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나랏돈,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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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나랏돈,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
  • 김미란 기자
  • 승인 2013.07.3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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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수령 보조금 무려 631억 원, 허술한 집행·관리 드러나

임자가 없는 돈, 우연히 생긴 공돈을 우리는 흔히 ‘눈먼 돈’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라면 한번쯤 임자 없는 돈에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 법. 하지만 엄연히 주인이 있는 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자기 것인 냥 함부로 쓰는 이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국민 모두가 주인인 국가 예산, 보조금 등이 그것이고, 그것이 눈먼 돈인 줄 알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편취하는 이들은 세월이 변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7월24일 대검찰청 특별수사체계개편추진TF팀은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나랏돈을 빼돌린 312명을 입건하고 93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총 70개 업체가 허위로 수령한 보조금은 약 631억 원에 달했다.
이날 대검찰청 특별수사체계개편추진TF팀 이동열 팀장은 “전국 검찰청에서 2012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집중적으로 수사를 전개했다”면서 “총 70개 업체(단체)가 약 631억 상당의 보조금을 허위 수령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은 “향후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감사원, 보건복지부, 국세청, 금감원, 각급 지방자체단체 등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보조금 비리사범은 반드시 적발된다’는 인식이 확립될 수 있도록 모든 유형의 보조금 비리사범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 같은 비리가 반복되는 폐단을 근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2년 보조금 46조 4,900억 원, 국가 예산의 14%
보조금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정산업의 육성, 기술 개발 및 향상 등의 목적으로 법률 규정의 의해 시설자금이나 운영 자금 등을 국고에서 무상으로 교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에는 정부가 민간단체나 개인사업자의 활동을 위해 무상으로 46조 4,9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는 국가 예산의 약 14%를 차지하는 규모다. 검찰은 “이번 수사 결과, 보조금이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집행됐다”면서 “보조금은 그 지원 명목이 수백 개에 이르고 각 사업별로 지원 요건이 다를 뿐 아니라 지원된 보조금 집행과정에 대한 검증 체계도 미비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살펴보면 너나할 것이 보조금을 유용했다. 대학교 총장, 성균관장 등 사회지도층부터 농어촌 주민까지 각종 국가보조금을 빼돌려 생활비, 카지노 도박자금, 주식투자비, 변호사 비용 등으로 마음대로 사용했다. 부당 수령에 대한 죄의식 없이 눈먼 돈 취급하는 심각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는 게 검찰 측 발표였다.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A여행전문업체는 2008년 9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의 사회적 선도기업(돌봄여행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국고보조금 10억 원과 민간대응 10억 원 등 총 20억 원을 교부받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이를 카지노업체 주식매입 등으로 사용해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A건설장비업체는 수도권에 공장이 없음에도 전남도청 소속 투자유치자문단과 결탁해 허위 공장 임대차계약서 등을 이용해 공장을 전남 영광군으로 이전, 100억 원을 투자할 것처럼 속여 ‘수도권기업 이전지원 국가균형발전 보조금’ 7억 7,000만원을 편취했다. 그런가 하면 대구에 소재한 C대학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전문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 국고보조금 지원 대학 선정지표인 ‘정원 내 재학생 충원률 및 취업률’을 부풀리는 등 지표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약 23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편취했다.

