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이 책은 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 중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H.M.’이란 약자로 더 유명한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Henry Gustav Molaison, 1926~2008)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 책에 담긴 ‘환자 H.M.’의 이야기를 통해 신경외과, 정신외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동시에 과학의 업적과 한계, 정신의 가능성과 한계도 알 수 있다. 특히 뇌과학이 붐을 이루는 이 시대에, 이 분야의 실화를 통해서 살아 있는 역사는 물론, 과학과 과학 현장의 한계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의료사고로 환자 H.M.의 기억을 절제한 의사의 외손자가 쓴 고백
가족사의 비밀과 함께 드러난 환자 H.M. 이야기의 진실
저자 루크 디트리히는 헨리의 기억을 영구 상실하게 한 집도의 윌리엄 비처 스코빌 박사의 외손자다. 가족사의 비밀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저자의 입장은 꽤나 복잡하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지만, 그였기에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디트리치는 환자 H.M.의 사례를 출발점으로 삼아 고대 이집트에서 행한 최초의 뇌수술에서 첨단의 MIT 실험실에 이르기까지 만화경 같은 풍경을 펼쳐놓는다. 그는 독자들을 오래된 요양시설과 수술실로 데려가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뇌의 소유권을 놓고 벌어진 격심한 뇌과학계 영토전쟁, 그 영토전쟁의 최대 무기인 살아 있는 뇌, 즉 환자 H.M.의 뇌에 대한 관할권을 둘러싼 추악한 경쟁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디트리치는 인간 정신의 신비와 광기를 탐사하는 동시에 우리가 ‘지식 추구’란 이름으로 저지른 의료계의 비윤리성을 폭로한다.
디트리치의 여정은 그의 개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환자 H.M.을 비롯해 수천 명의 뇌를 수술한 정신의학계의 거목이지만,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면이 있는 외과 의사였다. 디트리치는 오늘날 눈부신 조명을 받고 있는 ‘기억’과 관련한 뇌과학을 파헤쳐 그 어두운 뿌리를 낱낱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사에 숨겨진, 외면하고 싶은 비밀과 맞닥뜨리고 그의 외할아버지가 자행한 냉혹한 실험과 관련한 비극을 밝혀낸다. 이 책은 전기, 회고록, 과학 저술의 정수만을 엮어낸 이야기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오만, 야망, 불완전함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놀랍고 통렬한 일들이 가득하다.
살아서 수백 번 뇌실험을 당한 환자
죽어서 2401개의 뇌 조각으로 남은 남자
환자 H.M.의 뇌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뇌과학 영토전쟁!
이 책에는 헨리 몰래슨을 오랫동안 실험하고 그 결과를 독점해온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MIT의 수전 코킨 박사다. 환자 H.M.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 그를 연구한 수전 코킨은 저자의 어머니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수전 코킨이라는 일생지기이다. 수전 코킨은 MIT 뇌과학 원로교수인데 2016년 5월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하기 전에 디트리치가 쓴 이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소속 기관인 MIT에서 이 책의 내용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전 코킨이 몰래슨의 뇌를 캘리포니아대학(UCSD) 쪽 뇌 영상 전문가에게 보냈다가 돌려받으려고 옥신각신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