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감소세를 보였던 가계대출 잔액이 두 달 연속 증가했다. 증가폭도 지난 3월 말에 6,000억 원 늘었던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다. 지난 6월1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자료를 보면 4월말 현재 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총 656조 5,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1조 4,000억 원 증가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4.1부동산 대책이 잠잠했던 가계부채를 자극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은 총 463조 3,000억 원으로 5월 전보다 9,000억 원 증가했다. 주택대출이 315조 8,000억 원으로 1,000억 원 줄었지만 기타대출이 147조 5,000억 원으로 1조 1,000억 원 늘었다. 상호저축은행·신협·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 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5,000억 원 커진 193조 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기타대출의 증가 폭이 8,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축소됐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석 달째 감소세를 띄던 주택대출은 100억 원으로 소폭 늘었다.
가계대출 잔액 역대 두 번째 수준
가계대출의 4월 잔액은 작년 12월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수준이다. 작년 12월 659조 9,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서 올해 2월 654조 4,000억 원까지 떨어졌으나 3월에 다시 6,000억 원 늘었다. 4월에는 1조 4,000억 원이 늘어나 증가폭이 더 커졌다.
이에 대해 이재기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 차장은 “계절적 요인을 제외하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 가계대출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주택대출 잔액은 전월대비로 감소했다. 4월말 주택대출 잔액은 1,000억 원 줄어든 401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은은 주택금융공사의 모기지론 양도(적격대출)가 늘어난 영향으로 주택대출 잔액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주택금융공사로 넘어간 보금자리론이나 적격대출 채권을 반영하면 주택대출도 실제로는 2조 원대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 예·적금 담보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은 1조 5,000억 원 증가해 255조 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193조 2,000억 원으로 기타대출을 중심으로 5,000억 원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가계대출 411조 5,000억 원으로 1,000억 원 줄고 비수도권이 245조 원으로 1조 5,000억 원 늘었다.
이재기 차장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1,000억 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지만 기타금융기관인 주택금융공사로 넘어간 모기지론 등이 2조 2,000억 원에 달한 만큼 실제로는 2조 1,000억 원 이상 증가한 셈이다”라며 “주택금융공사로의 모기지론 양도로 주택대출이 감소한 데 반해 마이너스통장 대출과 예·적금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마이너스통장이나 예·적금이나 보험 담보 대출이 늘었다는 것은 생계형 대출이 늘어났다는 뜻”이라면서 “가계빚 부담이 커지고 소득은 늘어나지 않아 금융자산을 보유할 정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은 계층까지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급증…4.1부동산대책 영향
가계대출이 급증한 것은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주택거래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금융시장 동향’ 분석결과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전보다 3조 9,000억 원 불어났다. 은행의 가계대출은 1월 8,000억 원 감소하다 2월 1조 3,000억 원과 3월 1조 5,000억 원으로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증가폭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4.1부동산대책이 발표되면서 한 달 만에 증가폭이 4조 2,000억 원까지 벌어졌다. 그 중 대출증가분 가운데 3조 2,000억 원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4.1부동산대책으로 주택거래가 늘면서 5월 말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1조 9,000억 원 늘었다. 모기지론 양도분까지 포함하면 증가폭이 3조 2,000억 원에 이른다.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만 보더라도 2월에는 2,800가구에 불과했지만 4월에는 6,000가구, 5월은 6,200가구 등을 기록했다.
주택담보 외에 가계의 신용대출도 함께 늘었다. 3월에 61조 8,014억에서 4월 62조 4,909억 원으로, 5월 63조 401억 원으로 증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시적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생애최초주택자금 수요가 많았고 금리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금리 인하경쟁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은 그대로…채무 상환능력 악화
가계대출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갚을 빚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대출 상환에 대한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소득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난 5월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일 이상 원금연체 기준)은 1.25%로 전월 말 1.15%에 대비 0.10%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전년 동월 1.21% 대비 0.0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기업대출 연체율이 1.48%로 전월 말 대비 0.16%포인트 올랐으며 가계대출 연체율은 0.99%로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연체율이 1.09%에서 1.16%로 상승하면서 전월 말 대비 0.03%포인트 올랐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22일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는 “미국의 양적 완화정책 종료로 미국의 금리가 상승할 경우 국채가격이 떨어지면서 은행들의 이자율이 상승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상승과 은행이 입을 손실은 고스란히 대출금리에 반영 되어 가계대출자들은 원리금상환액의 증가로 가계부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앞으로도 가계부채 악재가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9일 금리를 내리면서 주택담보대출 등이 늘어났다. 6월 기준금리는 동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출구전략 속도가 금리 결정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출국전략 논의가 이뤄지면 미국 뿐 아니라 주변국들도 금리 인상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서민경제 안정 차원에서 각종 소액 저금리 대출도 정책적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가계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커버드본드 법안 발의…가계부채 해결 가능할까
이런 가운데 민주통합당 전해철 의원이 서민들의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커버드본드 법안’을 발의했다. 커버드본드 법안은 우량 자산을 담보로 해서 채권을 발행할 때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주자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집합자산, 즉 주택 채권이 모아진 것에 대해선 우선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하고 투자자 입장에선 집합자산 말고 발행 기관인 은행의 자산에 대해서도 담보로 할 수 있는 이중적 담보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현재 가계부채의 반 이상은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에 의한 가계부채다. 보통 주택 대출을 받을 때 2년, 3년으로 받는데 그것을 20년, 30년 장기로 하면서 저리로 대출받게 하면 가계부채 문제가 상당히 해결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두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 의원의 주장이다. 우선 대출을 하는 은행 등의 발행 기관이 다른 데서 돈을 가져올 때 장기 저리로 가져와야 되고 은행이 주택을 가진 소유자한테 대출할 때도 장기 저리, 고정금리로 대출하는 두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커버드본드 즉, 집합자산담보부 우선채권이다.
그러나 과잉 대출과 부담 대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발행을 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면 된다. 발행기관도 제한하고 발행 요건도 엄격하게 제한해서 이 요건에 맞지 않는 우선 채권이 발행되지 않게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