감찰은 “특히 대부분의 보조금 예산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집행을 하고 있는데 선심행정, 토착세력과의 유착으로 무분별하게 집행하는 사례가 증가했다”면서 이와 같은 현상은 지방자치 실시에 따라 단체장들이 선거로 선출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조금을 관리·감독해야 할 담당 공무원들이 업자나 브로커들과 결탁해 금품을 수수하는 등 국가 예산과 보조금 관리·감독 체계의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개발비 지원 받아 여행경비로 횡령
보조금 비리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산업기술평가원 등 정부지원금, 사회일자리 창출 지원금, 시민·사회·종교단체 보조금, 사회복지시설 보조금, 국가균형발전 보조금, 지역특화사업 보조금, 대학교 관련 국고보조금, 신용보증기금, 관련 공무원의 묵인·비호, 생계비·실업급여 보조금, 중소·벤처 육성 지원금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7월 서울남부지검은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으로부터 ‘과적검사시스템 기술 개발’ 명목으로 정부 출연금 5억 9,000만 원을 지원받아 그 중 4억 3,000만 원을 횡령한 중소기업 대표 1명을 구속 기소했다. 11월에는 산업자원부와 선박엔진용 초내열 부품소재 개발 협약을 체결한 다음 허위 시제품을 제출하는 등 27억 원을 편취한 중소기업 대표 1명이 구속됐으며, 역시 개발비 명목으로 23억 원을 지원받아 5억 7,000만 원을 여행경비 등으로 횡령한 중소기업 대표 5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또 검찰은 정부가 고용 취약계층, 이동권 취약계층 등을 지원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회적 선도 사업에 대해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는 사례도 확인했다. 울산지검은 올 1월 ‘취약계층 가사, 간병 취업지원 민간위탁사업자’로 선정된 다음 실적을 허위로 보고해 고용노동부 보조금 1억 1,972만 원 부정 수급한 위탁업체 대표 1명을 구속했는가 하면, 현장관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근로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본인취업자를 알선취업자로 허위실적 보고하는 방법으로 국고보조금 1억 1,900만 원을 부정 수급한 업체 대표도 구속 기소했다.

단체 보조금 모럴 해저드 특히 심각
국가보조금 중에서도 단체 보조금의 경우에는 모럴 해저드가 특히 심각했다. 청렴성, 도덕성이 요구되는 종교단체 수장, 시민단체 임원들도 각종 보조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돌리고 있는 것이 검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충북도청 충북체육회로부터 카누 경기정 구입, 선수 영입금 명목 등으로 지원받은 보조금 1억 2,858만 원을 횡령한 충북카누연맹 총무이사 및 전무이사가 구속됐으며, 연극행사 등과 관련해 속초시 등으로부터 교부받은 보조금을 업체에 지급한 후 이를 다시 돌려받아 극단 운영비 및 개인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역시 구속을 면치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청소년 인성교육 현장교실’ 사업비 관련 보조금을 수령한 다음 거래 업체와 공모해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보조금 5억 4,600만 원을 횡령한 성균관장 및 성균관 교화부장, 총부부장도 안동지청에 구속 기소됐다. 그런가하면 한국문화원연합회 경리직원 1명도 구속됐다. 허위 세금서, 매입서류 등을 제출해 문화체육관광부 보조금 6억 3,753만 원을 횡령한 죄였다.

정신지체자, 정신질환자,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국가지원금을 유용하고 불법 수령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의정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원생들의 후원금 5억 5,800만 원을 빼돌린 원장 스님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으며, 여주지청은 장애인 자활근로작업장을 운영하면서 장애인 운송차량 운영 보조금 등 2억 원을 횡령한 죄로 장애인복지연합회 이사장 등 3명을 구속했다. 한 교복업체 대표의 경우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구매했다는 허위계약서, 세금계산서 등을 제출해 장애인표준사업장 지원보조금 3억 4,500만 원을 편취, 지난해 11월 원주지청이 구속 기소했다.

서류 허위 작성해 보조금 편취하는 사례 급증
지역특화사업 보조금 횡령 사례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역 실정에 밝은 영농조합 등의 간부 및 전직 공무원이 개입한 보조금 편취 사례가 많았다.
지난 6월 목포지청은 친환경 영농사업 육성과 관련해 영농법인이 부담하는 자부담금을 납품업자가 대납하는 방법 등으로 약 18억 원 상당을 편취한 영농법인 대표 등 5명을 구속 기소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해남지청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처럼 영농일지를 조작해 해남군으로부터 10억 원 상당의 보조금을 편취한 10명을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감귤부산물 건조시설 보조사업과 관련, 허위 구매계약서 등을 제출해 40억 원을 교부받아 편취한 법인 대표 등 3명이 구속되고 7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밖에도 유기농밸리 조성사업, 명암산약초타운 조성사업, 파프리카 시설 지원 사업, 쌀막걸리 생산라인 설치사업, 원예작물브랜드 육성 지원 사업, 친환경식품산업 인프라 지원 사업 등 다양한 특화사업을 악용한 보조금 횡령 사례가 다수 발각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부담금 서류, 세금계산서 등의 보조금 지급청구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보조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값 등록금, 학생 수 감소 등에 따라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자 각종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거액의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대학교들도 이번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전문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과 관련해 각종 기준 지표를 조작해 각각 23억 원과 5억 6,800만 원의 보조금을 편취한 대학교 총장 및 교수 등이 구속 기소된 것은 물론 거래업체와 공모해 과대계상 금액을 돌려받는 등의 방법으로 대학교 교비 및 보조금 32억 상당을 횡령한 모 대학 총장도 구속됐다.

