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여성갑부이자 광산재벌인 지나 라인하트는 최근 호주광물철강협회가 주최한 행사 연설을 통해 “광산업자는 정부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라며 광산업계를 대하는 호주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노동당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광산업체 이익의 30%를 세금으로 내도록 한 광업세를 도입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자리에서 라인하트는 “광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산업”이라면서 정부나 그 밖의 사람들이 아무 때나 돈을 빼 갈 수 있는 인출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2012년 연말 호주 정부는 흑자 재정 목표를 포기했다. 웨인 스완 부총리는 “집권당인 노동당 정부의 대국민 공약이던 2012〜2013 회계연도 흑자재정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호주달러 강세와 원자재가 하락, 수출 등으로 세수가 급격히 줄어 흑자 재정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노동당 정부가 주요 대국민 공약 중 하나였던 흑자 재정 달성 목표를 포기하기에 이른 것은 호주 경제의 버팀목이나 다름없었던 광산붐이 빠른 속도로 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업세까지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세수 증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유학 산업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호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BHP빌리턴과의 합작사 설립 무산
호주 경제 중심에 있는 광산업체 중에서도 철, 동, 석탄, 알루미늄, 금, 다이아몬드 등 광물 자원을 개발하는 세계 굴지의 광산업체인 리오 틴토(Rio Tinto)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과 광산투자 실패 등의 영향으로 30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한 리오 틴토의 2012년 매출은 509억 7,000만 달러였다.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리오 틴토는 이익의 3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광업세도 낼 수 없게 됐다. 이에 호주 정부의 세수 확충 목표에도 차질이 생겼다. 리오 틴토 최고경영자인 샘 월시는 “그동안 리오 틴토는 호주의 손꼽히는 납세기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면서 세금을 낼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첫 적자였지만 리오 틴토는 사실 최근 몇 년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호주 정부의 광산세 철회에 힘을 쏟았고, BHP빌리턴과 야심차게 추진하던 1,165억 달러 규모의 합작사 설립은 없던 일이 됐다. 세계 2, 3위의 철광석 생산업체인 두 회사는 금융위기 속에 서호주 필바라 일대의 철광석 등 천연자원을 공동 개발할 합작사를 설립, 경비 분담으로 100억 달러의 비용도 절감한다는 계획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철광석 수요가 높은 일본, EU 당국이 두 업체의 독과점 체제 구축을 우려해 합작사 설립을 가로막은 것이다. BHP빌리턴은 성명을 통해 “양 사 간 합의이후 각국 규제 당국에서 이 합작 사업을 승인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졌다”면서 “결국 양사는 이번 합작 사업을 접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합작사 설립이 좌절되자 리오 틴토는 대신 투자 광물을 다양화했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구리와 알루미늄에 투자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유 톨고이 광산 인수에도 나섰다. 금, 다이아몬드, 티타늄도 경쟁사들보다 먼저 뛰어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 광물이 불과 몇 년 후 매각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중상장, 단일 이사회가 두 기업 지배구조 형성
1873년 스페인 남부의 구리광산 개발을 위하 투자자들에 의해 설립된 리오 틴토는 1호주 브로큰힐 지역의 아연광산 개발을 위해 설립된 콘솔리데이티드 징크(Consolidated Zinc Corporation)와 1962년 합병해 RTZ(Rio Tinto-Zinc Corporation)이라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와 동시에 CRA라는 유한회사가 설립됐다. CRA는 1962년부터 1995년까지 RTZ와 광산 발굴 및 메이저 광산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합병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95년 12월 두 회사는 이중상장기업 형태를 통해 통합됐고, 단일 이사회가 두 기업의 지배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이후 RTZ는 리오 틴토 공개유한회사, CRA는 리오 틴토 유한회사로 변경됐으며 두 회사는 각각 런던증권거래소·뉴욕 증권거래소와 호주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리오 틴토는 광물자원 발굴, 개발, 프로세싱 등의 사업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사업이 전개되고 있지만 호주와 북미지역이 주력 영역이다. 남미,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부지역에서도 광물자원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알루미늄, 구리, 다이아몬드, 석탄, 우라늄, 금, 산업용 광물, 철광석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다루고 있는 리오 틴토지만 그 중에서도 철광석과 구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ICMM 설립, 생물다양성 보전에 앞장
사실 리오 틴토 같은 기업은 사업 특성상 NGO의 비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 그러나 리오 틴토는 2000년대 이후 ICMM(국제금속광업협희외)을 설립하는 등 생물다양성 보전에 앞장서고 있다. ICMM 회원들은 지속가능한 개발 프레임워크 원칙을 세우고 매년 회원사들의 이행 상황을 평가해 보고서를 발표한다. 2006년에는 ‘광업과 생물다양성을 우수 사례 가디언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 ICMM은 광산 개발의 계획, 굴삭, 생산, 폐광후 등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저감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4년에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생물다양성에 순긍정영향(Net Positive Impact)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생물다양성 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위협이 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거나 줄이고, 영향 받은 지역의 복원을 통해 생물다양성에 대한 영향을 줄이고 생물다양성에 순긍정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필요한 생물다양성 상쇄(offsets) 및 부가적인 보존 활동에 주력했다.
