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100세 시대, 축복인가 불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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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100세 시대, 축복인가 불행인가
  • 이지원 기자
  • 승인 2013.07.0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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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속도는 빨라지는데, 대응 속도는 걸음마

지난 몇 년간 화두가 됐던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인들 사이에서 ‘구구팔팔이삼사’라는 유행어가 덕담처럼 오가는 데,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 죽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할 진데 노인 빈곤인구가 45%에 달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무르’는 국내 개봉 후 7만 6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다양성 영화로는 놀랄만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80대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이 영화의 관객 중 절반가량이 40~50대 여성으로 노년의 삶이 우리에게도 현실적인 고민거리임을 보여줬다. 영화 속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내가 마비 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남편은 요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봐왔지만 반신불수가 되어 몸과 마음이 점차 황폐해져 가는 아내를 바라보다 결국 베개로 아내의 숨을 짓누르고 만다. 올해 71세인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아무르는 30년간 함께해 온 아내와 내가 서로에게 한 약속을 담은 작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병든 노인 돌보기 힘들어 간병살인 증가

이러한 스크린 속의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잇따라 발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5월 청송에서는 치매 아내를 4년간 간병해 온 80대 노인이 아내를 태운 승용차를 몰고 저수지로 들어가 함께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온 남편은 2년 전부터 아내의 치매 증상이 심해져 괴로워했고, 내년이면 90살이 되는 자신이 언제까지 아내를 돌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힘들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자살하기 전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아내가)요양원에는 절대 못 가겠다고 하니 나 죽고 나면 강제로 요양원에 보내는 길밖에 없어 내가 운전이라도 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결심했다. 아들, 자부, 딸, 손자, 손녀 너무 미안하고 섭섭하다. 이 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야 할 행복한 길이다. 아버지가 일을 못하니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다. 사과 꽃 만발하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득한 이 시절에 간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한 일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에서는 70대 할머니가 80대 치매 남편을 살해하려다 살인미수에 그친 사건도 발생했다. 5년 동안 치매를 앓아 온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할머니는 1년 전부터 다리가 아파 치료를 받으러 외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남편의 괴롭힘이 심해졌다. “다른 남자를 만나러 다닌다”며 가족들 앞에서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는 남편을 견디지 못해 살해하려고 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강도가 들었다고 거짓 신고했으나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선처를 호소하는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각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치매를 앓던 70대 아내를 남편이 목 졸라 살해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바람피우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부모 없이 자란 놈”등 폭언을과 폭행을 일삼았다. 남편은 2년 전부터 치매를 앓던 아내의 병세가 악화돼 가면서 심해지는 폭언에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아내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후 자신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했지만 집에 돌아온 아들이 이를 막았다.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봐 온 남편은 1년 전에도 병간호에 지쳐 아파트에서 투신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대구에서도 평소 “함께 죽어야지”라고 말해 온 8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목을 매 숨졌고, 대전에서는 부인의 병구완을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가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시도, 할아버지는 숨지고 할머니는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간병살인, 황혼자살 등은 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더욱 빈번해 지고 있으며 노인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이러한 사건들은 고령화 시대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치매는 24시간 환자를 곁에서 돌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더욱 큰 질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노인은 50여만 명으로 보건복지부는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2025년에는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8년부터 치매가 장기요양보험에 적용돼 부담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40만 명 이상이 수혜 대상에서 제외돼 이는 고스란히 가족들의 부담으로 남겨졌다. 고령화와 함께 치매가 흔한 질병으로 자리 잡음에 따라 국가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노인자살과 간병살인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은 경제, 사회적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형제자매가 어울려 살던 대가족 제도에서는 노인부양 부담이 크지 않았으나 저 출산 및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경기 침체 및 경제적 양극화가 지속됨에 따라 부양비용의 부담은 가정 내 갈등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자녀나 배우자가 부양을 포기하면 노인은 쉽게 방임상태에 놓이게 되고, 이렇다 보니 어렵게 노인을 돌보던 가족이 간병살인이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노인 빈곤률, 노인 자살률 1위 불명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조사결과 2011년 전체 자살자 중 27.7%인 4,406명이 65세 이상으로 이는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 보다 낮아지는 세계적 추세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다. 전문가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의 경우 자살이 10~30대에 가장 많았다가 노인 세대로 접어들면서 감소하는데 우리나라는 10대부터 자살률이 증가해 65살 노인 세대에 이르면 정점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도 자살률이 40대에 정점을 이루다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와 대조적인 현상이다. 

