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점을 둘러싸고 한미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파장의 진원지는 국방부였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에게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자고 제안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불거졌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논란이 싹트기 시작했다.
김 장관의 전작권 전환 연기제안은 <연합뉴스>의 보도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7월17일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의 언급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최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따라 “양국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복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입장은 김 장관이 6월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2차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헤이글 장관을 만나 직접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소식통은 “올 초에 북한이 보여줬던 여러 상황이나 안보 관련 여러 위험요소들을 감안했다”며 “전작권 전환 연기 제안의 의미는 국방부가 미국 측에 ‘논의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전작권 관련 국방부 입장’이란 제호의 보도자료를 통해 “전작권 전환 준비는 2010년 10월8일 한·미간 합의한 ‘전략동맹 2015’에 근거해 추진 중”이라면서 “국방부는 2013년 전반기에 심각해진 북한 핵 문제 등 안보상황을 중요한 조건으로 고려하면서 전작권 전환 준비를 점검해 나가자고 미국 측에 제의해 한·미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이어 “이러한 사항(전작권 전환)은 MCM(한미군사위원회), SCM(한미안보협의회의) 등을 통해 지속 협의될 것”이며 “우리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최우선 가치에 두고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 갈 것임”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입장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관련 논의가 오고 갔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전작권 전환은 故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거론됐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7년 2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 자로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전작권을 한국 측에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이러던 것이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전부터 전작권 전환에 대해 확고한 입장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해 11월4일 외교·안보·통일정책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포함한 포괄적 방위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또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는 2015년 말 전작권 전환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오마바 미 대통령 역시 정상회담 후 “한국은 전작권을 2015년에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고, 우리는 안보에 대한 어떤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도 전작권 전환 시점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여 왔다.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지난 6월11일 “2015년 12월 1일 전작권 환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방부의 전작권 전환 연기 제안은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했다.
이번 제안의 파장은 미국 측 입장이 전해지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지난 7월18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재인준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를 통해 2015년말 예정된 전작권 전환과 관련, “예정대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군사적 측면에서 전작권 전환 시점은 적절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이어 “전환의 조건은 역량에 기반한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달렸다”고 한 뒤 “이는 무기시스템 획득, 지휘·통제 시스템, 정보·감시·정찰(IRS) 플랫폼, 탄약 공급, 적절한 전환 절차 등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한국 측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는 것이어서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전작권 전환 둘러싸고 찬반 팽팽히 맞서
한국이 전작권 전환 연기를 제안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이다. 북한은 지난 2월부터 3차 핵실험 강행, 정전협정 백지화, 동해안 일대 미사일 발사 등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키리졸브 합동 훈련으로 맞서 한반도 긴장은 최고조에 올랐다. 한반도 긴장상태는 6월을 기점으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북한이 언제 다시 예측불허의 돌출행동을 취할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전작권 전환에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 조치가 한미연합사 해체와 이에 따른 미군의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이 같은 논리를 펼치는 대표주자는 바로 육군 참모총장 출신인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남 원장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오판을 줄 수 있어 한미연합사 존속을 지지한다”면서 “2015년으로 예정된 전작권 이양 문제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전작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바꾼 데에는 남 원장이 키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과 전작권 이양을 논의할 때 북한의 위협은 이미 변수로 포함시켰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그러면서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북한의 위협을 충분히 능가한다고 주장한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이 같은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국방부가 지난 2008년 발표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남한은 65만 명인데 비해 북한은 102만 명으로 북한이 다소 우위를 점한다. 북한의 전차 규모도 남한(2,300여 대)에 비해 1,600여 대 더 많은 3,900여 대에 이른다. 병력 수에서나 무기와 장비의 중요 부문에서나 북한이 남한에 비해 규모가 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위는 한국군과 미군의 기술적 우위로 인해 상쇄된다고 강조한다.
