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2017년 말에 개봉한 영화 〈1987〉은 87년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최고의 흥행 영화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편한 목소리도 들렸다. 바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이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역사를 다룬 수많은 영화에는 여성 인물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역사책에 기록된 여성의 수가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역시 이러한 현실에 닿아 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대표적인 세계사 입문서인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어주다가 이 책에 여성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실제로 한국어판 《곰브리치 세계사》에 이름이 실린 여성은 10여 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여왕이나 여신, 왕비를 제외하면 비중 있게 다뤄지는 여성 인물은 잔다르크가 유일하다).

왜 역사책에서는 남자들만 전쟁을 하고 나라를 세우고 영웅이 될까?
왜 박물관에 전시된 선사시대 모형에서는 늘 남자들이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까?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에, 혁명의 자리에 왜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걸까?
저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역사책을 다시 살펴보았고, 역사에서 빠져 있던 ‘여성’이라는 퍼즐을 하나씩 찾아서 끼워나갔다. 나라를 다스리고, 전장에 나가 싸우고, 철학자나 작가나 과학자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인 여성들을 다시 역사 속으로 소환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여성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남자들을 걷어내는 방식으로는 이 책이 또다시 역사의 한 갈래로 머물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성들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임을 독자들에게,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언제 어디서나 살았고 행동했다. 그동안 역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사실을 누락했다. 이 책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는 기존의 역사적 관점이 지닌 편견을 바로잡고, 더욱 바람직한 역사를 써나가는 시작점이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