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타던 남북 관계, 의전 문제로 제동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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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 타던 남북 관계, 의전 문제로 제동 걸려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3.07.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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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모두 경직된 자세 버려야 경색국면 탈피할 수 있어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6월 초만 해도 남북대화 움직임은 급물살을 탔다. 북한은 지난 6월6일 먼저 대화를 제의했고 정부는 이를 즉각 수용했다. 정부는 뒤이어 북한에 현안 해결을 위한 장관급 회담 개최를 제안 했다. 북한은 정부의 제의를 수락함과 동시에 실무접촉을 갖자고 전해왔다. 이에 남북은 6월9일부터 10일까지 16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12일 남북 당국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회담 명칭 및 일정, 대표단의 이동 경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남북대화 움직임은 세부 방안을 놓고 꼬이기 시작했다. 남북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대목은 수석대표의 ‘격’이었다. 정부는 실무접촉 단계에서 “남북관계 총괄부처장인 통일부 장관이 회담에 임할 것”임을 전제한 뒤 북측에 “이에 상응하는 통일전선부장(이하 통전부장)이 나올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협상파트너로 현 김양건 통전부장을 요구한 이유는 그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부장과 수시로 독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그를 상대하는 것이 복잡한 현안을 타결하는데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 같은 판단 하에 실무접촉 단계에서 북측에 “남북관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남북관계를 책임지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화 상대는 통일부 장관과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북한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시했다. 북한은 김양건 부장 대신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단장으로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러자 정부는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내세우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거부반응을 보였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이 “우리측(정부)에서 장관급이 나오지 않으면 남북당국회담이 열릴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남북 대립은 수석대표의 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양측은 회담의제를 놓고서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정부는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부터 풀어가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6·15선언 및 7·4남북공동성명 기념행사 공동개최까지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의 요구는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물적 교류를 중단한 5.24 조치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정부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남북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서로 다른 합의문을 마련해야 했다. 

실무접촉 결과 총 6개항으로 이뤄진 합의문이 마련됐다. 이 가운데 3항과 4항은 남과 북의 입장차가 반영돼 있다. 정부측 발표문엔 3항에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 등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4항에 “회담 대표단은 각기 5명의 대표로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남측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하기로 했다”고 적혀있다. 이에 비해 북한측 발표문엔 각각 3항과 4항에 “회담에서는 개성공업지구 정상화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 6·15 및 7·4남북공동성명 발표 공동 기념문제, 민간왕래와 접촉, 협력사업추진문제 등 북남관계에서 당면하고도 긴급한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했다”, “회담대표단은 각기 5명의 대표로 구성하되 북측 단장은 상급 당국자로 하기로 했다”는 점이 명시됐다. 

당초 남북이 당국회담을 갖기로 한 날짜는 6월12일이었다. 남북은 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대표단 명단을 동시 교환했다. 이 시점에서도 난항이 있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측은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 할 수 있는 당국자를 대표로 내세웠고 북측은 상급인사라고 하는 사람을 단장으로 대표단 명단을 통보해왔다”라면서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 서로 입장을 의견을 달라서 계속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회담이 임박해서도 양측의 견해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회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회담 무산, 뒤이은 책임 공방 