셀릭 해리슨 국제정책 센터 선임연구원은 그의 저서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남한군 탱크들은 거의 절반이 최신 모델의 미국제 엔진과 변속장치를 장착하고 있다”면서 “최신형 K-1 전차는 걸프전 때 이라크처럼 1970년대식 기술로 만들어진 북한군의 T-62 전차보다 훨씬 빠른 기동력과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군의 전투대비 태세 역시 문제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주한 미8군은 이미 지난 2000년 “김정일이 ‘핵심’ 전방 부대를 잘 먹이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만 핵심 부대들마저도 때때로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후방 부대들은 직접 식량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보고했다. 미8군은 이어 “보급 부족 때문에 일부 부대는 군 복무와 관계없는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사이엔 북한이 재래식 전력보다 핵 등 비재래식 전력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 같은 식량난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북한과의 화해를 모색했던 전 정권 인사들은 전작권 전환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전작권을 군사주권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故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 씨는 전작권과 관련, “남한이 북한과 협상에서 주요 행위자로서 독립적인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전통제권을 이양해야지만 북한이 남한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북한은 남한의 권위와 능력을 존중할 것이다. 작전통제권이 우리 손에 넘어오지 않는다면 북한은 미국하고만 접촉하려 할 것이고 당연히 협상 상대가 되어야 할 남한을 배제하려 할 것이다”고 역설했다.
미군 철수해도 한국은 자주국방 가능해
사실 미국의 전작권 이양에 대한 태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줄곧 한국이 한반도 안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닉슨 대통령은 1971년 미 7사단을 철수한데 이어 다음 해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대한(對韓) 안보 공약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나섰다. 이때부터 미국은 한국의 역할 확대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이 같은 입장을 취한 이유는 베트남 전쟁 패배에 따른 충격파와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 때문이었다. 베트남전 패배 충격은 미국으로 하여금 동아시아 지역 분쟁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했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급성장은 미국의 안보공약 재검토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외교위원회 위원장은 1970년 윌리엄 포터 당시 주한미대사가 출석한 가운데 “70억 달러를 쏟아 부었는데도 남한이 인구도 훨씬 적고 모든 면에서 약자인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상황은 뭔가 잘못돼 있다. 우리(미국)는 돈을 들였고 비행기도 제공했다. 그들은 그 돈을 갖고 무엇을 했는가?”라며 포터 대사를 강하게 추궁했다. 지미 카터는 더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왔고 대통령 당선 후 이를 실천하려 했다.
카터 이후 미국의 요구는 잠잠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냉전 종식이 이뤄지면서 미국은 더욱 거세게 역할확대를 촉구했다. 미국의 유력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 위크>는 1988년 9월 “미국은 4만 3,000명 병력 대부분을 한국에서 단계적으로 철수시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전제한 뒤 “북한 인구의 두 배가 넘고 경제는 여섯 배이면서 국내 군수산업이 번성하고 있는 남한은 분명히 침략에 맞설 수 있고 대부분의 방위비를 부담할 위치에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전작권 전환뿐만 아니라 미군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해도 한국은 자체 힘으로 북한에 대해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 셀릭 해리슨은 “인구통계로 보면 남한에서는 매년 약 45만 6,000명이 18세가 되는 데 비해 북한에선 24만 7,000명이 18세가 되고 전체 인구에서 16~28세 인구 비중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한 뒤 “더 중요한 것은 남한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방대한 자체 군산 복합체를 육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산 군사 장비를 구입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한 기업들한테 방위산업 생산기술을 이전해 왔다”고 지적했다.
전작권의 사전적 정의는 “전쟁 발발 시 군대의 작전을 총괄지휘하고 통제하는 권한”을 뜻한다. 대게 자국 군대에 전시 및 평시 작전권은 해당 국가가 갖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전작권은 한미연합사령부에 귀속돼 있다. 사실 자국 군대의 전작권이 외국 군대에 귀속돼 있는 경우는 무척 보기 드문 사례다. 미군 장성들마저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故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미군이 한국군에 향유하고 있는 작전통제 권한의 정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보기 드문 주권 양도”라고 평한 바 있었다.
당초 전작권 전환에 적극적이던 정부가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이유 여하를 떠나 정부는 이 문제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전작권은 국가주권이 결부된 사안인 동시에 국익과도 맞닿아 있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