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끝내며 주어진 시간 동안 논다. 정해진 방식대로 길과 통로를 이동하며 정해진 공간에서 놀고 자고 정해진 공간에서 일한다. 이런 정해진 시간과 공간의 배분을 어지럽히는 일은 위험하거나 개념 없는 짓으로 간주된다. 무질서를 위험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배척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찬양한다. 그런데 질서는 평화를 만들지만, 이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순종과 예속의 평화일 뿐이다.
질서가 만든 평화는 지겨움만을 줄 뿐, 진정한 쾌락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혁명은 질서가 만든 평화를 깨는 일이다. 혁명은 무질서한 놀이를 통해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무질서한 놀이였더라도 놀이가 반복되는 순간, 놀이는 경직되고 창조적 힘을 잃는다. 바네겜은 “종종 봉기는 시작하자마자 눈부신 승리를 거두는데 그 이유는 봉기가 적에 의해 지켜지는 놀이의 규칙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놀이를 발명하고 각각의 투사들이 유희적 개발에 완전히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성이 갱신되지 않으면, 그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면, 혁명군이 정규군의 형태를 취하면, 우리는 점차 열의와 히스테리가 헛되이 전투적 취약함을 보충하고 옛 승리들에 대한 추억이 끔찍한 패배를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정해진 길을 따르는 일이 초래하는 근본적인 지겨움을 쉼 없이 거부하고 계속 새로운 놀이를 찾고 새로운 상황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YOLO의 의미이고 일상생활의 혁명이다. “지겨워 죽겠다”라는 외침 앞에서 자본주의는 상품을 소비하는 쾌락을 통해 지겨움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겨움으로부터의 일시적 도피일 뿐이다. 지겨움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존의 안락함을 버리고 진정으로 삶을 만끽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거부하는 젊은이에게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이다.