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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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 '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8.01.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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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나체로 운동을 했다고? 고대 그리스 남성들의 ‘나체’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묻다!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매일 입는 옷차림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 이처럼 패션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접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기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패션은 시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신분제 사회였던 전근대 이전 시대에는 출생 계급에 따라 옷을 입는 방식, 또는 입을 수 있는 옷이 달랐다. 귀족이 입는 옷과 평민이 입는 옷은 같을 수가 없었다. 20세기 이후, 신분에 따른 구별은 없어졌지만 소위 ‘명품 패션’과 같은 여전히 소득에 의한 패션 ‘구별짓기’는 계속되고 있다.

패션은 단순히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옷’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근대 사회 이전에는 계급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 수준에 따라 자신들을 타자와 구별짓기 위해 패션을 활용해왔다. 그 과정에서 귀족에게는 허용되는 패션이 평민에게는 금지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는 고대 그리스 시민 남성들의 패션을 통해 패션에 감추어진 권력의 민낯을 탐구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흥미로운 일상 이야기를 통해 다소 파격적이지만 놀라운 패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남성’ 조각상이 나체인 이유?

고대 그리스인이 남긴 아름다운 조각상의 남자들은 왜 모두 나체일까?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누구에게 ‘나체’가 허용되고, 누구에게는 ‘나체’가 허용되지 않았는가가 아닐까? 《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는 고대 그리스 남성들의 ‘나체’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에 남성들은 나체로 참가했다. 당시 경기장에는 여성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하니, 남성들만의 나체는 그들만의 하나의 ‘기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고대 그리스 남성들의 ‘나체’에 주목한다. 당시 그리스의 지배세력이었던 ‘남성 시민’들이 자신들에게만 허용되던 ‘나체’를 고수했던 것은 그것이 하나의 ‘과시적인 패션’으로서 작용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과시는 당시 지배세력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전후 고대 아테네는 시민 남성 약 3만 명이 40만 명에 달하는 나머지 인구(여성, 노예, 외국인)를 대표했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여기는 고대 그리스는 사실 시민권을 가진 남성들만의 민주주의 사회였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시민 남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졌고, 나머지 도시 구성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시민 남성들에게만 허용되었던 ‘나체’는 그리스만의 독특한 ‘특권 패션’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패션:

외모차별주의의 탄생과 패션의 정치학

일반적으로 화장과 패션은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패션이나 외모를 치장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 영역이나 취향의 문제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패션은 사소한 걸로 여겨졌기에, 패션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 책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의 패션을 다루는 것은 철학자인 그들의 취향에도 당대 지배권력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상시 입었던 키톤과 히마티온은 물론 그리스 시민으로서 군 복무시 착용했을 갑옷 등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 시민 남성에 의해 주도된 외모차별주의를 분석한다. 이처럼 외모차별주의의 탄생을 살펴봄으로써 사소해 보이는 패션에 인간의 사유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이러한 사유는 당대 지배질서에 따라, 시민 남성과 그들의 아내 또는 노예에게 차별적으로 작용되었다는 사실 또한 이 책에서는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패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장을 사치라고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불륜이 들통 나 집에서 쫓겨나게 된 그리스 여인의 이야기, 강제로 몸에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던 노예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패션의 권력을 다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문명을 만든 화장과 패션의 힘

중세 유럽에서는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헤타이라(고대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인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가 나체로 말 흉내를 내며 필리스를 등에 태우는 그림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고귀한 삶을 살 것만 같은 대철학자가 일개 헤타이라에게 빠져 체통을 잃는 행동을 했다는 이 이야기는 중세인들에게 가십거리로 소비되었다. 중세에 만들어진 이러한 이야기가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에 대해 가졌던 이중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생각했고, 여성들의 화장과 화려한 패션이 사치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말과 달리 아름다운 매춘부였던 필리스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두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패션과 화장은 시민 남성의 아내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헤타이라와 같은 화류계 종사자에게는 허용되었다. 아내들은 정숙함을 강요당하면서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살았다면, 헤타이라에게는 이러한 금기가 모두 허용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그리스의 시민 남성들은 헤타이라의 화려한 화장과 패션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그렇다면 패션과 화려한 화장에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이나 본능적인 충동, 즉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철학자들의 패션을 통해 그들이 어떠한 문화적 토양에서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켜왔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의 사유에 패션과 같은 자칫 사소해 보이는 요소가 영향을 미쳤음을 저자는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외면했던 패션이 사실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패션을 지배권력은 금지하고 허용함으로써 이용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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