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237호=나인화 기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당사자의 몫이나 분명한 것은 한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함께 가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대기업의 성과에 국가의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한국의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빨리 가는 것보다는 멀리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에 반기를 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동반성장에 대해 들어보기로 한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변혁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자유’와 ‘경쟁’을 무한히 허용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면서 경제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계층 간 갈등이 격화하고 사회불안이 증폭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대한 변혁요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형태로 제기되었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가 아래로부터의 요구였다면 ‘대전환:새로운 모델의 형성’을 내걸고 개최된 2012년 다보스포럼은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변화 모색이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담스미스가 정립한 자본주의의 두 가지 사회 작동 원리 가운데 ‘공정한 관찰자에 의한 개인 이기심의 조정과 통제’를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은 오직 욕망과 욕구 충족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물화(物化)’된 존재일 뿐이고, 공동체 사회는 이러한 욕망실현의 장소와 대상에 불과하다.
바로 여기에 동반성장이 필요하게 된다. 동반성장은 신자유주의와 달리 개개인을 상호작용의 관계를 가지는 공동체 사회 구성원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동반자’관계로 설정한다. 동반자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대등한 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관계이다. 즉 동반성장은 이타적 이기주의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를 준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 나아가 공동체 사회의 행복을 함께 추구한다. 그것이 함께 성장하고 더불어 나누는 가치이다. 따라서 ‘동반성장’은 단순히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동을 규정한 정책이나 제도만을 의미하는 기술적인 개념이 아니라,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라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 사회 구성원인 정부, 기업, 개인의 행동기준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가치이며, 사회의 작동 원리이다.
동반성장 국가를 향한 경제정책 과제
동반성장이 자본주의에 위배된다는 반론도 있다. 자본주의는 이익 극대화를 보장해야 하는데 동반성장은 이익 극대화를 못하게 하자는 것이니, 자본주의와 반대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익추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것은 탐욕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동반성장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이와 관련한 세미나에서 “나는 동반성장이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경제주체들 간 ‘자유경쟁’도 중요하지만 ‘협력’하는 문화와 제도를 더욱 넓고 깊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21세기형 ‘공정한 관찰자’는 함께 협력하여 성장하고, 더불어 나누는 ‘동반자의식’이다.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의 지속적인 행복과 오늘날 서민 가계의 불안을 극복하는 경제 재도약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동반성장은 대기업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뿐 아니라 빈부간, 도농 간, 지역 간, 남녀 간, 국가 간 동반성장 등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어 정 전 총리는 ‘경제는 순환’이라고 전제하며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선순환하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의 요체라고 역설한다.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할수 있다”라고 말하는 정 전 총리는 “첫째, 부자·대기업·성장산업 등 선도 부문의 성장효과가 아래로 잘 흐르도록 하는 ‘낙수효과(top-down track)’이
다. 과거 반세기 동안 한국경제는 선성장-후분배의 불균형 성장전략만을 추구하다 낙수효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졌다. 저개발 상태에서는 성장이 최선의 복지정책이 될 수 있다. 1960~70년대의 한국경제가 경험했듯이 소수의 선도부문을 선별하여 한정된 자원을 집중 지원하고, 심지어는 일정 정도의 편번을 용인해 주면 성장이 촉진될 뿐 아니라 고용이 확대되어 다수 서민층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난 지 오래다. 둘째로 하도급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분수효과(bottom-up track)’라고 부를 수 있다. 경제적 약자들의 소득증대는 거꾸로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 낙수효과의 정상화가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경제가 봉착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가 않다”라고 설명한다.
