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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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7.12.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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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없이 빨려들게 만드는 슬픈 사랑의 대서사시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아홉번째 파도』는 핵발전소 건립 문제로 촉발된 시장 주민소환 사건을 큰 줄기 삼아 두 건의 살인사건에 얽힌 비밀을 서서히 드러내며 강력한 흡인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조금의 이득이라도 얻기 위해 상대를 향해 날을 세우는 게 일상이 된 욕망의 도시 척주에서, 투명한 독이 뻗쳐나가는 것처럼 몸을 지배하는 고통스러운 병(病)들 사이에서, 그러나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을 이루며 빛을 발하는 것은 ‘사랑’이다. 음모와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를 한 귀퉁이씩 풀어내며” 서로를 향해 걸어들어가는 일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 요원 서상화와 척주시 국회의원 보좌관인 윤태진, 그리고 윤태진의 옛 애인이자 보건소 약무주사보인 송인화, 이 세 인물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움직임은 『아홉번째 파도』를 이끌어가는 또하나의 추동력이다. “어떤 경계심도 없이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서상화는 누구에게나 선하고 맑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약왕성도회에 빠져 집을 나간 어머니와 부당 해고를 당한 동진시멘트 하청업체 직원인 아버지 때문에 생긴 상처를 감추고 있다. 윤태진 또한 척주에서 손꼽히는 인재였으나 고등학생 때 콜타르 웅덩이에 빠지는 사고를 겪은 뒤 매일같이 그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는 한때 송인화를 만나면서 정상적인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준 사람 또한 송인화였다. 그리고 송인화는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인 척주에서 서상화와 윤태진을 만나게 된다. “누나라고 불러도 되는 거예요?”라며 성큼성큼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서상화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마음을 헤집어놓는 윤태진을.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동명의 그림이 함의하듯, 세 사람은 지금 물결이 가장 거센 파도 위에 서 있다. 뒤로 돌아 도망치는 게 불가능한 사나운 풍랑 앞에서 이들은 각자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해야만 한다. 그 상처를 비집고 서로의 세계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순간 쏟아져나오는 빛 무리. 그건 『아홉번째 파도』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선명한 자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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