 모두 인명구조사 자격증도 없고 교관 경험이 전무한 초보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에 따르면 여행사는 이달 중순께 해병대 전역자를 대상으로 일당 10만~25만원을 주기로 하고 6명의 교관을 채용했다. 캠프 교관 12명 중 6명이 초보자였으며 가장 오래된 직원도 경력이 9개월에 불과했다.

태안해경은 23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훈련현장 지휘책임자 이모(44)씨 등 3명을 구속했다. 또 캠프진행을 위탁받은 회사관계자 2명과 공주사대부고 학년부장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이어 25일엔 학교와 훈련 용역 계약을 맺은 업체 대표 오모(50)씨와 이 업체로부터 하청받은 업체 대표 김모(49)씨 등 2명의 구속영장을 각각 신청했다. 해경은 “업체 대표와 훈련 책임자로서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할 의무를 저버려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며 구속 사유를 밝혔다.

“명확한 진상조사와 엄벌 있어야” 여야 한 목소리 규탄
여야는 이번 사태와 관련 확실한 조사와 엄벌을 요구하는 한편 실질적인 사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2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무허가 해병대 캠프가 지금도 60여 곳이 있고 여러 가지 캠프를 모두 합치면 5,000여개의 사설 캠프가 존재한다”며 “사설 캠프 등을 엄격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훈 최고위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명확한 진상조사와 엄벌이 있어야 한다”며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유사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 즉각적인 정부합동 실태조사에 돌입해 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도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며 “정부도 여름철 안전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이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정부에 강조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 앞으로 관리 감독 소홀로 국민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시에는 반드시 그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주부터 학교 방학도 시작되고 전국에서 여름캠프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활동이 있을 것”이라며 “선제적인 점검과 대응으로 방학 중의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23일 당정 협의를 갖고 수련활동 사전허가제 도입과 청소년 활동프로그램 사전 신고 의무화 등 체험 캠프 안전대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당정은 향후 △수련활동 프로그램의 사전허가제 도입 △모든 청소년 활동프로그램 사전 신고 의무화 △전수조사 실시 후 자격 미달 시 일단 운영중단 △재 위탁업체 관리강화 △위탁기관 강사 범죄경력 조회 등을 실시할 방침이다.
황우여 대표는 “법을 개정할 것이 있으면 개정하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는 등 집권 여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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