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면 그런 상황에 작업 시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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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면 그런 상황에 작업 시킬 수 있겠는가”
  • 박치민 기자
  • 승인 2013.07.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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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인재(人災), 물 불어나는데도 대피 지시 안해

7월15일 서울 노량진동 상수도관 공사 현장에서 수몰사고가 발생해 7명이 사망했다. 천재(天災), 인재(人災) 공방이 필요 없을 만큼 이번 사고는 명백한 인재였다. 사전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턱 없이 낮게 설계된 공사장 입구, 잇따른 폭우로 한강물이 둔치까지 차올랐지만 인부들에게 대피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폭우가 내린 지난 1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한강대교 남단 서울시 상수도관 부설 작업 현장에서 인부 7명이 갑자기 유입된 강물에 휩쓸려 조호용(60)씨가 숨지고 이승철(54)씨 외 6명이 수몰됐다. 그리고 이들은 17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날 오전 10시 공사 안전 여부를 담당하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와 감리회사는 “팔당댐 방류량이 많지 않다”며 공사를 허가했다. 이에 인부들은 지하 48m 깊이 터널로 들어가 레일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당시 한강 수위는 5.64m. 공사장 출입구 꼭대기까지 겨우 1m 남짓 남았을 뿐인데도 공사 허가가 내려진 것이다.
낮 12시, 경기 북부에 쏟아진 집중 폭우로 팔당댐 방류량이 늘어났다. 오후 3시20분에는 한강 수위가 6.86m로 불어나면서 높이 6.8m인 공사장 출입구 너머로 한강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2시간 후, 불어난 한강물에 압력을 이기지 못한 철제 차단막이 부서지면서 터널 안으로 물이 쏟아졌다. 인부들은 깊은 터널 속에서 순식간에 수몰됐다.

폭우로 구조작업 난항, “잠수부 투입하기엔 위험한 상황”
사고발생 직후 소방당국의 인명 확인과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폭우로 불어나는 한강 물 때문에 구조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구로, 관악, 양천, 종로 등 현장으로 출동한 소방트럭이 서울 각지에서 실어 나른 펌프를 현장해 투입해 배수 작업을 벌였지만 12시간 동안 전진기지 수위를 낮춘 건 고작 1미터였다. 도달기지로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라 전진기지와 터널 등에 차오른 물을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동작소방서 관계자는 16일 새벽1시께 “도달기지 쪽 맨홀 위 수위가 낮아지지 않고 있어 잠수부 투입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며 “설사 지금 들어가더라도 수심이 깊은데다 흙탕물 때문에 10cm 앞도 볼 수 없어 잠수부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소방당국은 한강 수위가 낮아져야 잠수부 투입이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팔당댐 방류량을 줄여달라고 관계당국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최근 경기지역에 내린 집중폭우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방류량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구조현장에는 실종된 6명의 유가족 40여명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종일 맨홀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은 연신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소방당국은 16일 오후 4시35분 소방 특수구조단 소속 잠수부 2명을 수몰 현장에 투입했다. 배수 작업이 지체돼 한시라도 빨리 나서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본격적인 구조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근식 동작소방서 예방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초 수심이 20m까지 낮아지면 잠수사 투입 여부를 판단하려고 했지만 수압이 높아 물속의 펌프가 계속 터졌다”면서 “배수 작업이 더 이상 지체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에 수심이 26m이지만 베테랑 요원들을 투입했다”고 전했다.

사고발생 55시간여 만에 실종자 시신 모두 발견
잠수부들이 구조작업에 착수한 다음날인 17일 오전7시52분, 실종된 근로자 시신 1구를 발견했다. 이어 오후 9시40분께 시신 2구, 오후 11시45분에는 나머지 시신 3구를 추가로 찾아냈다.
오전에 발견된 사망자는 중국 국적의 근로자 박명춘(48)씨로 수평관로 입구에서 발견됐다. 오후에 발견된 사망자 신원 역시 중국 국적의 근로자 박웅길(55)씨와 이승철(54)씨로 확인됐다. 이들은 수평관로 입구로부터 200m 떨어진 지점에서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시신 3구는 모두 한국인으로 이명규(61)씨, 김철덕(53)씨, 임경섭(44)씨로 최종 확인됐다. 이들은 수평관로 입구에서 500~70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이로써 이번 수몰 사고의 실종자 6명 전원이 수습됐다. 사고 발생 55시간여 만이었다. 결국 사고 발생 직후 즉시 구조돼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한 조호용(60)씨를 포함해 총 7명의 근로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근식 동작소방서 예방과장은 “처음에는 수중펌프가 수압을 견디지 못해 고장이 나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갈수록 저수량이 적어지면서 배수 시간이 단축돼 수심을 50cm까지 낮춰 구조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며 “실종자 수색 작업은 종료됐으며 마지막까지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모든 구조 상황을 마무리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습된 시신들은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고대구로병원으로 옮겨졌다.