노인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인 자살의 주요원인은 경제적 빈곤과 신체적 질병, 사회적 고립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률은 45%, OECD 국가 중 1위다. OECD 회원국의 평균인 13.5%의 3배에 달하는 비율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12%인 600만 명으로 이 중 빈곤하게 생활하는 노인이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인 10명 중 7명의 월 소득이 83만 원이 안 되고, 독거노인은 2000년 54만여 명에서 2010년 105만여 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령화 대응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소득, 건강, 고용, 사회적 지원 등 노인문제를 보완해줄 사회적 체계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노인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미약한 것. 이렇다 보니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노인들은 노년에도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 65~69세 노인 고용률은 2010년 기준 40.8%로 아이슬란드 48%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하는 노인이 많다는 것은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65세에서 74세 인구 36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취업을 원하고 있으나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노동 환경도 열악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노인들이 고용노동청에 제기한 진정은 2007년 대비 47.9% 증가한 1만 266건에 달했다. 일하는 노인이 늘어나는 만큼 입금 체불, 부당해고 등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노인들도 증가하고 있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50대 중반을 넘으면 정규직 일자리를 잃게 되고 노인들에게는 저임금, 비정규직의 열악한 일자리만 주어지게 된다. 더욱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시작되고 이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진출하면 노인들의 취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은퇴 이전의 전문 경력 등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노년층의 노후 준비를 위해 정년 연장으로 은퇴시기를 늦추고 노인의 기준 연령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이 처한 상황이 상이한 경우가 많아 일괄적으로 은퇴시기를 상향조정할 경우 현재 60~65세라면 받을 수 있었던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 ‘100세’시대가 현실화됨에 따라 이에 맞는 양질의 노인 일자리 창출과 복지서비스 개선 등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복지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인부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돌봄서비스 등은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차상위계층이나 중산층, 저소득층 모두를 아우를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 지언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양과 간병 부담에 허덕이는 가족들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고 끝까지 부양할 수 있도록 경제적 사회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그에 앞서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는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노인학대 가해자 대부분 ‘남보다 못한 가족’

최근 한 고등학생의 ‘노인 막말 동영상’이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봉사활동을 하러간 요양병원에서 아픈 노인에게 욕설과 반말 등 패륜적인 행동을 저지른 것인데 사실, 노인 폭행이나 학대는 타인보다 가까운 가족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의 2012년 노인학대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학대 가해자의 86.9%가 피해자의 친족이고 12.8%가 배우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학대가 갈수록 증가하는 가운데 그 유형으로는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았고 신체적, 방임, 경제적 학대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자녀나 배우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학대받은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노인이 부모나 배우자 노인을 학대하는 노(老)-노(老) 학대와 의식주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방치하는 자기방임이 101%(1만 2,349건)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노인학대 신고율을 높이기 위해 노인학대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사회복지사 등 신고 의무자의 직무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 ‘고령학대방지법’을 시행해 학대를 발견한 사람의 신고를 의무화하고 지역 센터와 연계해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노인부양, 사회적 공동책임 

지난 2012년 6월 인천에서 60대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었다. “무엇을 향해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 함께 자살을 준비했다. 시신은 의대 해부용으로 기증한다”라고 쓰인 이들의 유서 옆에는 장례비용으로 남긴 5만 원짜리 10장도 함께 놓여 있었다. 이들 부부의 수입은 1인당 7만5,000원씩 한 달에 15만 원인 노령연금이 전부였다. 800만원 하던 전세금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으로 바뀌었고 그마저도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보증금이 300만 원으로 줄어 있었다. 

100세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그러나 장수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기에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저 출산 고령화에 따라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피부양 노인인구가 증가하면 노년부양비와 노인의료비 등이 후세대의 과중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노인부양을 가족이나 개인의 일이 아닌 국가와 사회, 가족의 공동책임으로 받아들이고 노인복지와 노인빈곤층에 대한 배려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미래의 주역이라면 노인은 나이 들고 병들어 죽어갈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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