당국회담 무산 직후 남북은 책임소재를 놓고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북한은 6월13일 조선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당국회담 무산) 책임은 남한 당국에 있다”면서 “도발적 망동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엄중한 후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 당국회담 무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수석대표의 급을 둘러싼 견해차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이것은 우리 체제에 대한 무식과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우리의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통일부) 장관 따위와는 상대가 되지 않으며 남북대화 역사 수 십 년간 지금까지 당 중앙위 비서가 공식 단장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북한은 이어 정부가 실무접촉 단계에서 “김양건 당중앙위 비서(겸 통일전선부장)의 이름을 합의서 초안에 작성하는가 하면 개성공업지구 잠정중단 사태에 김 비서를 연결시키며 중상 모독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접촉 시간이 16시간이나 걸린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러자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통일부는 같은 날 “북한이 수석대표 급(級) 문제를 이유로 남북당국회담을 무산시키고 오늘 담화를 통해 실무접촉 과정을 일방적으로 왜곡해 공개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북한의 주장을 반박했다. 통일부는 이어 “북한이 과거 남북회담 관행을 운운하고 있으나 과거 관행을 일반 상식과 국제적 기준에 맞게 정상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간 벌어지는 설전의 핵심은 북한이 보내기로 한 조평통 서기국장의 ‘급’이었다.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통일부 입장에 따르면 “(조평통 서기국장은) 우리의 통일부 장관에 상응하지 않으며” 따라서 “권한과 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운 인사”라는 것이다. 정부가 대화 파트너로 통전부장을 고집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12일 오전 출입 기자들에게 “이번 일 때문은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들은 말이 있다”며 “(대통령으로부터)‘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어 “평소에도 대통령은 이런 말을 여러 번 했다”면서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엔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 내지는 부총리급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창수 한반도 평화포럼 기획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많은 부위원장보다 서기국장이 알짜배기다. 강지영 이전 서기국장이던 안경호는 초강성 인물인데 그는 사실 장관급 이상이다. 강지영은 나이가 그보다 젊지만 조평통 서기국장이니 우리 장관급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북한 조평통 서기국장은 과거 장관급 회담에 나온 내각책임참사보다 급이 높다. 오히려 남한이 요구하니 북한이 급을 높여서 나온 것이다”고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우리 사회에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한국의 장관급으로 해석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은 장관급 보다 더 위상이 높은 ‘부총리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정 수석연구원은 이어 “북한은 남북 장관급 회담에 통일전선부장이 아니라 바로 아래의 통전부 부부장을 회담 수석대표로 내세웠다”라면서 “북한에서 통전부장의 위상이 우리의 통일부 장관보다 더 높기 때문에 통전부 부부장(또는 제1부부장)을 우리의 장관급 인사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1, 2차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면면은 이 같은 견해를 뒷받침한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선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임동원 당시 대통령 특보,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황원탁 당시 안보수석이 배석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용순 당중앙위원회 대남 담당 비서 및 통전부장만이 회담에 임했다. 김용순 비서 한 명이 정부 대표 3명을 상대한 반면 관련부처장인 통일부 장관은 배석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옆에 권오규 당시 경제부총리,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 자리했다. 반면 북한은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 김양건 통전부장 한 명만 배석했다. 

국가간 회담이 의전문제로 무산되는 건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와 관련,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간 벌어지는 공방은 상호 몰이해의 소산이라고 꼬집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애초에 장관급 회담을 제안할 때부터 김양건 통전부장과의 장관급 회담을 명확하게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전제한 뒤 “남북한 정치체제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한국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모두 당국회담의 수석대표(단장)로 나서지 않은 것도 남북한의 경직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사실 남북이 사소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 건 비단 이번만의 일은 아니다. 이 같은 신경전은 특히 냉전 시절 남북의 자존심과 결부돼 치열하게 전개됐다. 지난 1969년 열린 남북 실무접촉에서는 양측이 주도권 선점을 위해 11시간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신경전은 여전했다. 지난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한의 박영수 대표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남한을 위협했다. 이 시기는 북한의 핵위기가 고조되던 시점이어서 ‘서울 불바다’ 발언은 남한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지는 6월12일 서울발 기사를 통해 “남북당국회담이 대수롭지 않은 기술적인 문제, 즉 수석대표의 급 때문에 무산됐다”면서 “남북 양측의 수십년에 이은 대결구도로 인해 의전 같은 문제도 자존심 때문에 첨예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통미봉남 카드 꺼내나?

북한은 지난 6월13일 정부를 향해 “당국회담에 털끝만한 미련도 가지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어 16일엔 미국에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정부는 북한이 남북대화가 여의치 않자 ‘통미봉남(通美封南)’, 즉 남한을 우회해 미국과 접촉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은 17일 오마바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단순히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게 되면, 그 사이에 북한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는 데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계속해서 남한 정부를 우회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모양새다. 

북한은 19일 중국과 전략대화를 갖고 중국과의 공조체제를 다졌다. 북한은 이번 전략대화에서 6자 회담 복귀의사를 밝혔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장예쑤이 중국 외교부 상무부장과 대화를 갖고 “조선(북한)은 유관 당사국과의 대화를 희망한다”면서 “6자회담을 포함한 어떠한 형식의 각종 회담에 참가,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현재 남북 간엔 현안이 산적해있는 상황이다. 특히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개성공단 재개가 시급하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볼 때 정부는 형식에 연연하기보다 내실 있는 결과를 얻는데 집중해야 했다. 한편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남한과의 관계 개선 없는 유화 제스처는 국제사회에 ‘대화를 위한 대화’라는 인식만 심어줄 뿐이다. 무엇보다 남북이 하루 속히 경직된 자세에서 탈피하는 것이 경색될 대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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