한국 경제의 경제력 위한 단기 정책
현재와 같은 저성장과 잠재성장력이 낮아지는 추세를 막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첫걸음은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인 초과이익 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 정부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 제도화의 실천이다. 이 단기 3정책은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곧 실현할 수 있는 정책으로, 한국 경제의 체력강화는 물론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먼저, 초과이익 공유제는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 해외 진출, 그리고 고용 안전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크라이슬러사와 캐리어사는 목표이익 초과분에 대해 협력사에 보너스를 지급하는 ‘수입공유계획(Gain Sharing Plan:GSP)’을 시행하고 있고, 영국의 롤스로이스사도 ‘판매수입공유제’를 시행 중이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과 국제 항공사 간 전략적 제휴협약에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프로 스포츠 미식축구리그(NFL)는 동반성장의 가치가 이익공유를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는 대기업이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한국의 대기업은 온실 속의 화초다.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대기업에 수많은 법적·제도적 혜택을 주고 자원을 집중했다. 그것은 경제성장을 선도하면서 세계시장에 나가 경쟁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기업은 기업하기 좋은 한국시장에 안주하면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정책이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진행되면서 대기업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이유를 없게 한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를 통해 대기업이 세계시장으로 나가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정부사업을 중소기업에게 직접 발주하는 제도도 대기업과 관련이 있다. 정부 발주 사업의 대부분은 대기업에 발주하고 대기업은 다시 자사의 협력사로 등록된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일은 중소기업이 하고 이익은 대기업이 가져가는 결과를 낳는다. 중소기업이 자본·인력·기술을 축적할 수 없는 구조다. 한 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거시적으로 볼 때 공급측면에서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 생산능력이 확충되어야 하며, 수요측면에서는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그리고 해외수출이 계속 늘어나야 한다. 투자는 공급 및 수요와 관련된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2%대 성장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설비투자, 소비, 수출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이 부족한 탓이다. 한국의 대기업 정도면 첨단·핵심기술이 있어야 투자한다. 그러나 한국은 첨단·핵심기술이 부족하다. 연구 및 개발(R&D) 지출이 세계 5위이고, GDP 규모를 고려하면 세계 1위다. 그런데도 첨단·핵심기술이 충분치 않은 이유는 R&D 지출이 주로 개발(D)에 치중해 있고 연구(R)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중소기업은 어떤가. 중소기업은 투자할 데는 많은데 자금이 없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가계로 흘러가지 않은 기업소득은 주로 대기업 차지였고, 중소기업은 수익률이 대기업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기업이 수익만 챙기고 투자를 안 할 바에야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법적으로 중소기업에 흐르도록 유도하면 투자가 늘어나 생산증가 →소득증가 → 소비증가 → 경기침체완화 → 성장의 회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중소기업과대기업 간 괴리도 줄이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소득 불평등도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의 기업 가운데 99%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또한 고용의 88%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불평등 완화와 지속 성장 위한 중기 정책

중·장기적으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첫째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인 경제적 불공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과도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둘째,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성장 없이 정체되는 사회는 퇴보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실질적 자유까지 축소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실질적인 자유 확보를 위해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정 전 총리는 말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중소기업의 육성이다. 그러기 위해 지난 50여 년간 대기업에 편향된 경제정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성장의 축으로 자리 잡아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동반성장 경제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두 번째 중요한 과제는 노동시장의 정상화이다. 현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가 광범위하고 근로 형태에 따른 임금격차가 매우 크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2013년 8월 기준으로 OECD 평균의 2배에 달할 정도다.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진행하고, 민간기업의 정규직 전환 노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재정 및 세제 지원을 하여 궁극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최저임금 인상이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한 빈곤퇴치 및 사회통합 정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한계 중소기업의 고용을 줄여 오히려 저소득층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지만,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의 임금소득 증가는 내수를 자극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실증 연구 결과도 많다.
정 전 총리는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나락으로 빠져든 이유는 단순히 경제 성장 전략의 문제만은 아니라 근원적으로 우리 사회의 질서 자체가 서서히 붕괴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정과 부패의 구조가 일소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고 사회발전을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다”라고 밝히며 더불어 “미래를 이끌 핵심역량은 유연하고 창의적인인재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핵심 인재들은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우수한 교육에 있다. 우수한 교육이란 낯선 상황이나 위기에 적응하는 능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당부한다.

남·북한과 동북아 동반성장 체제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본 방향은 동반성장형 시장경제로, 그 형성과정에서 경제와 평화 즉, 경제와 안보를 병행하여 한반도의 포괄적인 평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남북한 간 경제 협력 사업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가 교역을 통한 경제 협력이며 두 번째는 개성공단 모델의 확대판으로 북한에 지역별로 특화된 공단을 만드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해당 기업이 얻는 이익이 전부가 아니다. 지속적인 교역증대로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는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남한은 ‘안보의 미국’과 ‘경제의 중국’ 모두를 끌어안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여기에 미, 중, 러, 일 4개국 관계의 안정성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들 4강대국이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는 입장이 충돌될 수 있지만,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로 인한 혼란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정학적 한계와 함께 기회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 4강대국이 지금과 같은 긴장고조 상태보다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남북의 통일이 자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정치경제적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다극협력 동북아 동반성장 체제’가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로 모든 남북관계를 끊어버리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또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통일 정책은 기존의 ‘냉전’과 ‘당위’를 넘어서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러자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남북 경제의 교류와 협력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이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적 당위보다는 상생공영이라는 남북한 동반성장이 통일 논의 중심에 진입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동반성장을 추구하면서 통일과정을 잘 관리해 간다면, 저성장과 양극화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통일은 단순히 과거 분단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경제적 번영, 품격 있는 사회, 세계문명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과정이 되게 해야 한다.”라고 정 전 총리는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