눈물바다인 영결식장,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물속에서···”
21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사고 희생자 7명의 합동영결식이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희생자 유족들은 눈물로 고인들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시공·감리 업체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은 조사와 추도사 등의 절차 없이 헌화와 분향만으로 진행됐다. 헌화가 이어지는 동안 영결식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고 이명규씨의 동생은 영정 앞에 국화를 바치며 “얼마나 무서웠어, 그 깜깜한 굴 속에서···. 가족을 위해 평생 고생만 한 불쌍한 우리 오빠”라며 오열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 한 유족은 고인의 영정사진 앞에서 “불쌍한 내 동생, 얼른 일어나. 거기 있지 말고 얼른 일어나”라고 울부짖었다. 영결식장을 찾은 많은 시민들도 안타까움에 애도의 눈물을 쏟아냈다.
헌화와 분향을 모두 마친 후 유족들은 고인의 영정을 안고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시립 승화원으로 이동했다. 관이 운구 차량에 실리자 감정을 추스르며 조용히 눈물만 흘리던 일부 유족들도 숨진 근로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박원순 시장은 18일 신청사 기획상황실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유족이 불편함과 부족함이 없도록 장례와 보상 절차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이는 책임 문제를 넘어선 기본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를 잃고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고 뒷북도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공사현장 안전 문제, 하도급 관계, 감리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해 뿌리부터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는 지금까지 ‘현장 수습’을 중심으로 운영됐던 사고대책본부를 ‘노량진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를 위한 TF’로 격상해 희생자 장례절차, 유가족 보상, 사고 원인과 과정 규명, 안전 제도 개선에 역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TF는 문승국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단장을 맡고 총괄조정, 현장복구, 유족지원, 제도개선, 언론협력 등 5개 팀으로 운영된다.
박 시장은 “머리맡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며 “우리가 진행하는 공사가 아니고 도급하는 공사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나. 한강에서 벌어지는 공사를 정작 신경 쓰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잘해왔지만 한 번의 실수에 대해서도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TF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남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예고된 인재
이번 수몰사고는 장맛비로 인한 천재이기 전에 위험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였다. 사고를 막을 기회가 수차례나 있었지만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감리업체, 시공사 모두 부주의한 태도를 보이며 인명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한강홍수통제소로부터 한강 수위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확인 없이 공사를 승인한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실제 공사 발주처인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들은 사고 당일 새벽부터 사고 발생 전인 오후 3시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팔당댐 방류 문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울시는 사고 당일 오후 2시30분께 상수도사업본부와 자치구에 한강 범람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현장관계자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사와 하도급 업체 간에도 현장 철수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공사 측은 “‘카카오톡’의 사진을 이용해 위험 상황을 서로 공유하고 긴급히 철수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지만 하도급 업체는 “대피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전달보고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지하 현장에선 인터폰 한번 울리지 않고 7명이 모두 수몰됐다.
게다가 시공사는 지난달 말까지 터널공사를 마치고 관정을 메워야 함에도 자금난을 이유로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수도관 시공을 맡았던 업체 관계자는 “원래 공정은 장마 시작 전인 6월20일까지 터널을 뚫는 공사를 끝내고 도달기지 쪽 관정을 메우기로 했다”며 “그러나 주관업체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한 달가량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관정 메우기를 하지 않은 채 지하 터널에서 작업하다 한강물이 유입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서울시의회 오승록 의원은 “홍수전까지 메우기로 했던 관정을 방치해놓고 일을 시킨 것은 전형적인 인재”라며 “감리회사와 시공사는 물론 공사 중단 사태와 재개과정을 알고 있었던 서울시의 부실행정이 참사를 유발했다”고 비난했다.

여야, 박원순 책임론 놓고 날선 공방
여야는 19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박원순 시장의 책임론을 놓고 열띤 신경전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고를 안일한 판단과 무능한 행정 탓으로 앞세우며 박 시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민주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번 노량진 수몰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철수 지시가 인부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점과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 사업본부·시공사들의 안일한 판단, 무능한 행정에 있다”며 “이런 인재가 발생한 데 대해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오후 현안브리핑을 통해 “최 원내대표가 또 다시 박 시장의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며 “오늘 새누리당 주요당직자회의는 온통 노량진 사고관련 정치선전전이 난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박 시장이 책임을 회피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사태 수습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사건이 발생하고 나흘이 지나도록 새누리당이 한 것은 사태수습과 재발방지를 위한 힘 모으기가 아니라 국민적 슬픔을 정쟁화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서울시와 박 시장 공격에 이용하는 것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린다”며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관리 감독 소홀로 국민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시에는 반드시 그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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