지급대상 유동적인 보조금, 정기적 합동 점검 필요
검찰은 “보조금 지급 과정에서의 관리·감독 의무는 하지 않고 신청업자, 브로커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구조적인 부패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축사료(TMR) 생산체 육성 보조금을 지급받은 영농조합법인 대표로부터 보조금 지급에 대한 대가로 2,400만 원 수수한 공주시 6급 공무원이 구속됐으며. 천안시에서는 보조금 사업 선정 대가로 2,000만 원을 받은 공무원, 보조금 사업선정에 관련된 공무원에게 청탁한다는 명목으로 3,500만 원을 받은 브로커, 매매계약서·세금계산서를 허위 작성해 국고 보조금 2억 3,000만 원 상당을 편취한 영농조합 대표 등 5명이 구속되고 14명은 불구속 처리됐다. 지난해 4월에는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한 업체 대표로부터 ‘수도권기업 이전 지원 국가균형발전 보조금’ 관련해 청탁과 함께 6,000만 원을 받은 동해시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사회적 필요성 및 경제 동향에 따라 보조금 지급을 위한 특별법들이 제정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보조금이 지급되는 등 보조금 지급대상이 매우 유동적이므로 보조금 운영에 대해 정기적인 합동 점검 등이 필요하다”면서 또한 “보조금 비리가 중한 범죄임에도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범죄수익에 대한 철저한 박탈을 통해 범죄유인을 사전에 차단, 국가 예산 등이 투명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고 비리 엄벌 경고에도 여전히 보조금에 군침
보조금을 횡령하는 일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이 같은 사례들이 빈번했다. 검찰은 지난 2008년 국가 보조금 비리 단속, 2009년 지방자체단체 등 복지예산 비리 단속에서도 횡령, 편취 등의 비리 행위로 약 1,000억 원 상당의 국가 예산과 보조금이 부당 지급되거나 유용된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에는 150명이 구속 기소되고 546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모 구청 공무원은 서울시에 장애수당을 과다 신청해 구청 사회복지와 장애인 복지계정이 보관중인 장애수당 26억 5,900만 원을 가족 명의로 빼돌려 구속 기소됐고, 모 읍사무소 공무원은 지방사회복지주사보로 근무하면서 생계주거급여비 지급요청서 58장을 위조, 생계주거급여비 11억 81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역시 구속 기소됐다. 탈북자 등 취약계층을 고용한 사실이 없는데도 노동부로부터 탈북자고용지원금 9억 5,500만 원을 부정 수급한 모 업체 대표 등 3명이 구속된 일도 있었다.

관련 비리로 구속되는 사례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6년 13명, 2007년 20명이 구속된 것에 비해 2008년부터는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08년은 104명이 구속되는 등 횡령, 편취 비리가 정점을 찍었다. 당시 검찰은 “정부 출연금이 더 이상 ‘주인 없는 눈먼 돈’이 아님은 물론 정부 출연금 비리에 대한 엄벌 필요성을 각인시키겠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보조금에 군침을 흘리며 횡령과 비리를 일삼는 행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회의 본보기가 돼야 하는 지도층들이 할 국고를 눈먼 돈이 아닌 모두의 재산임을 하루 빨리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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