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우리는 미래를 계획하고 지향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그 미래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아 결정되듯, 지금 발 딛고 선 현재도 과거로부터 축적된 모든 시간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생각, 행동, 외적인 환경 등 그 어느 것도 지난 역사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오늘은 어제의 산물이며 내일도 그렇게 오늘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은 채 현재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일에 인색한 상태로 지금 이 순간만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나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조국이어야 할 대한민국을 알고자 하는 일에도 무심하다.
《골목길 역사산책_서울편》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의 뿌리를, 내가 속한 나라의 뿌리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급변하는 현대에 점점 희박해지는 역사 인식을 일깨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되찾아 진정한 ‘나’와 만나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걷는 것’이다. 저자 최석호 박사는 스스로 ‘역사산책자’라 지칭한다. 독자들이 골목골목 걸으며 그 역사현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어떻게 ‘나’와 연결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끔 친절하게 안내하는 역할을 자청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격동의 시대를 보낸 서울의 골목길에서 대한민국 근대사의 핵심인 조선 건국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부암동, 정동, 북촌, 서촌, 동촌
서울 강북 곳곳에 남아 있는 파란만장했던 근대의 흔적을 찾아 나서다!
저자는 부암동, 정동, 북촌, 서촌, 동촌 다섯 지역을 이번 ‘역사산책’의 장소로 삼았다.
• 부암동 무릉도원길 ― 남쪽 왜 오랑캐, 북쪽 청 오랑캐에게 네 번이나 짓밟혔다. 조선 선비들은 혼란을 겪으면서도 낙원을 꿈꾸었고, 부암동에서 바로 그 무릉도원을 발견했다. ‘그저 땀 흘린 만큼 거둘 수 있으면 낙원’이라는 생각이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지난하게 살아온 우리에게 간절함을 느끼게 한다.
• 정동 역사길 ― 서울 한가운데에 자리한 정동은 조선 건국부터 개항, 임시정부 환국, 한국전쟁까지 대한민국 심장부의 아픔이 얼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사대문 안 정중앙에 세워진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출발하여 그 역사길을 걸어본다.
• 북촌 개화길 ― 조선을 세운 주인공들은 한양에 도읍을 정했다. 어느덧 2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중쇠기에 접어들자, 조선 선비들은 크게 깨우치고 조선을 다시 세우려 했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개화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북촌으로 모여들었다. 그 열망이 한옥으로 조선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길에 서려 있다.
• 서촌 조선중화길 ― 나라의 위기에도 최고의 문화를 꽃피웠다. 조선중화에 바탕을 둔 진경시대가 펼쳐지며 삼천리 방방곡곡 두루 걸어서 우리 풍속을 시로 읊고, 금수강산을 그림으로 그렸다. 서촌에서 시를 읊고, 진경산수화를 그리던 당시의 선비와 화가를 보는 듯하다.
• 동촌 문화보국길 ―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총칼을 앞세우고 한양으로 들어왔다. 선각자들은 빼앗긴 나라의 수도, 한양을 등지고 힘든 세월을 견뎌냈다. 우리 집을 짓고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그 자취가 남아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수연산방까지, 목숨 바쳐 되찾은 동촌을 걷는다.
이 다섯 곳의 역사현장을 저자는 세 방향으로 접근한다. 우선 각 지역이 갖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어서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이 되는 골목길을 직접 걸으며 한 곳 한 곳, 그곳에 어린 숨결과 발자취를 좇는다. 자칫 무거운 역사지식 전달에 치우쳐 산책이 주는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저자는 수위 조절에 부단히 애를 썼다. 풍부한 사진과 직접 그린 자세한 지도를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한층 더 돕는다. 우리는 순서에 구애됨이 없이 이 책에 소개된 어느 골목길을 가든 그곳에서 만나는 역사와 반갑게 조우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걷는 만큼 보인다’. 새봄처럼 산책하기 좋을 때도 드물다. 이 책 손에 들고 ‘걸으면 역사가 되는 골목길’을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