리오 틴토는 생물다양성에 순긍정 영향을 미치기 위한 첫 단계로 자사의 임대계약과 토지 자산의 생물다양성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 또한 리오 틴토는 몇몇 보전 기구들과 연계해 마다가스카르, 호주, 북미 등지에서 상쇄 방법론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생물다양성 행동계획’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론을 ‘동물군 및 식물군 국제단체’와 생물다양성 컨설턴트 협회인 하드너와 걸리슨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첫 적자 책임 안고 알바니스 CEO 사임
리오 틴토는 세계 3위 안에 드는 광산업체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광산붐이 점점 꺼져가면서 그 위력도 잃기 시작했다.
갈수록 그룹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자 지난해 말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톰 알바니스는 “변동성이 심한 환경이 계속될 것”이라면서 비용절감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석탄 및 알루미늄이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주의 지원비용이 5년 전과 비교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밝힌 알바니스는 2014년 말까지 영업 및 지원비용 50억 달러에 탐사 및 평가 프로젝트 비용 10억 달러, 유지보수 비용 10억 달러도 줄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 계획을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바니스는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첫 적자에 내려진 혹독한 형벌이었다. 알바니스는 알루미늄 사업과 재직 시 인수했던 모잠비크의 석탄 광산에서 무려 14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발생, 사실상 해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그는 2011년 영업이익이 59%나 급락하자 지난해 보너스를 포기하기도 했다. 회사를 떠나기 전 알바니스는 성명을 통해 “회계상의 모든 책임을 인정하며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 놓인 리오 틴토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바로 철광석 부문 CEO였던 현 최고경영자 샘 월시다. 1991년부터 리오 틴토에서 근무해 온 월시는 지난 8년 동안 철광석 사업부를 맡아 400억 달러의 흑자를 내는 등 회사 내는 물론 호주 경제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월시가 과거에 철광석 사업부를 맡아 이룬 성과만큼의 실적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광산업계의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이 예상되며, 이에 따른 철광석 가격의 하락, 광산 확장 문제 등이 그의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모건스탠리는 2013년 철광석 공급량이 9.1% 증가하는 반면 수요는 8.3%만 늘어나는 것으로 예상했으며, 블룸버그통신 역시 철광석 가격은 현재 1t에 128.10달러 선에서 12월에는 115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필바라의 철광석 생산 확대 프로젝트 계속 추진
현 시점에서 철광석 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철광석이 리오 틴토 순익 중 90% 이상을 책임졌다는 점이다. 때문에 철광석 가격 하락에 따른 리오 틴토 전체 순익의 감소도 철광석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월시는 철광석 생산을 계속 확장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변이 없는 한 연간 철광석 생산량을 2억 9,000만t에서 3억 6,000만t으로 확장하는 것을 이사회가 승인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늘려도 가격은 톤당 20t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호주 철광석 산지인 필바라의 철광석 생산 확대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기로 한 리오 틴토는 대신 수익을 내지 못하는 자산을 매각하고 인력 감축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방침이다. 월시는 “알루미늄, 석탄, 우라늄, 다이아몬드 부문에서 강도 높은 비용절감을 추진하고 런던 본사의 직원 200여 명도 감축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170억 달러였던 자본지출 규모를 지난해 보다 40달러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일부 다이아몬드 광산도 매각 대상에 올랐다.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광산업계에서는 리오 틴토의 톰 알바니스와 앵글로 아메리칸의 신시아 캐럴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쩌면 월시의 본격적인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철광석 호황기에 대박을 터뜨린 것보다 위기에서 더욱 빛나야 하는 그의 능력에 세계 경제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